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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동아시아 평화, 한미동맹 중심의 다층 외교에 달렸다

전환기 한국 외교
한반도평화워치 4/12

한반도평화워치 4/12

우리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칠 거대한 지각 변동이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거대한 4개의 지각판이 교차하는 일본에 지진·쓰나미가 집중된 반면, 한국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교차하는 분단국으로서, 두 세력의 부침에 따른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지정학 단층에 있다.한반도가 있는 동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수직적 지역 질서가 19세기 중반까지 지배했다. 17세기 중반 다양한 규모의 국가들이 병존하며 주권 평등을 근간으로 한 유럽 지역 질서와 대비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 패권 지위를 계속 유지한 데 기인한다. 물론 변방세력(요·금·원·청)이 중국을 장악하여 이민족 지배를 실현한 적도 있지만 대체로 중국화하여 중국 중심 질서에는 별 변동이 없었다.
 

평화로운 동아시아 세력 전환엔
미국과 연계한 세력 균형 필수
북핵 등 한미 갈등 요인 관리하고
미국에 동맹의 중요성 알게 해야

동아시아의 수직적 중화 질서에 대한 신흥 세력의 도전은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16세기 말 전국시대를 마감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 정벌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정유재란이다. 조선·명과 일본의 전쟁은 3국 모두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줬다.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가 출현했고, 중국에서는 명에서 청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두 번째는 근대화에 앞선 일본이 아편전쟁 이래 쇠락의 길을 걸은 청과, 동아시아에서 부동항을 찾아 영토 확장을 추구한 러시아에 도전하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했다. 이후 제국주의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앞세워 동아시아 전체를 노린 세력권 구축을 시도하였으나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함으로써 패권을 상실하였다.
 
1945년 이후 동아시아의 지역 질서는 역외 세력인 미국이 주도했다. 2010년대에 들어 중국의 빠른 부상은 네 번째 세력 전환을 촉발하고 있다. 중국은 연평균 10%대의 고도성장을 통해 2000년 국내총생산(GDP) 세계 6위에서 2010년 2위로 올라서며 일본을 따라잡았다.2020년대 중반에는 미국을 앞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방력에서도 막대한 국방비 투입, 국방 개혁, 무기 현대화를 통해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런 경성 권력 증대를 배경으로 5세대 지도자 시진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대세 순응적 정책에서 벗어나 분발유위(奮發有爲)의 공세적·수정주의적 강대국 외교로 전환했다. 경제적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설립,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추진, 군사적으로 반 접근·지역거부(A2AD)전략, 해군력 강화, 남중국해의 내해(內海)화, 해외 기지·항구 확보를 꾀하고 있다.동아시아에서 세력권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중국을 전략 경쟁자로 규정하여 강한 대응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남중국해·대만·동중국해·한반도 등에서 미·중 대립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은 대응책으로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놓았으나,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정책 협의 외에는 구체적 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일대일로 정책보다 적극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 체제를 약화하고 있어 효과적인 대중 대응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 도전에는 한계가 있다.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하더라도 국부 측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중국의 성장 궤도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다. 미국은 1870년대 초 영국 경제를 추월했지만, 패권을 넘겨받은 것은 2차 세계대전이 지나서였다.중국이 패권국이 되기엔 군사력·지리·동맹·무역·에너지·기술혁신·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보다 불리한 여건이다.
 
따라서 미·중 경쟁의 주된 무대는 당분간 중국의 지리적 이점이 작동하는 동아시아가 될 것이다. 한반도는 동남아·남중국해·대만과 함께 경쟁의 대립각이 예민한 지역이다. 우리로서는 세력 전환 양태와 지역 질서 변화를 면밀히 지켜보면서 올바르게 대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스1]

역사적으로 기존 세력과 부상 세력 간의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많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16세기 초반 이후 총 16건의 세력 전환 사례 중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이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 명명했다.투키디데스 함정이 현실화할 위험은 없겠지만,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항행 자유 작전’에 대한 중국의 위험한 군사 대응, 중·대만 관계 악화에 따른 중국의 군사 행동,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에 관한 일·중 충돌 등을 둘러싼 우발적 저강도 무력 충돌의 위험은 남아 있다. 안보를 미국, 경제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중장기 외교안보전략에 동아시아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막고 평화적 변경(peaceful change)을 확보하는 과제를 반영시켜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한국을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도록 외교·안보·경제적으로 뒷받침했다.자유롭고 열린, 규범에 기초한 동아시아 질서가 한국 생존의 안전판이다. 역내 패권국의 출현은 수직적 질서의 위험과 주변국의 핀란드화(냉전 시대 핀란드가 소련의 눈치를 봤듯 작은 나라가 주변 큰 나라의 영향을 받는 현상) 우려를 높이므로 피해야 한다.
 
다양한 규모의 국가들로 구성되어 세력 균형이 용이하며, 통합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규범적 질서가 형성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중국과 주변국 간의 국력 차이가 현저하여 내부 세력 균형이 어렵고 지역 통합도 가장 뒤떨어져 있다. 동아시아에서 평화로운 세력 전환을 위해서는 역외 세력인 미국의 지속적 연계를 통한 세력 균형이 필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내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 성향은 적신호임이 틀림없다. 동맹 관계의 관리와 주변국과의 연계를 통한 미국의 지속적 관여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유엔 헌장과 국제법 원칙이 구현되는 법치에 입각한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중층적 지역 통합 노력을 가속해야 한다.
 
세부적 실천 사항으로서 첫째, 한국은 초기 단계인 인도 태평양 전략·구상에 참여해야 한다.우리의 가치 지향을 분명히 하면서 이에 부합하는 전략·구상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AIIB에 가입했고 일대일로에도 협력하여 중국을 배려하고 있다.
 
둘째,북핵·무역·방위비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한·미 동맹을 흔들지 않도록 관리하고,가치 동맹으로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꾸준히 인식시켜야 한다.
 
셋째, 정체 상태인 한·중 관계를 전략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동시에 우리 교역의 30%를 넘는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나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넷째,  한·일은 동아시아 질서의 평화적 변경을 위한 파트너다.최악 상태의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다섯째, 신 남방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동남아·인도·호주와 함께 경제 협력을 넘어 바람직한 동아시아 질서 구축을 위한 전략적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여섯째,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 전파·확산도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전쟁 가능성을 낮추고 불안정을 줄이며 국제 규범 위반을 막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민주화 경험이 있는 중견 국가로서 적극적 역할이 요청된다. 끝으로 외교는 전문 인력에 의해 뒷받침되므로 전환기 외교에 적합한 외교 인재 양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전환기의 전략 오류는 후유증이 오래가는 재앙을 초래한다. 초불확실성 시대여서 운신의 폭도 좁다. 열린 자세로 장기적 관점에서 전체 국면을 조망하는 전략적 대응이 긴요하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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