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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나는 친일파 자식인가 빨갱이 후손인가”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이 땅에는 두 개의 대한민국이 공존한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 100년을 보는 시각은 진영과 이념에 따라 양극단으로 쪼개진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성취와 영광의 여정이라고 보는 집단이 있는 반면, 불의와 치욕의 세월이라고 폄하하는 집단이 충돌한다. 경제적 번영을 자부하는 진영에는 산업화 보수 세력이 버티고, 친일과 독재를 깎아내리는 진영에는 민주화 진보 세력이 포진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권은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 민주화운동의 맥을 계승한다고 자부한다. 3·1운동과 독립투쟁은 물론이고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과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자기 진영의 공으로 미화된다. 보수는 ‘친일→독재 편승→반북 냉전→산업화 기득권층’이란 냉소적 프레임에 넣고 배척의 대상일 뿐이다. 엊그제 문 대통령은 임정 100돌을 돌아보며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완성”이라는 그의 소신과 통한다. 문재인 정권 2년의 시즌1이 적폐 청산이었다면, 시즌2는 역사공정(歷史工程)임을 예고한다. 100년간의 친일 흔적을 뒤져 그들만의 잣대에 의한 정의의 역사로 바로잡겠다는 뜻이리라.
 
약산(若山) 김원봉(1898년~1958)의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은 역사공정의 서막이다. 탁월한 독립투사였지만 해방 후 자진 월북해 북한에서 요직을 누리다 버림받은 공산주의자에게 대한민국이 훈장을 주려는 의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원봉은 치열한 항일투사였다. 밀양 출신인 그는 20살이던 1918년 만주로 망명한 뒤 45년 해방 때까지 27년간 중국 대륙을 누비며 독립투쟁에 몸을 던졌다. 의열단 단장, 조선의용대 총대장, 광복군 부사령, 임정 군무부장 등 화려한 경력이 말해준다. 조선총독부 고관·친일파 등 ‘죽일 놈 일곱’(七可殺), 동양척식회사·경찰서 등 파괴할 곳 다섯(五破壞)을 표적으로 암살과 폭파 작전을 감행한 무장투쟁론자였다.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가장 뛰어난 조선인 테러리스트”(님 웨일즈, 『아리랑』)였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프롤레타리아 정권 없이는 진정한 조선혁명은 없다’는 강령을 앞세운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하고,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창설해 독립투사를 길러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김구가 민족주의 우파의 지도자였다면 김원봉은 좌파의 한 축을 이룬 지도자였다. (김삼웅 『약산 김원봉 평전』)
 
여기까지는 사회주의자라 하더라도 유공자 서훈에 토를 달기 어렵다. 문제는 48년 월북 이후다. 김일성 정권 수립에 참여해 초대 내각의 검열상(장관)을 지냈고, ‘조국 해방 전쟁(6·25) 공훈’으로 훈장까지 받으며 잘 나가다가 58년 돌연 숙청된 뒤 남북에서 잊힌 존재가 됐다.
 
그런 김원봉을 무덤에서 불러낸 건 문 대통령이다. 4년 전 영화 ‘암살’을 보고 ‘항일, 친일, 변절, 친일 세력 득세, 반민특위 실패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고 썼다. 현 정권 들어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행동에 나섰다. 1200만 관객이 ‘암살’을 봤다며 그 흥행을 근거로 “국민 대다수가 김원봉의 서훈을 원했다”는 과잉 논리까지 동원하고 있다.
 
TV 방송도 가세하고 있다. MBC는 다음 달 4일부터 200억대 블록버스터 드라마 ‘이몽(異夢)’을 통해 김원봉을 환생시킨다. 김원봉이 주인공인 첩보 액션 드라마다.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멋있기 마련이다. 김원봉 역을 맡은 유지태와 상대역 이요원의 사랑까지 버무려지면 국민에게 김원봉의 존재는 항일투쟁 영웅으로 각인될 것이다. 6·25의 참상과 변절자의 초라한 최후는 묻힌 채 청와대에는 김원봉 서훈 청원이 쏟아질 것이다.
 
대통령과 보훈처, 공중파 방송이 일제히 김원봉 띄우기에 나선 배경이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빨갱이를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던 말’로 이해하고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했다. 김원봉은 김일성 정권에 기여했지만 독립운동의 공적이 뚜렷하다면 훈장을 주는 첫 선례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항일의 역사를 부각하고 정치공학적 친일 몰이에 힘을 실어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물갈이하겠다는 게 정권의 역사공정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친일 청산을 빌미로 한 주류 세력 교체일 것이다.
 
이미 거대한 역사공정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친일 교가’를 청산하고, ‘친일파 도로’의 이름을 바꾸고, ‘일본 제품에 전범 스티커를 붙이자’는 발상도 나온다. 일본군 출신이 육군 창설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군 역사가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가 되고 있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서훈자 1만5000명을 전부 조사해 친일파를 가려내 서훈을 취소할 계획이다. 사쿠라 벚꽃나무를 다 뽑아내자는 문화혁명의 광풍이 불 기세다.
 
김원봉 서훈 논란은 빨갱이와 친일파로 상징되는 시대착오적 진영·이념의 대결로 갈 게 뻔하다. 국민들은 이제 족보를 뒤져야 할지 모른다. ‘나는 친일파 자식인가 빨갱이 후손인가’ 자문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이한 임정 100주년의 풍경이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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