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나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오염 매트리스 보관된 공장 폐쇄…방사능 농도는 ‘정상’

라돈침대 사건 11개월 후
지난 8일 충남 천안시 직산읍 대진침대 본사 공장이 텅 비어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1일 자금사정 악화로 이 공장의 매트리스 생산 및 교환을 전면 중단했다. 라돈침대 사태로 수거 된 매트리스 7만 여 개가 오른쪽 건물 창고에 보관돼 있다. 공장 마당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는 자연 상태와 다름없는 정상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현철 기자]

지난 8일 충남 천안시 직산읍 대진침대 본사 공장이 텅 비어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1일 자금사정 악화로 이 공장의 매트리스 생산 및 교환을 전면 중단했다. 라돈침대 사태로 수거 된 매트리스 7만 여 개가 오른쪽 건물 창고에 보관돼 있다. 공장 마당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는 자연 상태와 다름없는 정상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현철 기자]

지난 8일 오후 5시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용정리. 지난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라돈침대’를 만든 대진침대 본사가 있는 곳이다. 농기계 수리장, 패션업체 물류센터 등을 바라보며 공장 쪽으로 들어가니 차량 차단봉과 경비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경비실에도, 공장 내부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경비실 창문에 붙어 있는 흰색 안내문이 눈에 보였다. ‘매트리스 제조와 교환을 중단하고 3월 1일 자로 공장을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나던 동네 주민이 “그전까지만 해도 두세 명이 근무했는데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떠났다”고 알려줬다.
 

‘3월부터 매트리스 교환 안 된다’
문 닫은 대진침대 본사엔 안내문만
최근 수거 매트리스 바닥에 쌓아둬
‘교환 못 받았다’ 소비자는 불만

공장에 들어서자 낯선 흰색 기계가 먼저 눈에 띄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설치한 방사능측정기였다. 지난해 5월부터 수거된 ‘라돈 매트리스’ 7만개가 이곳에서 해체되면서 생긴 기계다. 매트리스는 스프링 등 재활용이 가능한 부품을 빼고 속 커버와 스펀지 같은 오염물질을 따로 분리해 이 공장의 창고에 저장하고 있다. ‘방사능이 높지는 않을까.’ 순간 걱정이 됐다. 하지만 기계의 화면은 실시간 측정한 방사능 수치와 함께 정상이라는 문구를 계속 보여줬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공장 건물 내부는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붉은색 사무동과 미색 창고동 둘 다 조용했다. 창고동 주변 바닥엔 매트리스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대진침대 본사 경비실 창문에 폐쇄 안내문이 붙어있다. [나현철 기자]

대진침대 본사 경비실 창문에 폐쇄 안내문이 붙어있다. [나현철 기자]

회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더는 버티기 힘들어 지난달부터 매트리스 제작과 교환을 중단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이후 기존 제품을 환불 교환하고 대리점에 있던 물량을 반품받아 왔는데 새 침대는 팔리지 않아 자금이 말랐다는 것이다. 여러 건의 집단소송을 포함, 20여건의 소송에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원안위에 따르면 침대 제작과 교환은 중단했지만, 수거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 회사가 아니라 원안위가 맡은 과정이라 가능한 일이다.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60개가량이 수거됐다. 창고동 옆에 쌓여있는 게 바로 그 매트리스였다. 원안위 심은정 과장은 “판매된 라돈 함유 제품 중 사실상 대부분이 수거됐지만, 회사 운영이 중단되면서 일부 소비자가 교환하지 못하고 있는 거로 안다”며 “추가로 수거된 매트리스는 일정량이 모이면 해체해 보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창고 건물 옆에 최근에 수거했으나 공장 가동이 중단돼 해체하지 못한 매트리스들이 쌓여 있다. [나현철 기자]

창고 건물 옆에 최근에 수거했으나 공장 가동이 중단돼 해체하지 못한 매트리스들이 쌓여 있다. [나현철 기자]

하지만 아직 매트리스를 교환하지 못했다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대진침대집단소송 인터넷 카페엔 ‘매트리스를 가져가고 6개월째 소식이 없어 방바닥에 이불 깔고 잔다’ ‘기다리다 지쳐 결국 다른 매트리스를 샀다’는 불만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공장을 나와 주변을 살펴봤다. 퇴근 무렵이었지만 열심히 작업하는 공장이 적지 않았다. 차량이나 사람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길거리를 지나다녔다. 길 건너 음식점에 들어갔다. 방사능 라돈으로부터 100m가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앞에 라돈 창고가 있다던데 아느냐”고 물어봤다. “바로 앞 빨간 건물 있는 공장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별 관심이 없는 말투였다. 주인은 공장이 폐쇄됐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일하던 사람들이 다 외지에서 왔다. 동네에 살지도 않고 우리 식당에서 밥도 안 먹어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보관된 게 방사성 물질인 건 아는데 건강에 영향이 없다고 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근처 편의점 직원 윤 모 씨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주변에 방사성 물질로 병이 났거나 불편하다는 사람은 못 봤다”고 했다. 동네 이철하 이장은 “세월이 꽤 지나 불안감이 사라져 이젠 주민들도 다 그런가 보다 한다”고 전했다. 원안위도 “사용된 라돈 자체의 방사능 함량이 높지 않아 창고만 벗어나도 안전하다”고 말한다.
 
원자번호 86번인 라돈은 방사성 물질이다. 미국환경보호국은 흡연 다음가는 주요 폐암 원인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다행히 반감기가 3.82일로 짧다. 대략 나흘마다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침대에서 문제가 된 라돈은 음이온을 낸다는 세륨 족 희토류원소인 모나자이트에서 유래했다. 많은 소비자가 건강에 좋다는 음이온 때문에 이 침대를 샀으니 이런 역설이 또 없다.
 
지난해 8월 대진침대 공장에서 작업자가 라돈침대를 해체하고 있는 모습. [사진 원안위]

지난해 8월 대진침대 공장에서 작업자가 라돈침대를 해체하고 있는 모습. [사진 원안위]

어쨌든 이제 라돈 침대는 일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방사능에 오염된 침대가 수거되고 방사성 물질이 분리 보관되면서 라돈 자체는 문제의 시야에서 가라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문제들이 있다. 소비자 피해 보상과 방사성 물질의 최종 처리다.
 
지난해 10월 소비자분쟁조정위는 6387명의 소비자가 제기한 분쟁조정에 대해 “대진침대는 침대를 교환해주고 소비자 1인당 30만원을 보상하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대진침대는 “자금 사정과 민사소송”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사실상 소비자에게 줄 돈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에 따라 4900여명이 1인당 최고 1000~2000만원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 15건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소송에 이겨도 원하는 보상을 얻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대진침대의 현금자산 180억원은 그동안 침대 교환과 회사 운영에 소진됐다. 부동산 자산 130억원이 남아 있지만, 소송인이 워낙 많고 여러 부채도 남아 있다.
 
창고에 있는 방사성 라돈도 당분간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낼지, 소각 등 일반처리를 해야 할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기물의 운명은 환경부가 현재 추진 중인 폐기물관리법령 개정에 달려 있다. 환경부는 상반기 중 연구용역을 마치고 하반기에 관련규정을 바꿀 예정이다. 이에 따라 빠르면 연말, 늦으면 내년에 라돈 방사성 물질의 처리방식이 정해진다.
 
라돈침대 사건은 우리가 지나치고 있던 생활 방사성 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우연히 방사능 측정기를 침대에 대봤던 한 주부의 경험이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왔다. 방사능 하면 원자력만을 떠올렸던 우리 사회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놀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몰랐던 위험요인이 새로 드러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건 이에 대처하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다. 모든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사회는 세상에 없다. 위험이 드러난 뒤의 대처 방식이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며칠 전 있었던 강원도 산불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산불은 하루 만에 꺼졌지만, 방사능은 결코 인위적으로 막지 못한다. 라돈침대가 모두 수거됐다고 해서 생활 방사능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닌 이유다. 정부 관련 부처의 대응, 소송을 다루는 재판부의 판단이 새로운 위협에 대한 한국사회의 위기대응 방식과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라돈침대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현철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