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현기의 시시각각] ‘굿 이너프 딜’보다 ‘굿 이너프 회담’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하노이 회담 이틀 후 일본 후지TV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2월 28일 오전 9시 40분(현지시각). ‘트럼프-김정은’ 단독회담이 끝난 직후의 상황이었다. 두 정상은 메트로폴 호텔 풀 사이드를 산책했다. 그 앞에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마주한 네 사람. 김정은은 폼페이오에 악수를 청한 뒤 바로 짧게 뭔가를 말했다. 통역(신혜영)은 바로 이를 영어로 전달했다.
 

잡음 속 하노이 대화 뭘 의미하나
성급히 접근하면 낙동강 오리알
트럼프 ‘린치핀’ 말하면 ‘굿 이너프’

그런데 어느 방송사도 이 부분을 정확히 잡아내지 못했다. 야외 잡음과 카메라 플래시 소리 때문이다. 후지TV는 이를 파고들었다. 음성분석 전문기관인 일본음향연구소에 의뢰해 잡음을 제거해냈다. 일본식 집요함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단독회견을 마친 후 호텔 풀 사이드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서 통역을 통해 말을 건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왼쪽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단독회견을 마친 후 호텔 풀 사이드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서 통역을 통해 말을 건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왼쪽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당시 대화는 이랬다. “Was that idea all there? (그건 이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가?)”(북한 통역사), "I don’t know(모르겠다)”(폼페이오). 후지TV는 폼페이오가 답변 직후 갑자기 뭔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리를 떠난 점을 지적하며 "김정은이 확대회담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물었고, 폼페이오는 볼턴을 찾는 척 자리를 뜬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과연 그럴까. 그 정도 건으로 김정은이 트럼프 아닌 폼페이오에 그걸 캐물었을까. 김정은은 단독회담에서 뭘 그리 놀랐길래 폼페이오를 바로 다그쳤던 것일까. 김정은이 언급한 ‘그건’은 무엇이었을까. 폼페이오는 왜 모른다고 둘러대며 자리를 떴을까. 수수께끼였다.
 
그걸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최근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로이터는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핵무기와 핵폭탄 연료를 미국에 넘기고, 핵시설과 생화학 프로그램, 탄도미사일, 발사대, 관련 시설을 완전히 해체하라’는 요구가 담긴 문서를 건넸다”고 전했다. 볼턴의 ‘리비아 모델’과 폼페이오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결합한, 북한으로선 기가 찰 ‘아이디어’였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로이터 보도 내용을) 브리핑을 받아 알고 있었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트럼프로부터 예상치 못한 ‘통지서’를 받아 든 김정은의 분노, 풀 사이드에서 폼페이오에게 경위를 캐물을 때의 당황해하는 얼굴, 그리고 당일 자정 넘어서의 기자회견…. 풀 사이드의 어색했던 대화의 퍼즐이 맞춰진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 내일(현지시간 11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열흘 전 워싱턴을 찾은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이) 만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사실 순서가 잘못됐다. 김정은의 ‘하노이 이후 생각’을 정확히 전달받은 뒤 한미 간에 대책을 논의했어야 했다. 현 시점에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영변+스냅백(합의 불이행 시 제재 복원)’, ‘굿 이너프(충분히 괜찮은) 딜’ 같은 추상적이고 예전에 다 나왔던 카드를 끌어모아 미국에 제시한들 그게 먹힐까.
 
‘올바른 합의(right deal)’를 외치기 시작한 미국과는 결이 다르다. 설령 회담에서 트럼프가 경청하고 존중의 뜻을 표시한다 해도 이미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X표’를 던진 미 관료, 의회를 파고들긴 힘든 상황이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우리가 제시하는 안에 북한이 동조할지도 미지수다. 당장 한미정상회담과 같은 날 최고인민회의가 열린다. 거기서 북한이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지기라도 하면 우린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상황 끝이다.
 
메트로폴 호텔 풀 사이드의 김정은-폼페이오 간 ‘되살아난 대화’가 그런 리스크를 여실히 보여준다. 청와대가 이런 정황을 알고도 ‘선(先) 한미정상회담’에 나섰는지는 모르겠다.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내일 트럼프 입에서 취임 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한미동맹은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란 말이라도 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굿 이너프’ 아닐까 싶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