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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의 이코노믹스] 선의로 포장된 포퓰리즘 정책이 한국을 덮치고 있다

전 세계 휩쓰는 대중영합주의
이코노믹스 4/10

이코노믹스 4/10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아 끝없는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는 베네수엘라만의 일이 아니다. 이 괴물이 어디서부터 자라난 것일까. 그 출발을 보려면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자본주의 독주체제 30년의 귀결
시장경쟁 낙오자들의 집단 반발
‘착한 의도’지만 ‘나쁜 결과’ 낳아
구조개혁 없어 소득분배만 악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촉발된 냉전 종식 후 세계는 자본주의 독주체제로 30년을 지내왔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대불황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 결과 가장 주목되는 정치적 변화는 포퓰리즘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택, 2017년 독일 대안당의 약진,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연정 참여, 지난해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정권 장악, 스웨덴 민주당과 벨기에 ‘플랑드르 이해’의 약진, 프랑스의 ‘노란 조끼’가 줄지어 일어났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2016년 대중 영합에 능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포퓰리즘은 미국과 유럽 정치의 지배적 흐름으로 떠올라 세계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 이유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1990년 소련의 붕괴 이후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로 등장한 세계주의(Globalism)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막론하고 심각한 양극화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잃은 패자(loser)가 양산됐으며, 소득 불균등 정도는 지난 30년래 최고로 악화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은 2007년 7.5%에서 2013년 11.4%까지 상승했으며, 2017년 8.1%로 개선됐으나 여전히 2007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둘째,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의 사회적 의지처 역할을 해 왔던 노조와 교회가 크게 위축된 한편 기득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노동자 계층들 간에는 정치와 사회로부터 ‘버려졌다’는 상실감과 불만이 팽배했다. 셋째, 기술적으로 사회연결망 플랫폼의 발달로 개인이 쉽고 빠르게 다수 대중과 견해를 공유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포퓰리즘은 흔히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행태’로 받아들여져 저질 정치 행태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정치 엘리트들로부터 대중들이 외면받았다고 느끼는 민심의 이반과 신뢰 상실에 따른 대중의 자구적 선택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따라서 포퓰리즘의 주류는 반(反)엘리트주의로 기득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강하게 거부한다. 더구나 유럽 통합과 세계화가 양극화를 초래함으로써 대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했기 때문에 포퓰리즘은 반(反)개방주의다.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포퓰리즘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중들의 집합체로 복잡한 논리를 거부하고 단순한 목표를 추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가디언(Gardian)에 따르면, 포퓰리스트가 내각에 참여한 유럽 국가는 1998년 스위스·슬로바키아 두 나라에 불과했으나 2018년엔 11개국으로 늘어났다.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정당의 득표율은 7%에서 25%로 증가했다. 그 결과 2차 대전 후 유럽 각국의 정치를 이끌어 왔던 중도 보수 및 중도 진보 정당들은 대중의 신뢰를 잃고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 정당들이 기존 중도 보수·중도 진보 정당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함으로써 국민투표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영국 정치가 극도의 혼란에 빠짐으로써 포퓰리즘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또 2015년 메르켈 독일 총리의 시리아 난민 수용 결정은 기민당의 지지 약화와 독일 대안당(AfD)의 약진을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결과 메르켈의 집권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이제 세계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지향하는 우아한 정책은 유럽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다음 달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현재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 우파 정당이나 중도 좌파 정당들이 극우와 극좌 정당에 의석을 더 빼앗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상실감에 빠진 대중에 대한 사회경제적 압박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럴수록 포퓰리즘이 더 득세하고,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의 공약이나 경제정책은 대중의 요구를 즉각 수용한 결과, 정책의 타당성과 적합성이 부족해 지속 가능성이 낮다. 대표적으로 대중은 ‘낮은 조세 부담에다 높은 임금과 복지 수준’를 원한다.  
 
그러나 재정적자의 누적이란 부작용 없이 이런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따라서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시장의 신뢰가 저하되면서 기업의 투자 의욕이 손상됨으로써 성장잠재력이 낮아진다. 또 포퓰리즘 정부는 자국 이기주의를 우선한다. 그래서 국제적 정책 공조가 어렵고, 세계 가치사슬과 세계 무역을 위축시킨다. 시장에서 성장과 효율의 엔진을 움직이는 동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즘이 포퓰리즘의 산물이었음을 일깨워준다.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유럽의 장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세계주의의 후퇴는 관용성과 다양성 등 인류 보편적 가치의 퇴조로 촉발됐다. 특히 반이민과 인종차별 경향은 더욱 부정적이며, 세계 무역과 개방을 기피하는 포퓰리즘 정책은 유럽 경제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지난 30년을 이어온 글로벌리즘 시대는 다수 대중의 고통과 분노로 끝나가고 있다. 그 반작용으로 대중은 포퓰리즘에서 위안을 찾고 자본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다음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그 해답을 찾기까지 우리는 혼란의 시대를 인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분배 구조 악화시키는 한국의 포퓰리즘
촛불

촛불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 정부인가. 2300개 시민·노동단체와 연인원 1700만 명이 참가한 촛불 혁명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정부임이 분명하다. 평화적인 시민운동을 배경으로 탄생한 정부라는 특별한 명예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문 정부 역시 다른 나라들 처럼 포퓰리즘 정부가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포퓰리즘 정책의 함정’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들은 정책 의도가 ‘착하고 바르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정책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문제는 국민에게 약속한 목표만 저격하는 식의 포퓰리즘식 정책 추진은 시장 메커니즘을 왜곡하고 시정의 신뢰를 상실함으로써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최저임금은 인상됐으나, 일자리의 감소로 근로자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해 소득분배 구조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게 대표 사례다.
 
특히 한국 경제의 가장 절실한 과제는 식어 가는 성장동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개혁과 시장 친화적인 투자촉진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구조개혁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투자촉진정책은 재벌개혁과 상충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정부가 추진하기 어렵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유럽의 포퓰리즘 확산이 유럽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경고를 문재인 정부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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