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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린북, 브라운 그리고 휴거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그 날 그 식당에서 나는 유일한 ‘유색’ 인종이었다. 현지인 친구와 함께 예약한 자리까지 걸어가는 사이 주변은 갑자기 물이라도 끼얹은 듯 싸해졌다. 그리고 식사하는 내내 뒤통수에 와서 꽂히던 흘낏대는 시선과 귓전을 울리던 수군거림. ‘아 참, 여기가 미국 남부였지!’라고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법으로 흑백 분리 철폐했지만
빈부격차 따른 차별 남은 미국
우리는 사는 집 따라 계급 갈려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2007년 한 해 동안 머문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는 채플힐이란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촌답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허물없이 어울리는 친근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남부 특유의 공기가 훅 치고 들어오곤 했다. 나를 빼면 손님과 직원 모두가 백인이던 문제의 식당이 위치한 곳도 인근 도시인 랄리. 모처럼 비싼 밥 한번 먹으려다 은근한 인종차별에 기분만 상하고 만 거다.
 
문득 10년도 더 지난 해묵은 기억을 떠올린 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 ‘그린북’을 보면서다.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천재적인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가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62년의 미국 남부로 콘서트 투어를 다니다 맞닥뜨린 체험을 생생히 그려냈다. 당시 이들이 랄리에서 치른 곤욕은 내가 겪었던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콘서트 도중 볼일을 보려는 턱시도 차림의 주인공에게 주최자가 야외에 얼기설기 세워진 임시 변소를 쓰라고 가리켰으니 말이다. 쾌적한 실내 화장실은 백인들 전용이라면서.
 
영화 제목인 ‘그린북’ 자체가 그 시기 남부에서 흑인이 갈 수 있는 모텔과 식당, 주유소 등을 담은 여행안내 책자를 가리킨다. 거길 벗어나 백인들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조롱과 욕설은 기본이고 폭행과 체포까지 감수해야 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들이 해방되고 여러 차례 헌법을 개정해 평등한 시민권이 부여됐지만 이후 10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일상 속 차별은 여전했던 거다. 흑인과 백인의 공간을 분리하되 평등을 보장한다는 이른바 ‘짐 크로우 법’이 대표적이다. ‘그린북’ 속 야외 변소와 실내 화장실 같은 ‘평등한 분리’가 버스와 열차, 병원과 공원 등 도처에서 이뤄졌다.
 
변화는 학교에서 시작됐다. 집에서 가까운 백인 학교 대신 멀리 떨어진 흑인 학교에 다니는 8살짜리 딸이 안타까웠던 아버지가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일명 ‘브라운 재판’이다. 1954년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란 역사적 판결을 내리며 마침내 흑백 통합 교육의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 판결 이후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이 추진됐는가 하면, 주지사가 군을 동원해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자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만큼 극심한 반발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미국 사회는 어떨까. ‘브라운 재판’ 이후 반세기 넘게 지났지만 빈부 격차 탓에 인종 분리 교육이 여전하다. 백인 거주지에 가난한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발붙이기 힘들다 보니 공립 학교마다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다니는 상황이 벌어진다(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 결과). 그 결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조차 두 딸을 연간 학비가 수천만 원대인 사립 학교에 보냈을 정도로 지역별로 공교육의 질이 천차만별이다.
 
때마침 이번 주 수요일 방영될 JTBC ‘차이나는 클라스’가 ‘브라운 재판’ 등 사법의 역사를 다룰 예정이라 그 준비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도 곰곰 짚어보게 됐다. 난민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소외는 물론, 주거 공간에 따른 차별이 공공연한 현실 말이다. 임대 주택에 살면 ‘휴거’(휴먼시아 거지)니 ‘주거’(주공아파트 거지)로, 빌라에 살면 ‘빌거’(빌라 거지)로 부르며 따돌린다는 건 익히 알려진 얘기. 거기다 임대와 일반 아파트가 같은 단지에 있는 경우 ‘분리 교육’을 위해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고 한다. 놀이터와 출입구 이용을 막기도 하고, 유치원 통학 차량이나 초등학교 학급을 따로 편성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는 거다.
 
피부색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종류나 평수 역시 결코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어른들 세계의 실상은 그렇다 쳐도 부디 아이들 교실에서만이라도 이런 몹쓸 일들이 사라지길 바라며 ‘브라운 재판’의 판결문 일부를 전한다.
 
“초등학교와 상급 학교에서 한 그룹의 어린이들을 다른 어린이들과 분리하는 건 공동체 내 지위와 관련한 열등감을 불러일으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준다…공교육에서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정책은 절대 설 자리가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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