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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너무 늦은 반성은 없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선거는 아름답다.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한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영국에서도 비관론이 쏟아진다. 그래도 믿을 건 선거다. 이때는 고개가 뻣뻣하던 정치인이 손을 내밀고, 듣는 척이라도 한다. 권력자가 확신을 가지면 참모들도 입을 다무는데, 그를 향해 주먹을 날릴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다.
 
4·3 재·보궐선거도 그랬다. 집권당 대표가 반성문을 썼다. 정부 출범 2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보궐선거의 민심을 받들어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만 생각했다면 어물쩍 넘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내각에 보낸 의원들을 복귀시키고, 대통령 측근들까지 동원했다. 민심의 흐름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통적인 열세지역 선거 결과라 해도 건성으로 넘길 수 없다.
 
이번 선거로 달라진 것은 없다. 20대 총선 결과대로 의석을 가져갔다. 그러나 민심은 추세다. 2년 전 대통령 선거 때 창원 성산에서 한국당이 얻은 표는 27.5%였다. 지난 해 6월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원 비례득표가 29.3%였던 것이, 이번에는 45.2%를 얻었다. 기초의원이긴 하지만 전주에서 민주평화당에 압도적으로 진 것도 꺼림칙하다. 전패다.
 
이 정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야당이 아니라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다. 비판이 아니라 성과로 표를 얻어야 하는 위치다. 문을 닫을 지경이었던 자유한국당을 살려준 것도 더불어민주당이다.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한국당에 그것이 독(毒)이 될지 모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를 강조했다. ‘사람’은 ‘밥’이다. 권력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민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 그런데 낙관적인 경제 뉴스가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는 절망적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거시지표는 견고하다”고 한다.
 
정부는 과거 정부 탓을 한다. 이제 3년 차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할 수 없다. 5년 간 적폐를 청산하는 동안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고 동의한 일이 없다. 당장 밥이 필요하고,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탓만 하기에는 5년이 너무 짧다. 이번 보궐선거가 그런 민심을 보여준다.
 
중국의 사회주의를 지켜낸 건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다. ‘배고픈 이념’은 견디기 어렵다. 덩은 자신이 수난을 겪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대해서도 완전한 단절보다 비판적 승계를 선택했다. 배제의 정치 대신 타협과 공존의 길을 걸었다. 그의 눈은 미래에 있었다.
 
국정교과서를 만든다고 정권이 역사를 바꿀 순 없다. 100년 전으로 돌아가 훈장을 뿌린다고 뿌리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정치고, 외교다. 역사는 반성을 해야 하지만, 외교에서는 자기 발밑에 삽질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주인이라는 주체사상을 내세운 북한은 아직도 항일빨치산 시대를 살고 있다. 주인인 주민에게 고난의 행군을 요구한다. 고난은 모두 미국 탓이다.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매듭이 필요하다. 싫어도 국제정치에는 힘이 작용한다. 착한 나라, 나쁜 나라가 있을 수 없다. 나라 사이에 신뢰 문제도 있다. 사드 문제를 꺼내 중국을 희망 고문했지만 남은 건 아직도 풀리지 않는 보복 뿐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는데, 더 나은 합의를 추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거 정부를 비판하는 건 쉽다. 그러나 국제 합의를 뒤집는 데는 더 큰 희생이 따른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강조해온 ‘광해 외교’의 핵심은 명분보다 실리다.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국익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국’이냐 ‘오랑캐’냐가 아니라 힘과 국익이 기준이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판단, 우리의 위치에 대한 평가가 있는가. 과거 정부에 대한 적개심에 묻혀버린 건 아닌가. 주변 강대국 오랑캐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고, 과거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외교에 진이 빠졌다.
 
권력기관 개혁은 나부터 이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 가능하다. 과거 청산의 칼자루를 쥐여주고 집권 중반에 이르렀다. 칼날이 청와대 주변까지 겨냥하고 있는 지금도 개혁이 가능한지 회의적이다. 관제 공론화까지 거쳐 원자력 정책을 흔들어 놓았는데, 곳곳에서 충돌한다. 미세먼지도, 수소 경제도 거기에서 꼬여 있다. 대통령이야 그렇다 치고, 전문가 참모들은 그럴 줄 몰랐을까. 무능과 무책임의 차이다.
 
대통령 선거가 갑작스레 치러졌다. 그런데도 재빨리 정부를 안정시켰다. 국민은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대선을 이미 한번 치러본 후보라 준비가 탄탄해 보였다. 그런데 갈수록 믿음이 흔들린다. 한 면만 바라본 인기정책들이 여기저기서 충돌한다. 50년 집권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이 어렵다.
 
그래도 너무 늦은 반성은 없다. 아무리 늦어도 늦은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민생, 실용적 관점에서 재정비한다면 이번 선거는 좋은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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