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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K뷰티의 미래를 실리콘밸리에서 찾다

‘세계 10대 혁신 뷰티기업’ 뽑힌 미미박스에 가보니 
판교 오피스H 빌딩에 있는 미미박스 본사. 뷰티기업으론 드물게 판교에 자리를 잡았다. 안혜리 기자

판교 오피스H 빌딩에 있는 미미박스 본사. 뷰티기업으론 드물게 판교에 자리를 잡았다. 안혜리 기자

미국 최고 스타 정치인의 K뷰티 사랑이 올 초 전 세계적 화제를 뿌렸다. 2018년 역대 최연소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29·민주당)이 지난 1월 "한국의 피부관리 방법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짧은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린 덕분이다. 수십만 명이 이 포스팅을 봤고, 미국을 넘어 영국 가디언의 '한국식 화장법' 특집 기사로 이어졌다. "코르테스의 스타성 덕분에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졌다"는 이유였다.  
 미국 정가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최연소 연방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K뷰티 팬을 자처하면서 K뷰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AP=뉴시스]

미국 정가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최연소 연방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K뷰티 팬을 자처하면서 K뷰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AP=뉴시스]

K뷰티는 요즘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뭔가 아쉽다. 'K뷰티'라는 글로벌 인지도에 비해 개별 브랜드 파워는 한참 못 미쳐서다. 마치 BTS나 트와이스 없는 K팝이라고나 할까.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매출 6조 원이 넘는 뷰티기업이 버티고 있고,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같은 화장품전문제조업체(ODM)가 속속 (매출) 1조 클럽에 합류할 정도로 화장품 제조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마켓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뷰티시장인 미국에서는 여전히 유럽은 물론 일본 기업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경영 매체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뷰티 기업 톱 10'에 '미미박스'가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의 세계 최대 뷰티 유통기업인 '세포라', 포브스가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로 꼽은 카일리 제너(22)의 '카일리 코스메틱'과 함께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엔 '스타트업계의 하버드'로 불리는 실리콘 밸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가 선정한 ‘2018년 가장 가치 있는 100대 기업’(투자한 1900여 개 기업 대상)에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글로벌 혁신기업들에 이어 26위에 오르기도 했다. 뷰티 기업으론 단연 1위였다.  

패스트 컴퍼니가 지난 2월 발표한 '세계 10대 혁신 뷰티 기업'. 9위에 미미박스가 보인다. [패스트 컴퍼니]

패스트 컴퍼니가 지난 2월 발표한 '세계 10대 혁신 뷰티 기업'. 9위에 미미박스가 보인다. [패스트 컴퍼니]

미미박스? 맞다. 2012년 자본금 3500만 원짜리 화장품 구독 서비스 회사로 출발해 이젠 '아임미미' 등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거느린 e커머스 기업으로 거듭난 바로 그 미미박스 말이다. 한국에서조차 아직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이 생소한 기업이 어떻게 쟁쟁한 국내외 경쟁자들을 제치고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게 됐을까. 또 존슨앤존슨 계열 벤처캐피털(VC)인 JJDC와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을 비롯해 쟁쟁한 VC들이 지난 5년 새 앞다퉈 1억 9050만 달러(2168억 원)나 투자한 이유는 뭘까.  

판교 미미박스 9층 사무실 입구엔 '성장'과 관련한 글귀가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벼락치기''sold out'은 회의실 이름이다. 안혜리 기자

판교 미미박스 9층 사무실 입구엔 '성장'과 관련한 글귀가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벼락치기''sold out'은 회의실 이름이다. 안혜리 기자

그 답을 얻으려고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창업자 하형석(36) 대표와 전화로 인터뷰하기에 앞서 4월 초 미미박스 한국 본사를 먼저 가봤다. 뷰티산업 중심지인 서울 강남이 아니라 IT기업의 심장부 판교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2014년 일찌감치 진출한 미국에서도 뷰티산업 양대 중심지인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뒀다. 이 회사, 대체 정체가 뭘까.  

판교 미미박스 10층 회의실 공간. 유리벽이라 어디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한 눈에 보인다. 안혜리 기자

판교 미미박스 10층 회의실 공간. 유리벽이라 어디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한 눈에 보인다. 안혜리 기자

네 면 모두 유리라 시야가 탁 트인 10층의 한 회의실에 앉자마자 한우람 HR(인사) 리더가 "무슨 차를 마시겠느냐"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타벅스에서 모바일로 주문하듯이 회의실 바로 밖에 있는 사내 카페에 차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400만 회원을 둔 미미박스 국내 인터넷 쇼핑몰과 연동된 결제 서비스다. 직원 200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공간인 9층에선 정작 화장품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 반면 제품별 판매량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는 한 눈에 들어왔다. 
미미박스 사내 카페에서 음료를 살 땐 각자 스마트폰으로 미리 주문, 결제할 수 있다. 오른쪽은 사옥 벽에 설치된 실시간 판매 현황 데이터 스크린. 안혜리 기자

미미박스 사내 카페에서 음료를 살 땐 각자 스마트폰으로 미리 주문, 결제할 수 있다. 오른쪽은 사옥 벽에 설치된 실시간 판매 현황 데이터 스크린. 안혜리 기자

사무공간은 IT기업 특유의 수평적 배치다. 대표 집무실이 별도로 있기는커녕 대표를 포함해 모든 부서장은 창문에서 가장 먼 바깥 자리에 파티션 없이 나란히 앉는다.  

미미박스 9층 사무실. 비어있는 책상이 하형석 대표가 한국에 들어오면 사용하는 집무실이다. 안혜리 기자

미미박스 9층 사무실. 비어있는 책상이 하형석 대표가 한국에 들어오면 사용하는 집무실이다. 안혜리 기자

패스트 컴퍼니가 미미박스를 혁신기업에 선정하면서 밝힌 '데이터와 기술을 융합한 서비스로 뷰티산업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선정 이유가 과연 뭘 얘기하는지 어렴풋이나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사실 더 큰 차이는 외형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신생 뷰티기업이라고 하면 그저 마케팅에 치중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회사의 핵심 키워드는 '마케팅'이 아니라 '데이터'다. 전체 직원 가운데 20%를 개발자로 채우고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책까지 뒀다.  

그리고 실제로 데이터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지난해 세포라와 협업해서 미국 시장에 내놓은 자체 색조 화장품 브랜드 '카자'가 대표적이다. 미미박스는 세포라가 보유한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과 6개월 만에 47개 제품을 만들어내 전 세계 뷰티업계를 놀래켰다. 통상 기획에서 출시까지 짧아도 18개월, 길게는 3년 이상 걸린다는 게 이 업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세포라의 풍성한 데이터에 미미박스의 데이터 활용 능력이 더해져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하 대표는 이 과정을 "지도를 보고 따라간 길"이라고 표현했다. 고객 니즈는 있는데 기존 브랜드가 채워주지 못한 빈 곳을 정확히 알고 찾아갔다는 의미다. 고객이 원하는 컨셉트와 가격대의 제품을 요즘 미국에서 뜨고 있는 K뷰티로 포장해 재빨리 내놓았으니 반응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온라인 판매 성과가 놀랄 만큼 뛰어나 올해는 색조에 이어 스킨케어 브랜드도 내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미미박스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보다 더 큰 매출을 올렸다.  
한국 뷰티업계에선 큰 기업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18년에서야 디지털전략 유닛(부문)과 디지털 기술개발 디비전(사업부)를 신설했다. 서경배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화장품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디지털과 모바일"이라며 "디지털의 변화를 보다 확고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제대로 못 했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인 하형석 대표는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전역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동영상에 출연한다. [본인 제공]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인 하형석 대표는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전역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동영상에 출연한다. [본인 제공]

미미박스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은 것도, 또 하 대표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근무하는 것도 이처럼 기존의 업계 강자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대표가 현지에서 직접 데이터를 더 많이 배우고 이를 토대로 시장을 개척하는 게 경쟁사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처음엔 뷰티 중심지가 아닌 곳이라 걱정했지만 지금은 옳은 판단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하 대표는 "최근 실리콘밸리 트렌드는 기존 소비재와 디지털과의 융합"이라며 "뷰티 회사라 확실히 더 주목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분석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맥킨지는 지난해 뷰티산업 관련 보고서에서 디지털에 기반한 후발 뷰티업체 성장세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런 후발 브랜드 성장률은 기존 업체 대비 4배 이상 빠르다"며 "2008년 이후 뷰티업계에 들어간 VC 투자액 27억 달러 가운데 70% 이상이 2014~2017년에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뷰티시장의 흐름, 때마침 분 K뷰티 바람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미미박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셈이다.  

하 대표는 "미국에서 이룬 성과가 하나둘 알려지면서 '어떻게 하면 미국 진출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며 "내 답은 '미국 진출을 하려면 미국에 가야 한다'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말했다. 일단 실행에 옮기라는 얘기다. 하 대표 스스로가 정말로 그랬다. 지난 2014년 한국 스타트업으로선 처음으로 와이컴비네이터(YC) 선택을 받았을 때 무작정 미국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두드렸다. 구글에서 데이터를 받고 싶으면 링크드인에서 구글 담당자 연락처를 찾아 "당신네가 데이터에 기반해 내놓는 가정을 시장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요구를 관철시켰다.  

미미박스 사원증. 앞면엔 '미미박스를 성장시키는', 뒷면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를 채우는 건 직원 개개인이다. [미미박스 제공]

미미박스 사원증. 앞면엔 '미미박스를 성장시키는', 뒷면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를 채우는 건 직원 개개인이다. [미미박스 제공]

하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머물며 매일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매일 밤 11~12시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 진출을 안 하고 한국에 있었다면 훨씬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만 한국 제품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함께 성장하고픈 바람이 그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직원 평균연령 31세의 젊은 기업을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같이 성장하는 가치를 강조하는 이 젊은 창업가는 존재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이미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교 미미박스 사무실 벽에 적혀 있는 창업자 하형석 대표(영어명 Dino) 메시지. 안혜리 기자

판교 미미박스 사무실 벽에 적혀 있는 창업자 하형석 대표(영어명 Dino) 메시지.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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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