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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 항공27대 구입···대한항공 '위기의 승부사'

향년 70세로 타계한 조양호 회장 
고 조중훈 회장 영결식. 왼쪽부터 부인 김정일 딸 조향숙 1남 조양호, 2남 남호, 3남 수호, 4남 정호 [중앙포토]

고 조중훈 회장 영결식. 왼쪽부터 부인 김정일 딸 조향숙 1남 조양호, 2남 남호, 3남 수호, 4남 정호 [중앙포토]

 
8일 새벽 항년 70세를 일기로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래 45년 이상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걸었다.
정비·자재·기획·정보통신·영업 등 항공 관련 전 부서들을 두루 거치면서 실무까지 겸비했다. 또 항공·운송 관련 모든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항공·운송 분야에서 조양호 회장 수준의 전문가가 드물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고 조중훈 회장 영결식에서 영장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 앞에서부터 조남호 회장의 아들 조원국,부인 김정일,딸 조향숙,1남 조양호,2남 남호, 3남 수호, 4남 정호씨. [중앙포토]

고 조중훈 회장 영결식에서 영장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 앞에서부터 조남호 회장의 아들 조원국,부인 김정일,딸 조향숙,1남 조양호,2남 남호, 3남 수호, 4남 정호씨. [중앙포토]

위기를 기회로 만든 탁월한 경영자
에어버스의 A380 항공기의 첫 운항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만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중앙포토]

에어버스의 A380 항공기의 첫 운항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만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중앙포토]

 
조양호 회장이 처음 대한항공에 발을 들인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었다. 1978년~1980년에는 2차 오일쇼크도 터졌다. 글로벌 여객 운송 사업을 하는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다.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수천명을 감원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원가는 줄이되, 시설·장비가동률 높이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불황에 호황을 대비한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은 오일쇼크 이후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동 여객수요를 확보하고 신규 중동 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중앙포토]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중앙포토]

1997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도 인상적이다. 당시 대한항공 운영 항공기 112대 중 임차기는 14대뿐이었다. 대부분 항공기를 자체적으로 소유했다. 조 회장은 항공기를 매각 후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해 IMF의 파고를 넘어섰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보잉737NG 주력 모델(보잉737-800·보잉737-900) 27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보잉은 대한항공에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축소하고 금융비용을 유리하게 주선한다. 당시 조 회장이 구입한 항공기는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자리매김하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다.
차세대 항공기를 과감하게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조양호 회장의 업적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까지 겹치면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구매계약을 맺었다.  
2006년 세계 항공시장이 반등하자 글로벌 항공사는 앞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했지만, 항공기 제작사는 넘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3년 전 차세대 항공기를 구입한 대한항공은 적기에 신기종을 투입할 수 있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육.해.공 물류 전문그룹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중앙포토]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육.해.공 물류 전문그룹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중앙포토]

조 회장은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한국에서는 물론 글로벌 항공업계를 이끌었다. 그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스카이팀 창설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조양호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가 동맹체로 재편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2000년 델타항공·에어프랑스·에어로멕시코와 함께 글로벌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을 주도적으로 창설한 바 있다. 또 아시아 지역 항공사가 대거 스카이팀 회원사로 참여하는데 조 회장이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캘리포니아주 주요 인사들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모습. 왼쪽부터 미겔 산티아고(Miguel Santiago)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케빈 드레온(Kevin DeLeon)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장 [사진 한진그룹]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캘리포니아주 주요 인사들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모습. 왼쪽부터 미겔 산티아고(Miguel Santiago)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케빈 드레온(Kevin DeLeon)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장 [사진 한진그룹]

또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들이 회원인 국제협력기구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특히 IATA 최고 정책 심의·의결기구(집행위원회·Board of Governors)에서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1명의 전략정책위원회(Strategy and Policy Committee) 위원으로 활동했다.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은 IATA의 주요 전략·정책, 연간예산, 회원사의 자격 등의 굵직한 결정을 주도한다. 덕분에 ‘항공업계의 UN 회의’라고 불리는 IATA 연차총회를 올해 사상 최초로 서울로 유치했다.  
조 회장은 2018년 5월 닻을 올린 델타항공과 태평양노선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기도 했다. 조인트벤처가 본격적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인천공항으로 항공 여객 수요를 유치하면서 대한항공 여객 매출만 10% 증가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결정적 기여
 
조양호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중앙포토]

조양호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중앙포토]

조양호 회장은 글로벌 물류기업인 한진그룹을 경영하면서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과 글로벌 마인드를 스포츠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대한체육회의 평창유치위원회 위원장 추천을 수락하고 1년10개월 동안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50번 가까이 해외 출장을 다녔다. 이 과정에서 약 64만km(지구 16바퀴) 이동했으며,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이러한 노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이어졌다.
6일 런던 엑셀노우스아레나 경기장에서 여자탁구 단체전 4강전이 열렸다.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이 경기장을 찾아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6일 런던 엑셀노우스아레나 경기장에서 여자탁구 단체전 4강전이 열렸다.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이 경기장을 찾아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또한 2014년 7월부터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지지부진하던 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경기장 및 개폐회식장 준공 기반을 만드는 한편,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를 성사시키는 등 평창동계올림픽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
아울러 조양호 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이자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으로서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대한항공은 탁구·배구 실업팀과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했다.
한국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했다. 조양호 회장은 2004년 6월 제11대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으로 선임된 이래 14년간 한국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국가가 없으면 방위산업도 없다는 ‘방산보국(防産報國)’의 가치를 토대로 방위산업 생산 물량 확보에 힘을 쏟았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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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