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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다투는 환자에 영양제 추천해준 의사, 제정신일까?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7)
중환자실 보호자가 면담을 요청했다.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냈다. 하얀 용지엔 처음 보는 몇 개의 단어가 쓰여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영양제 이름이다.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아주머니 설명을 기다렸다.
 
유명 대학병원 의사의 조언
한 중환자실 보호자가 하얀색 종이를 내밀며 환자에게 거기 써진 영양제를 놓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한 중환자실 보호자가 하얀색 종이를 내밀며 환자에게 거기 써진 영양제를 놓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환자에게 거기 써진 영양제를 놓아줄 수 있을까요?” 그녀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이름을 댔다. 거기서 수십 년간 교수 생활을 마치고 최근 개업한 의사가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환자 상태를 상의했더니 영양제를 추천해 주었단다. 환자가 병을 이겨내지 못하는 건 영양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담당 의사가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단다.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그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이 환자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보호자에게 설명을 들은 몇 가지가 전부일 것이다. 혈액검사, 활력 징후 무엇 하나 아는 게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제넘은 충고다.
 
환자에 대해 A부터 Z까지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바로 나다. 벌써 몇 날 며칠 뜬 눈으로 지켜보는 중이니까. 물론 나도 놓치고 있는 게 있을 수 있다. 혹시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좋은 충고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명문대학 교수님이라니,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하면 쪽팔릴 일도 아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제아무리 속이 쓰려도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영양제는 사정이 다르다. 환자는 지금 생사를 다투고 있었다. 고작 영양제를 논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결코 아니다. 그거야말로 환자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방증이었다. 정작 어려운 치료방법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만만한 영양제로 숟가락만 하나 얹으려는 듯이 느껴졌다.
 
“절 못 믿겠으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셔도 됩니다. 그 의사분이 있는 곳으로 가도 좋고요.”
나는 화를 억누르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보호자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못 믿는 게 아니라고, 기분 상해하지 마시라고. 지금까지 열심히 치료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양제 미련은 끝까지 버리지 못했다. 혹시나 모르는 일 아니냐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다시는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이제 와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아주머니의 마음을 굳이 꺾을 필요까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양제가 당시 환자에게 쓸데없는 것이란 생각엔 지금도 변함없다. [사진 Designed by Javi_indy, Freepik]

이제 와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아주머니의 마음을 굳이 꺾을 필요까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양제가 당시 환자에게 쓸데없는 것이란 생각엔 지금도 변함없다. [사진 Designed by Javi_indy, Freepik]

 
이제 와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깟 영양제가 무어 대수라고. 보호자가 간절히 원하는데, 그 소원 한번 들어주는 게 뭐가 힘들다고. 부작용이 걱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딱히 위험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돈 내는 것도 보호자였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아주머니의 마음을 굳이 꺾을 필요까진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영양제가 당시 환자에게 쓸데없는 것이란 생각엔 지금도 변함없다. 보호자의 심적 만족을 위해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약을 투약하는 건 의사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다만 원칙과는 무관하게 ‘그리 깐깐하게 굴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자꾸 후회가 드는 것이다.
 
변명하자면 의사인 나도 인간이다. 누군가에게 내 진료가 폄하되면 자존심이 상한다. 온갖 정성을 쏟으며 옆에서 날밤을 새웠는데, 그런 나보다 다른 의사를 믿는다면 어찌 서운하지 않겠는가. 옆집 춘장이 맛있다는 얘기를 굳이 내 중국집에 와서 할 필요는 없잖은가.
 
결국 나는 보호자에겐 미련을 남겼고, 그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서먹해졌다. 당연히 양쪽 모두에게 손해였다. 우린 환자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할 의사와 보호자였으니까.
 
“눈앞의 주치의 믿으세요”
그 때문에 나는 그 의사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전후 사정이야 모르지만,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또한 가까운 지인의 과도한 기대에, 뭐라도 한마디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지나가는 말에 보호자가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결과는 모두에게 너무 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주위에서 의료 상담을 하면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주치의를 믿으라고.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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