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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 때문에 못산다구!" 그래도 김해숙은 우리 엄마다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세 딸을 둔 엄마 선자 역을 맡은 배우 김해숙 [사진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세 딸을 둔 엄마 선자 역을 맡은 배우 김해숙 [사진 KBS]

김해숙이 연기하는 선자는 억척스럽고 정많은 엄마다. 설렁탕집을 하며 혼자 딸들을 길러냈다. [사진 KBS]

김해숙이 연기하는 선자는 억척스럽고 정많은 엄마다. 설렁탕집을 하며 혼자 딸들을 길러냈다. [사진 KBS]

 
마치 우리네 엄마를 보는 듯하다. 자식을 위해 간 쓸개 다 내주고도 '왜 이것밖에 못 해주냐'는 철없는 자식들 타박에 뒤돌아서 눈물 훔치는 엄마들. 자식 낳은 게 무슨 죄도 아닌데 뼛골 빠지는 손주 육아까지 의무인 양 떠맡고선 흰머리만 늘어가는 이 시대 엄마들 말이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하 ‘세젤예’)에서 배우 김해숙(64)이 연기하는 엄마는 바로 그런 엄마다.     
 
영화 '도둑들'의 씹던껌이나 '신과함께'의 초강대왕 같은 의외의 캐릭터도 있었지만, 김해숙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는 절절한 모성애 연기다. 김혜자, 고두심과 더불어 '3대 국민엄마'로 불리는 그다.    
 
'소문난 칠공주' ' 왕가네 식구들' '아버지가 이상해'(이상 KBS2) '무자식 상팔자'(JTBC) 등 많은 작품에서 엄마를 조금씩 변주해왔던 그가 '세젤예'에선 결이 완전히 또 다른 엄마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현실적인 엄마다. 이 드라마에서 김해숙이 연기하는 박선자는 딸들에게 자신과 같은 인생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설렁탕집 사장이다.  
 
딸의 것으로 보이는 노란 후드티에 호피 스카프를 두른 '기괴한' 패션, 태풍이 불어도 절대 풀리지 않을 것처럼 억세게 말린 꼬불꼬불 파마머리 등 외모부터 홀로 설렁탕집을 하며 세 딸을 번듯하게 키워낸 엄마의 강인함이 묻어난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부터 '억척 엄마' 김해숙의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며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내는 큰딸 강미선(유선)을 대신해 어린 손녀를 봐주기 위해 신호 따위는 무시하고 스쿠터를 모는 모습부터 심상치 않았다.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선자는 워킹맘 큰딸 미선(유선)을 대신해 손녀를 봐준다. [사진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선자는 워킹맘 큰딸 미선(유선)을 대신해 손녀를 봐준다. [사진 KBS]

 
설거지, 빨래, 밑반찬 준비 등 딸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건 기본. 철딱서니 없는 시어머니 하미옥(박정수)의 갑작스런 상차림 부탁을 받은 딸 대신 음식을 만들어 실어나르는 선자의 모습은 딸을 위해서라면 어떤 궂은일도 마다치 않을 우리네 엄마들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내가 정말 엄마 때문에 못산다구!"
딸들이 욱하는 마음에 한두 번쯤 내뱉었음 직한 말도 드라마에 나온다.  
 
그네를 타다 넘어져 다친 손녀를 들쳐 업고 뛰어온 선자에게 안사돈 미옥이 '애를 똑바로 보라'며 다그치자, 선자는 굳은 얼굴로 죄송하다며 거듭 사죄했다. 그 모습에 억장이 무너진 딸 미선은 "엄마 정말 미쳤어? 왜 애 하나 똑바로 못 보고 이게 뭐야! 내가 정말 엄마 때문에 못살아!"라며 울부짖었다.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큰딸 미선(유선)의 시집살이를 지켜보는 선자 [사진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큰딸 미선(유선)의 시집살이를 지켜보는 선자 [사진 KBS]

 
그 오열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엄마를 보모인 양 몰아붙이는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 등이 끓어오르며 터져 나온 한풀이 같았다. 이후 선자는 손녀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딸 미선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매일같이 들르던 미선의 집에 가지 못하고 혼자 숨죽여 흐느낀다. 시청자도 눈시울이 붉어진 이 장면은 왜 김해숙이 국민 엄마로 불리는지, 왜 그의 엄마 연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지 보여준다.  
 
"엄마 때문에 못살아!"가 진심이 아니란 걸 미선도, 선자도 안다. 실은 '이 힘든 세상에 엄마라도 있어서 살아가요'의 역설적 표현일뿐.    
 
사과하러 찾아온 미선에게 "왜 나한테 소리를 질러! 내가 동네북이냐, 내가 자식들 북이야?"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내는 선자의 모습은 '우리 엄마'들의 조심스러운 속내를 목청 높여 대변했다.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엄마 선자(김해숙)와 야무진 둘째 딸 미리(김소연) [사진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엄마 선자(김해숙)와 야무진 둘째 딸 미리(김소연) [사진 KBS]

김해숙이 그려내는 현실 엄마 선자는 시청자에게 무겁게만 다가가진 않는다. 대기업 부장인 야무진 둘째 미리(김소연)가 선물해준 옷을 보고 "이거 다 해서 얼마 주고 샀어? 하여간 넌 돈 쓰는 그 손모가지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니까"라고 꾸짖다가도, "엄마 너무 예쁘다. 우리 엄마 귀엽다. 시집가도 되겠네"라는 딸의 애교에 못 이기는 척 거울을 본다. 소녀처럼 환한 표정을 짓는 대목에선 시청자들의 얼굴도 함께 환해진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손녀가 다친 뒤 딸의 집에 가지도 못하고 혼자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손주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엄마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김해숙 배우가 섬세하게 표현해줬다"며 "드라마가 방영 초부터 화제를 모으는 데는 김해숙 배우의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엄마 연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자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퍼주고, 딸 때문에 울고 웃는 엄마 그 자체다.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가 되려 고군분투하는 선자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되는 건 전적으로 김해숙의 45년 연기 내공 덕분이다.
 
"내 좋아하는 일 때문에 두 딸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은 100% 다 못했다"는 미안함, 사업실패로 생긴 막대한 빚을 갚느라 지방행사까지 뛰며 40대를 '억척스럽게' 보내야 했던 개인사가 선자 캐릭터에 녹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딸들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를 '박선자'라는 역으로 위로해주고 싶다"는 포부처럼, 이미 많은 이들이 그의 절절하고 가슴 찡한 현실적 모성 연기에 위로받으며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엄마' 김해숙의 귀환을 두 팔 벌려 반기는 이유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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