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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S·WAR…살아 숨쉬는 데이터가 야구의 꽃

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한국야구 기록의 대부는 고 박기철씨다. 그는 한국프로야구(KBO)에 ‘기록’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 평생을 바쳤다. 6일은 그의 3주기다. 그가 추구했던 기록의 가치를 되돌아본다.
 
타석 결과를 구분하는 것은 야구를 ‘개인 기록이 중요한 팀 스포츠’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석당 결과가 모여 개인 기록이 만들어지고, 개인 기록의 모음은 선수의 역량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며, 지표에 따라 선수의 가치를 매기거나 몸값으로 연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야구 기록의 개념이다.
 
안타와 실책 구분 원조는 채드윅
 
야구에서 안타와 실책을 구분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헨리 채드윅. 그는 1938년 야구 기자로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야구에서 안타와 실책을 구분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헨리 채드윅. 그는 1938년 야구 기자로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공놀이’에서 타구의 형태를 안타와 실책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헨리 채드윅(1824~1908)이다. 채드윅은 20대 초반 기자로 활약하며 뉴저지 일대에서 성행하던 야구를 자주 보았다. 그는 야구의 공식기록과 기본적인 야구 기사 작성 요령, 기록 보존과 공식 기록원의 활동 등에 대한 기본적인 방법을 창안해 냈다. 그 업적은 야구라는 스포츠가 성행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고, 그는 1938년 야구 기자로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채드윅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나중에 했을 수 있지만 그가 ‘공식기록’이라는 중립적 근거를 만드는 구조를 창안함으로써, 야구기록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공식기록원은 심판과 함께 중립적 기준을 근거로 판단함으로써 야구 기록을 공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채드윅이 처음 기록을 시작할 때도, 그가 기자였기 때문에 그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가 중립적인 기록위원회를 두고 그 공식기록원에 의해 모든 기록을 정의해 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박기철씨는 공식기록원의 영원한 스승이었다. 그는 기록을 정립하기도 했지만, 프로야구의 전산화를 주도하고 사료의 소중함을 일깨운 혁신가이자 역사가였다. 그래서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한국의 헨리 채드윅’일 것이다.
 
한국 야구 기록의 대부인 고 박기철씨 관련 신문기사.

한국 야구 기록의 대부인 고 박기철씨 관련 신문기사.

KBO 기록위원장을 역임한 윤병웅 기록원은 2012년 펴낸 저서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야구 기록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경기 역사를 그대로 옮겨 담는 기록방식을 의미하는 과정으로서의 ‘스코어링(Scoring)’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표출되고 집약된 통계기록 ‘레코드(Record)’와 ‘스태츠(Stats)’다.”
 
그의 표현대로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그 ‘흔적의 서술’은 기록(스코어링)이다. 1회초 경기가 시작되어 첫 번째 공이 스트라이크 또는 볼이 되고, 타자의 타격이 안타 또는 실책이라는 판정을 얻고, 그 결과들이 모여서 하나의 경기기록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자. 공식 기록원의 손에 의해서 모두가 납득하고 인정하는 ‘공인기록’이 되는 과정이 우리가 ‘기록’이라고 말하는 그 숫자들이 태어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기록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일관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형태를 지닌 타구나 송구가 어떤 날 어떤 구장에서는 안타로 인정이 되고, 다른 날 다른 구장에서는 실책으로 규정되었다고 한다면 그 기록은 공정성과 신뢰도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기록은 언제 어디서 누가 기록하더라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KBO가 공개된 채용절차를 통해 공식기록원을 선발하고, 기록위원회를 운영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가치도 그 공정성과 신뢰도가 가장 큰 덕목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렇게 태어난 ‘기록’은 집계와 추가 가공을 통해 ‘레코드’로 구분되는 다음 단계의 기록, 그리고 합산을 통해 다양한 ‘스태츠’(통계)가 된다. 타율, 방어율, 일자별·타석별 결과, 역대기록 등의 모습이다. 이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형태가 개인·팀 기록의 순위(랭킹), 특정투수와 특정타자의 상대기록, 기본 기록을 토대로 특정상황과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때 선수를 평가하는 가장 상징적인 기록으로 여겨졌던 OPS(출루율+장타율), 최근 대세가 된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 같은 기록도 그 예다.
 
기록이 경기의 흔적만을 되돌아볼 수 있는 형태, 즉 스코어링의 형태로만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딱딱하게 박제된 동물처럼 생명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야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구단, 미디어 등에서는 이 ‘가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기록’에 대한 수요가 있다. 이 단계의 기록은 전문적인 시스템과 인력에 의해 부가가치를 가진 기록으로 재생산되고 유통된다. 구단들은 경기력 강화와 선수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위해 그 깊이를 더한 기록을 필요로 한다. 또 야구게임 등에서도 수준을 높인 기록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생산, 유통된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박기철씨를 중심으로 기록의 누적과 사료로서의 보관, 상품화에 의미를 두고 2001년부터 기록 전산화, 데이터베이스(DB)구축을 진행했다.
 
채드윅에 의해 만들어진 야구 기록은 1970년대 빌 제임스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제임스는 1971년 자신을 비롯한 야구 마니아들과 ‘야구에 대한 객관적 지식의 탐구’라는 기치를 내걸고 미국야구연구학회(Society of American Baseball Research)를 만들었다. SABR은 기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야구의 영역에 관한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했다. 통계분과에서 파고든 분야가 ‘세이버매트릭스’로 불리는 기록의 연구다. 제임스를 비롯한 세이버매트리션은 다양한 관점에서 시사점을 가진 기록을 연구하고 만들어 냈다.
 
제임스, 세이버매트릭스 기록 연구
 
국내에 세이버매트릭스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박기철 프로야구 공식기록원을 중심으로 SABR의 형태를 가진 SKBR(한국야구연구학회)이 만들어졌다. SKBR에는 공식기록원과 야구기자, 기록원 지망생 등이 참여했다. SKBR은 이후 그 명맥을 유지하지 못했다. 2013년이 되어 그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야구학회(SKB)가 출범했다. 한국야구학회는 기록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야구의 다양한 학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야구는 분명 기록의 경기다. 그런데 거기서 기록이라는 두 글자는 너무나도 포괄적이다. 그 기록은 야구가 지나는 여정에 대한 모든 흔적이다. 그 흔적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말한 ‘숫자’와 다른 관점일 것이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해.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가장 중요한 건 묻지 않아. ‘그 애 목소리는 어때? 그 애가 좋아하는 놀이는 뭐야? 나비수집을 해?’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아. ‘나이는 몇이야? 형제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야?’라고 물어. 어른들은 다 그런 거야”라고 했다. 박기철이 추구했던 기록은 그냥 숫자와는 달랐다. 그가 남기고 싶어한 야구의 흔적은 새로 사귄 친구의 목소리, 좋아하는 놀이, 나비수집 여부를 담고 있는 어떤 ‘정신의 가치’였다.
 
이태일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재직한 뒤 지금은 데이터업체 스포츠투아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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