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오전엔 레슨 오후엔 파티…굼뜬 쇼팽, 작곡은 언제 했을까

기자
송동섭 사진 송동섭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18)
이탈리앙 대로의 카페 토르토니. 파리의 유명 문인,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19세기 파리의 명소. 지금 그 자리에는 BNP Paribas 은행 본점이 있다. (A.P. Martial, 판화, 1877,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탈리앙 대로의 카페 토르토니. 파리의 유명 문인,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19세기 파리의 명소. 지금 그 자리에는 BNP Paribas 은행 본점이 있다. (A.P. Martial, 판화, 1877,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쇼팽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의범절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있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장난을 쳤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 앞에서 선생님이나 유명한 인물을 똑같이 흉내 내서 친구들을 웃기도 했고 잘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도 그렸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무리는 폴란드 동포들과 또래의 음악가들이었다. 또래 친구들과의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다 커서도 남을 흉내 내는 쇼팽의 장난은 계속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증언이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인 그는 어떤 친구의 특성을 피아노로 그려내기도 했고, 친구들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기도 했다. 그러면 누구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금방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었다고 한다. 쇼팽이 그러고 나면 다음에는 리스트가 이어받아 그도 쇼팽의 흉내 내며 연주를 하곤 했다.
 
쇼팽은 밀가루 게임을 한 적도 있었다. 1833년 여름, 쇼팽이 프랑숌의 시골집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시골 처녀들과 그 게임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반지를 밀가루 피라미드 위에 올려놓은 다음 손을 쓰지 않고 코로 그 반지를 꺼내는 거였다. 반지는 쉽게 밀가루 속으로 떨어지고 그러면 일은 더 어려워진다. 이 게임은 큰 매부리코를 가진 쇼팽에게 유리했다. 쇼팽은 프랑숌이 밀가루에 코를 박는 모습을 잊지 못했다.
 
쇼팽이 그린 캐리커처. 어린 시절 쇼팽은 선생님이나 유명 인사를 희화해서 그리며 놀기도 했다. 원본은 2차대전 중 유실되었고 안나 소콜니츠카가 쇼팽 탄생 120주년 기념으로 복사한 것이 남아있다. (연필화, 1839, 폴란드 국립 쇼팽 협회 소장)

쇼팽이 그린 캐리커처. 어린 시절 쇼팽은 선생님이나 유명 인사를 희화해서 그리며 놀기도 했다. 원본은 2차대전 중 유실되었고 안나 소콜니츠카가 쇼팽 탄생 120주년 기념으로 복사한 것이 남아있다. (연필화, 1839, 폴란드 국립 쇼팽 협회 소장)

 
멘델스존과는 1831년 말부터 4~5개월간 집중적으로 어울렸는데 그는 그 기간 파리에 머물며 활동했다. 그때 그는 누구보다 쇼팽, 힐러와 자주 식사를 했고 계산은 번갈아 했다. 하루는 식사 중 악보 원고 manuscript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사람이 웨이터를 불러서는 ‘계산서 주세요’ 하지 않고 ‘악보 원고 주세요’해서 좌중은 크게 웃었다.
 
칼크브레너를 골려 준 일화도 있다. 허영심 많고 거만한 구세대 피아니스트 칼크브레너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은 많았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그를 ‘진흙탕에 떨어진 사탕’이라고 놀려댔다. 친구들은 칼크브레너가 쇼팽에게 자기 밑에서 더 배우라고 한 것에 대해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불쾌해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쇼팽은 이미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곳에 자기 세계를 구축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크브레너가 어떤 것을 더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 힐러, 리스트, 쇼팽이 한 카페 앞에서 칼크브레너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칼크브레너가 시끄러운 모임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쇼팽의 친구들은 그에게 정중하게 다가가서 양쪽을 막고 동시에 따발총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칼크브레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고 그가 떠나자 친구들은 쾌재를 불렀다.
 
유명한 젊은 피아니스트들. 1842년 신문 ‘Galerie de la Gazette Musicale’에 수록됐다. 뒷줄 가운데에 쇼팽, 아랫줄 오른쪽에 리스트가 있다. (Nicolas-Eutache Maurin, 석판화, 바르샤바 쇼팽 기념관 소장)

유명한 젊은 피아니스트들. 1842년 신문 ‘Galerie de la Gazette Musicale’에 수록됐다. 뒷줄 가운데에 쇼팽, 아랫줄 오른쪽에 리스트가 있다. (Nicolas-Eutache Maurin, 석판화, 바르샤바 쇼팽 기념관 소장)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힐러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프랑크푸르트로 가고 없는 어느 날이었다. 쇼팽, 리스트, 프랑숌은 쇼팽의 아파트에 모였다. 문득 힐러의 빈자리를 느낀 그들은 같이 힐러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리스트와 쇼팽이 번갈아 쓴 이 편지는 둘이 얼마나 친밀했는지를 보여준다. 중간중간에 펜을 주고받으며 쓴 듯한데 내용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 ] 부문은 리스트가, " " 부분은 쇼팽이 썼다. 프랑숌을 포함해서 세 사람이 편지에 사인했다.
 
리스트와 쇼팽이 번갈아 쓴 편지
[20번 이상 네게 편지를 쓰려고 내 집이나 여기에서 만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방문객이 있거나 예상치 못한 방해가 생겼다네. 쇼팽은 어떤 변명거리를 늘어놓을지 모르겠군. 내가 볼 때는 더 이상의 변명은 허용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 같아. 무엇보다 가슴 깊이 애도를 표하고 싶어. 자네의 슬픔이 누그러지도록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리스트가 다 말해서 그 외에 어떤 변명거리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태만, 게으름, 감기, 딴생각 정도 … 지금 뭐라고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왜냐면 리스트가 내 연습곡을 치고 있는데 난 넋을 잃고 있기 때문이야. 내 작품을 연주하는 그의 방식을 훔치고 싶어.”
 
[쇼팽의 연습곡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지?]
“감탄할 만하지. 자네의 작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견딜 거야.”
 
[이것은 작가의 작은 겸손이야!!!]
“선생님이나 되는 듯 내 악보를 바로잡고 있는데 이것은 작은 결례야!!!”
[마를레 씨의 방식을 따르는 거야.]
 
[언제 돌아오지?]
“9월 아닌가?”
 
[날짜를 알려줘. 세레나데라도 불러줄 생각이니 … 파리의 가장 저명한 예술가, 즉 프랑숌 씨와 그 외의 많은 사람이.]
“삼촌, 숙모, 조카, 질녀, 사돈에 팔촌까지”
[자네를 반길 거야.]


[책임감 있는 편집자들]
[F. 리스트] "F. 쇼팽." A. 프랑숌
 
“어제 하인리히 하이네를 만났는데 진심으로 따뜻한 안부를 전해 달래 … 시간 나면 소식 좀 전해 줘. 쇼셰 당탕 5번지의 새집에서 … 베를리오즈도 안부를 전해 달래. … 1833년 6월 20일”
 
하인리히 하이네. 독일의 대표적 낭만파 시인. 하이네는 쇼팽과 비슷한 시기에 파리로 와서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쇼팽을 비롯한 음악가들과 친교가 깊었다. (Moritz Daniel Oppenheim, 1831, 함부르크 미술관 Kunsthalle Hamburg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하인리히 하이네. 독일의 대표적 낭만파 시인. 하이네는 쇼팽과 비슷한 시기에 파리로 와서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쇼팽을 비롯한 음악가들과 친교가 깊었다. (Moritz Daniel Oppenheim, 1831, 함부르크 미술관 Kunsthalle Hamburg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굼뜬 쇼팽이었다. 그는 오전 내내 레슨을 해야 했고 오후 시간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저녁이면 살롱과 파티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어떻게 시간을 냈는지 모르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좋은 곡을 써냈다. 파리에 완전히 정착하여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 쓴 곡 중에는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大) 폴로네이즈, 작품번호 22번’의 서주 격인 ‘안단테 스피아나토 Andante Spianato’가 있다.
 
편안한 가운데 특유의 품격을 갖추었지만 구슬픈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 쇼팽의 곡 중에 이 곡만큼 맑고 산뜻한 곡은 흔치 않다. 다음 편에는 힐러, 베를리오즈, 리스트와 한 여류피아니스트가 얽힌 사건이 소개되는데 이 사건으로 리스트와 쇼팽의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된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