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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그래도 인사청문회는 계속돼야 한다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솔직히 대통령 입장에서야 인사청문회 만드는 걸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도가 없으니까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않고 사람들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리니…차라리 인사청문회를 제도화하는 걸 검토해주기 바랍니다.”
 
2005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도덕성 의혹이 제기돼 임명 5일 만에 사표를 수리하면서 이렇게 지시했다. 평소 “인사수석실이 1심, 민정수석실은 2심, 대통령이 3심”이라며 인사검증 시스템에 자신감을 보였던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검증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인사·민정수석이 한꺼번에 옷을 벗었다. 노무현 정부 최대 인사 참사였던 이기준 파문은 그러나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의 출발점이 됐다.
 
2006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져 온 인사청문회가 요즘 수난기를 맞고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적격 후보자들이 잇따라 고위직에 기용되면서 청문회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통과의례용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청문회 패싱, 국회 패싱, 야당 패싱이 노골화되면서 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까지 무려 30여명의 후보자가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급)이 됐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새 기록을 더 할 참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 보낸 최후통첩 시한(7일)이 지나면 김연철(통일)·박영선(중소벤처기업) 후보자 등 5개 부처의 장관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국회가 극력 반대하는 가운데 장관(급)에 임명되는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에서만 10명 선에 이르게 된다. 박근혜 정부 4년여 동안의 기록(10명)을 취임 1년 10개월 만에 갈아치우게 되는 것이다. 남은 임기(3년 2개월)를 고려하면 이명박 정부 기록(17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
 
자신들이 비난했던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면 염치없는 일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병역 특혜 의혹이다.이건 무얼 말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반칙을 일삼으며 특권 의식에 빠져 특권적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자신들이 비판했던 보수 특권층과 이들이 다를 바 없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 선악을 가르고 “보수 정부 때는 이보다 더 심했다”며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그러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공감을 못 얻는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반칙과 부패·특권 문화를 걷어내고 모래밭에서 보석을 캐내는 심정으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숨은 인재를 찾아내지 못한 청와대 인사·민정 라인의 무능과 게으름을 탓할 일이다.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이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있다”며 슬쩍 넘어갈 일이 아니란 얘기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제에서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제도(institution)’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제도’를 ‘선거’ 못지않게 중요시한다.
 
탈냉전 이후 세계적으로 무력을 앞세운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변질하거나 독재정권이 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내재한 포퓰리즘적 요소에 있다.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가 대의민주제의 근간인 삼권 분립 제도를 무시하고 결국 스스로 제왕이 되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요즘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에 뒤이어 집권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이나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실례다. 이들은 높은 국민 지지를 받아 집권에 성공한 뒤 차례로 사법부와 검찰 등 권력기관, 의회, 언론과 같은 ‘제도’를 교묘하게 무력화하는 수법으로 민주주의를 변질시켰다. 급기야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국민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베네수엘라의 비극도 ‘제도의 무력화’에서 시작됐다. 마두로는 다수 야당을 따돌리기 위해 친정부 성향의 대법원을 움직여 헌법위원회가 의회를 대신하게 하는 사법 쿠데타를 감행한 데 이어 자파 세력으로 구성된 제헌의회에 우선 권한을 주는 방법으로 헌법 기구를 무력화했다. 제도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가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다.
 
미 의회는 무려 1140여개의 공직자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연다. 대통령의 권한이 큰 만큼 의회에도 막강한 권한을 줘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무력화하거나 변질돼선 안되는 이유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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