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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근사하게 나이들기 ‘그레이 크러시’가 뜬다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최근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화제의 인물로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 지병수(77)씨만한 이가 없다.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손담비의 ‘미쳤어’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됐다. 의외의 선곡에, ‘막춤’ 아닌 ‘실버 아이돌 댄스’를 선보였다. 유튜브 조회 수가 200만을 넘겼다. 이후 신문 인터뷰를 통해 사업에 실패해 지금은 기초생활대상 수급자고, 자식도 없지만 여전히 즐겁게 산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제가 마음이 밝은 건 마음을 다 비워서 그렇다”고도 했다. 피터팬 같은 순수함, 삶의 곤궁함을 넉넉히 감싸 안는 자세에 대중이 열광했다. 김씨는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평소 좋아한다는 채연 등의 댄스가요 영상을 올렸다.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도 70대 김혜자(78)를 주인공으로 했다. 그것도 치매 노인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치매 노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그렸다. 치매 노인을 대상 아닌 주체로 그린 첫 드라마다. 극 중 자신을 20대로 착각해 20대처럼 입고 말하는 ‘소녀감성’ 김혜자에게는 “귀엽다”는 시청자 반응이 쏟아졌다.  
 
70대 치매 노인을 주인공으로해 호평 받은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치매 노인을 연기했다. [JTBC 화면 캡처]

70대 치매 노인을 주인공으로해 호평 받은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치매 노인을 연기했다. [JTBC 화면 캡처]

대중문화 속 ‘노인’이 달라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 경제력 가진 ‘젊은 노인’이 등장하면서다. 노인을 더이상 부속물 아닌 주인공으로 대접하는 TV프로와 영화들이 늘고 있다. 그 모습도 바뀌었다. 젊은 층에 군림하기보다 소통하고, 젊게 살지만 젊음에 집착하기보다 나이듦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심지어 ‘나이 드니까 좋다’ 외치기도 한다. 영화 ‘은교’(2012)에서 젊은 여성의 육체를 탐하는 70대 노시인(박해일)이 “내 늙음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며 맹렬히 젊음을 질투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TV 예능에서는 60~70대인 강부자, 김수미, 이덕화 등이 맹활약 중이다. 의외로 축구광인 강부자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축구를 소재로 네티즌들과 소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꼰대 아닌 친구 이미지다. 80대 문맹 시골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칠곡가시네들’도 개봉했다. 시니어 유튜버의 대표주자 박막례(73)씨는 지난해 과기부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런웨이에도 은발을 날리는 60~70대 시니어 패션모델들이 다수 등장했다. 긴 은발 머리에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김칠두(65)씨가 대표적이다.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모델학원에 등록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20대 뺨치는 패션센스로 유명한 60대 유튜버 ‘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귀여운 60대 커플룩으로 인스타그램 스타가 된 일본인 폰·본 부부도 유명하다. 폰·본 부부의 책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는 최근 국내에도 출간됐다.
 
출판계에서는 앞서 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 서적들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예전에는 ‘실버 코너’에 건강 정보나 죽음·노화를 성찰하는 책이 많았다면 요즘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등 노인의 삶 자체에 주목하는 책이 많다. 그만큼 죽음을 예비하는 노년이 아니라, 아직도 살 날이 많은 노년이란 뜻이다. 멋진 실버 라이프를 추구한다는 의미의 ‘그레이 크러시’란 표현까지 나왔다.
 
『나이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미있어요』를 펴낸 와카야마 미사코(84)는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다. 82세인 2017년 노인용 아이폰 게임 앱을 개발했다. 같은 해 일본 정부가 꾸린 ‘인생 100세 시대 구상회의’의 최고령 멤버도 됐다. 비혼여성인 그는 “노년이란 즐거운 것. 60세가 지나면 점점 재미있어진다. 일에서도 벗어나고 자녀 교육도 끝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안티 에이징보다 인조이 에이징하라”고 조언한다.
 
역시 일본의 70살 동갑내기 하야시 유키오·하야시 다카오 부부는 실버세대의 패션 알리미다. 나이 들수록 내면 못지않게 일상을 즐겁게 해주는 옷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이상 값비싼 옷을 사입기 힘드니 싸고 감각적으로 연출하는 법을 일러준다(『근사하게 나이들기』)
 
“나는 할머니가 좋다. 젊은 시절의 사회적 역할, 아내와 어머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의 진심으로 살아가는 시기다. 자유롭다.” 2017년 63세의 나이로 첫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를 펴내고 이듬해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까지 거머쥔 소설가 와카타케 치사코(66)의 말이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 나를 잃고 살았던 이들에게 ‘늙음’이 비로소 선사하는 자유, 이제야 진짜 나와 화해해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 그게 그레이 크러시의 핵심이란 얘기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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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