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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이 중남미 국가처럼 되지 않으려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들은 선거로 뽑은 정치인들이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길 원했다. 그러나 당선 후 권력을 잡은 자들은 또 다른 특권층이 되어 이권을 누리기에 급급했다. 공공 기관의 좋은 자리는 양심적이고 능력 있는 전문가 보다는 정치 브로커들의 차지가 됐다. 분노한 시민들은 부도덕하고 부패한 자들로부터 권력을 빼앗기 위해 다시 선거에 참여했다. 특권층의 부정 부패를 비난하면서 오직 국민만을 대변하겠다고 하는 새로운 인물과 정당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국민들이 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과 정당도 절대 권력을 갖고 다시 부패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거짓 약속과 특권층의 부패에 속고 실망하는 일이 반복됐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투표에 무관심해졌다. 불만에 찬 자, 분노한 자, 사회에서 고립된 자, 이권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 주로 선거에 참여하여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에 표를 던졌다. 정당은 국민 통합과 장기 경제발전은 뒷전이고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골수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공약을 주로 내세웠다. 중산층과 기업가의 소득과 재산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다수의 저소득층에게 나누어 주는 선심성 정책으로 우파, 좌파 정당 모두가 경쟁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재분배 정책으로 경제는 점차 쇠퇴했다.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위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정치가 불안정하고 경제발전이 지지부진했다. 학자들은 중남미 국가의 부실한 정치, 경제 제도와 포퓰리즘 정책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발전 격차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라틴 아메리카의 제도에 있다”고 말했다.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권력층이 기득권을 보호하고 패권을 영구히 하려는 약탈적 제도가 정착되고 경제 불평등이 심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반부패와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는 포퓰리즘 정부가 다수 표를 얻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다런 아세모글루 MIT대학 교수는 중남미 국가는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미흡하여 포퓰리즘 정부가 과도하게 재분배 정책을 실행할 수 있어서 민간 기업의 투자와 기술 발전을 크게 저해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중남미 국가와 달랐다. 사유재산권의 보장, 법적 지배, 대외 개방으로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루었다. 1980년대에 한국 보다 소득이 높았던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유재산제도는 헌법으로 보장되고 과도한 포퓰리즘 경제정책은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도 강화됐다. 중남미에서는 절대권력자가 사기업을 국유화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대법원 판사를 탄핵하여 자기 사람으로 바꾸고, 비판 언론과 야당을 탄압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그러나 한국도 특권층이 부패하고 곳곳에 적폐가 널렸다. 2017년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재벌 총수들이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전직 대법원장과 판검사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적폐 청산, 반부패 개혁, 공정 경제를 우선 순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도 권력 남용과 부정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부 고발이 여러 번 나왔고 ‘블랙리스트’로 전직 장관이 기소됐다. 부동산 투기, 자녀 채용 특혜, 탈세 의혹을 받는 인물들이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로 줄을 섰다. 청와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부동산 투기와 취업 청탁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중남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앞으로 한국에선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특권층의 부패가 만연하고, 정치는 오직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국민 편가르기와 선심성 경제정책의 경쟁이 되면 안된다. 포퓰리즘 정책의 장기적 피해는 결국 다수의 국민과 후속 세대가 겪을 것이다.
 
권력의 부패를 막으려면 건전한 언론, 시민 단체, 전문가 집단의 권력 감시와 비판 기능이 중요하다. 인사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어 대통령과 집권당의 정책을 잘 이해하면서도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인물을 찾아서 등용해야 한다.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등 권력기관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도록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과도한 부의 세습을 막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개혁을 계속해야 한다. 경제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 계층간 이동성이 낮아지면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포퓰리즘 정부가 득세하고 과격한 재분배 정책이 나온다. 경제력의 집중을 막고 재벌 대주주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서 경쟁과 개방된 경제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실패한 사람이 재기하도록 도와주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법의 지배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무너지면 중남미의 포퓰리즘 정부들처럼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약탈적 정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중산층의 생산의욕과 기업가의 투자 의지를 저해하고 경제 발전이 크게 후퇴할 수 있다. 건강한 시장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 발전시키면서 부정 부패를 막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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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