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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연정했더니 도의회서 싸움 사라져…기자들이 심심해했다

정계 은퇴한 남경필의 레거시, 경기도 대연정
경기도 제2기 연정 멤버. 왼쪽은 당시 민주당 소속 강득구 사회 통합부지사로 보건복지국 등 3개 핵심 조직을 관장했다. 오른쪽은 당시 남경필 지사. 두 사람은 도의 각종 현안을 협치로 해결했다. [사진 경기도청]

경기도 제2기 연정 멤버. 왼쪽은 당시 민주당 소속 강득구 사회 통합부지사로 보건복지국 등 3개 핵심 조직을 관장했다. 오른쪽은 당시 남경필 지사. 두 사람은 도의 각종 현안을 협치로 해결했다. [사진 경기도청]

남경필 전 경기지사를 5년 전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2014년 3월 중국 광둥성(廣東省) 광저우 인근의 소도시. 남 전 지사는 전지훈련을 온 북한 4·25부대 소속 15세 이하 여자 축구선수들과 간담회를 했다.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었다. 그는 처음엔 ‘분단’을 앞세워 인사말을 하려 했다. 북한 축구소녀들 표정이 썰렁했다. 그러자 문장도 다 끝내지 않고 순식간에 말을 고쳤다. “저는 남한의 국회의원이에요. 어른들 잘못으로 50년간 남북이 가로막혀서…박지성 알아요?”
 
준비한 말 다 집어치우고, ‘박지성’을 꺼내자 소녀들이 “예”하고 합창을 했다. 분위기 급반전. 이 장면을 보고 ‘정치,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하고 생각했다. 간담회엔 북한 조평통 인사들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그는 남북축구 교류라도 해보려고 고민했다. 보수정당 의원이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는데, 남 전 지사가 지난주 정계를 떠났다.
 
나이(54세)만 보면 ‘조퇴’다. 하지만 조퇴를 하는 정치인답지 않게 그는 누구도 남기지 못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바로 연정(聯政)이 아닐까 한다. 그것도 무려 민주당과의 대(大)연정(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연합해 함께 정부를 구성)이었다.
 
그는 ‘연정협약서’를 쓰고, 부지사(사회통합부지사) 자리를 민주당에 넘겼다. 중앙정부로 치면 국무총리를 양보한 셈이다. 부지사는 경기도의 보건복지국·환경국·여성국을 관장했다. 중앙정부로 치면 보건복지부·환경부·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사실상 ‘분권형 대통령제’ 실험이었다.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 이후 한국 정치에서 대연정은 경기도가 처음 아닌가 한다. 
 
물론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을 대연정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합당 형태인데다, ‘보수대연합’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설령 연정으로 본다고 해도 이념이 비슷한 정당 간의 ‘소(小)연정’에 가깝다고 봐야 할듯하다. 도쿄(東京)에 체류 중인 남 지사와 2일 통화했다. 비록 정계를 떠났지만, 대연정은 한번 정리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대연정 결심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나.
“있다.”
 
누군가.
“독일 슈뢰더 총리였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 히틀러의 등장, 세계대전 패배라는 과정에 정치인들이 학자,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나라의 미래를 놓고 상당한 토론을 했다. 그때 도달한 결론이 정치는 연정, 경제는 사회적 시장경제, 그 철학은 질서자유주의(시장의 효율을 중시하되, 시장이 해결 못 하는 부분에 한해 국가의 강력한 역할을 지지)였다. 이걸 받아서 현실로 만들어낸 인물이 슈뢰더였는데, ‘이거다’ 싶었다.”
 
연정이 성과가 있었나.
“1기(2014년 12월~2016년 7월) 때는 남경필과 김진표(민주당 경기지사후보)의 선거공약을 중심으로 연정합의문을 썼다. 연정할 정책을 넣고, 합의문에 따라 예산을 편성하고. 그런데 연정의 성패는 탄탄한 합의문에 있다고 느껴 2기 연정(2016년 10월~2018년 3월) 들어갈 때는 몇달에 걸쳐 합의문을 230여항이나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마지막까지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연정하는 동안 도의회에서 조례안 발의 건수가 늘었고, 갈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제가 공약한 정책이 도의회에 막혀 못한 것이 없다.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국내 최대 창업 지원공간), 중소기업 일자리 정책같이 예산이 엄청 많이 들어가는 정책을 민주당이 다 해줬다. 예산안, 조례안 등은 본회의장에서 거의 충돌 없이 합리적으로 여야가 처리했다. 인사·예산에서 부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지금 경기도에서 남경필 재임 시의 비리를 찾는다는데, 나올 리가 있나. 인사·예산을 모두 민주당 부지사와 같이했는데.”
 
연정이 성공했다는 뜻인가.
“절반의 성공이었다. 법률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보니 지속 가능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정말 극한대립 정치가 경기도엔 없었나.
“그렇다. 세게 부딪친 게 누리과정(야당이 만 3~5세 유아 보육예산을 박근혜 정부에 요구했으나 여당이 거부해 생긴 충돌), 딱 한 번이었다. 그때 경기도 기자실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드디어 우리 경기도의회가 정상화됐다’고. 그 전까진 싸우지 않아서 맨날 졸렸단다.”
 
남 전 지사 말이 사실일까, 자신의 대표상품을 일방적으로 평가한 것일까. 그가 정계에서 은퇴하기 한 달 전. 경인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남 지사를 가까이에서 봤는데, 그는 선거 인연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더라. 심지어 ‘경기도시공사’ 같은 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사장에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임명했다. (민주당에 할애한) 연정기관엔 (인사 때) 전혀 자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남 전 지사 측근이 아니라 놀랍게도 민주당 강득구 자치발전센터 본부장이었다.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 저런 좋은 얘기가 나오는 걸 과문해서일지 모르나 본 적이 없다. 강 본부장은 1기 연정 때 경기도의회 의장, 2기 연정 때 사회통합부지사였다. 4년 가까이 연정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강 전 부지사의 얘기도 들어봤다.
 
경기도 연정을 평가해달라.
“미완이었지만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김문수 지사 때는 정말 엄청 싸웠다. 그런데 남지사 때는 민주당이 도 의회의 과반의석을 갖고 있었는데도 거의 갈등이 없었다. 딱 한 번 있었던 게 누리과정 때였다. 남 지사는 민주당이 시대정신에 맞는 진보정책을 요구하면 받아줬다. 민주당도 새누리당이 보수 입장에서 관철해야 할 것을 얘기하면 고민하면서 동의해줬다.”
 
손에 잡히는 연정의 성과가 있었나.
“생활임금이다. 제가 도의회 의장이 되어 제일 먼저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1호 조례안이다. 김문수 지사 때는 안됐던 일이었다.”
 
경기도는 광역단체 최초로 생활임금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과 별개로 지자체에서 조례로 정한 임금을 말한다. 경기도와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한 기간제 근로자 등에게 지급한다.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한다. 2017년 최저임금은 6470원(시급)이었으나 경기도의 생활임금은 7910원이었다. 공공부문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므로 도의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다.
 
지금은 다수의 광역·기초단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인구 1300만명의 경기도에서 조례안을 처음으로 통과시킨 파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연정을 했더니 지금의 국회와 비슷한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의회의 갈등은 줄어들었고, 판교스타트업 서비스 같은 남 전 지사의 실용정책이나 진보진영의 생활임금 정책 등이 실제 성과로 나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각각 똑같은 질문을 해봤다.
 
연정이 중앙정치에도 유용할까.
▶남경필=“안 하면…망할지 모른다. 노동·재정·복지·남북·교육…. 지금 위기 아닌 분야가 없다. 이 위기는 정말 대통령 혼자, 또는 한 정파가 단기에 해결할 수 없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계속 간다는, 장기 연정 합의문에 서명하고, 각 정당들에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장관 추천권을 주고, 대통령이 그 장관들과 함께 결정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시장이 움직인다. 복지부동하던 관료가 움직이고, 노조가 움직인다. 지금 같은 구조에선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못하지만, 연정을 하면 60~70%는 한다. 언젠가는 꼭 해야 한다.”

▶강득구=“유용하다. 권력을 나누고 공유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닌데 남 지사는 연정에서 양보한 파트에 대해선 인사권 독립을 보장했고, 예산도 존중했다. 그러다 보니 늘 적절한 선에서 합의가 가능했다. 가령 우리 요구를 남 지사가 과감히 수용하는데 과하게 요구할 순 없잖나. 생활임금도 그래서 적절한 선을 요구하게 됐다. 연정을 하면 이렇게 정치에 ‘시장논리’가 작동하게 된다.”
 
연정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선 이런 평가가 나오지만,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정치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대연정 카드를 꺼냈다가 지지층과 야권의 동시 반발로 곤욕을 치렀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또한 201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연정 카드를 꺼냈다가 십자포화를 맞았다. 임기 중후반(노 전 대통령) 혹은 탄핵국면(안 전 지사)이라 정치적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는 지금 다당제를 사실상 제도화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연정에 적합한 환경이다. 난항을 겪고 있지만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남경필의 레거시’를 되돌아본 이유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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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