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배명복 칼럼] 협치와 탕평 없는 포용은 위선이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왜 어떤 사회는 성공하고, 어떤 사회는 실패하는가. 『총, 균, 쇠』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가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 『문명의 붕괴』다. 그가 발견한 성공한 공동체와 실패한 공동체의 결정적 차이는 장기계획 수립 능력과 핵심가치 조정 능력이다. 위기 요인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장기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공동체의 가치 중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고, 새로운 핵심가치를 수용하는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결정을 잘해낸 사회는 성공하고 존속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는 실패하고 붕괴했다는 것이다.
 

전 정부 이어 현 정부도 실패하면
대한민국 미래는 암울한 하강
포용적 국정운영 기틀만 다져도
문재인 정부, 성공으로 기록될 것

문재인 정부가 뭇매를 맞고 있다. 부적격 인사들을 무더기로 장관 후보로 지명해 난타를 당하더니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까지 부동산 투기 열풍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강펀치를 맞았다. 기대했던 경제지표는 온통 빨간색이고, 남북 관계와 대외 관계에도 적신호가 반짝이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속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안타깝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고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다를 게 없다’며 기대를 접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성공과 실패, 생존과 붕괴가 걸린 문제다.
 
공동체의 역사에는 ‘결정적 시점(critical juncture)’이 있다. 대내외적으로 지금은 21세기 한국 역사의 결정적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정권에 국민이 평화적 방법으로 반기를 들어 탄생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간 시민들의 기대와 염원을 구현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70여 년간 유지돼온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공공재 역할을 포기하고,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섰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의 역학 구도도 변하고 있다. 한반도의 다른 한쪽에서는 30대 젊은 독재자가 핵을 지렛대로 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은 상승할 수도 있고, 하강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정치학자인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15년 간의 공동연구 끝에 2012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란 역작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국가의 성공과 실패는 그 나라가 채택한 정치·경제 제도의 성격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포용적(inclusive)’ 제도를 택한 나라는 성공하고, ‘착취적(extractive)’ 제도를 택한 나라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포용적 제도는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참여를 보장하지만, 착취적 제도는 다수에 대한 소수 엘리트의 착취를 정당화한다. 다원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포용적 정치 제도의 근간이다. 포용적 경제 제도는 노력과 창의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창조적 파괴를 촉진하고, 자본 뿐만 아니라 노동도 기본적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보호한다. 두 사람은 일정 수준의 성공은 착취적 제도에서도 가능하지만, 포용적 제도의 뒷받침 없이 지속가능한 성공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북한이 오히려 남한을 앞섰지만, 결정적 시점에 남한은 포용적 제도를 도입한 반면 북한은 착취적 제도를 고수한 결과 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포용을 핵심가치로 채택했다. 갈수록 심화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의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포용을 외치면서 실제 행동과 정책에서는 진보와 보수, 자본과 노동,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재벌과 중소기업으로 편을 갈라 한 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 결과 적폐 청산은 지난 정부를 욕보이고 벌주는 수단으로 변질했고, 시장의 수용 능력을 무시한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은 기대한 효과 이상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에 대한 실망감이 지지율의 지속적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포용의 가치를 구현하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초당적 국정운영의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통령부터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의 성패를 좌우할 장기계획을 협의해야 한다. 코드에 상관없이 능력과 경륜을 갖춘 사람을 과감하게 발탁하는 탕평인사로 인사 실패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청와대 대변인을 날리고, 장관 후보 2명을 주저앉혔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협치와 탕평 없는 포용은 위선이다.
 
포용적 국정운영의 기틀만 다져도 문재인 정부는 성공이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리당략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충성스런 야당(loyal opposition)’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마저 실패하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한 하강이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