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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하늘과 사막 폭풍…내 삶에 쌓인 먼지의 추억

기자
홍미옥 사진 홍미옥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23)
미세먼지로 뒤덮힌 출근길의 직장인들, 광화문에서. by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미세먼지로 뒤덮힌 출근길의 직장인들, 광화문에서. by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삼겹살, 바그다드카페, 인터스텔라 그리고 그룹 켄사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먼지와 황사 뿌연 하늘이다. 미세먼지가 극성인 요즘이면 어디다 갖다 놓아도 어색하지 않다.
 
우선 황사에 지친 목을 달래준다고 소문난 고소하고 반지르르한 삼겹살과 사막의 먼지 바람이 부는 황량한 카페에서 마법 같은 기적을 선사해준 영화 ‘바그다드카페’. 그리고 우울한 먼지 폭풍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관객을 안타까운 시공간으로 초대하던 영화 인터스텔라, 집시 바이올린의 애절한 선율이 너무도 아름답던 켄사스의 노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 
 
숨넘어가게 열거한 이 모든 것은 먼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내게 재미로 혹은 감성으로 아련히 남아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겹살·인터스텔라·켄사스의 공통점
요즘 달라진 게 있다면 눈 뜨자마자 휴대폰의 기상 상황, 정확히 말하면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창밖을 본다. 그렇다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두 팔을 쭉 펼치며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는 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빨간 옷을 입은 재난문자를 받게 하는 미세먼지가 오늘은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밖을 내다본다.
 
역시나 오늘도 뿌연 대기 속에 아파트가 숨어 있다. 이건 뭐 신비주의 컨셉도 아니면서 보여줄 듯 말 듯 하고 있으니 원…. 열거했던 영화나 노래 속의 낭만은 온데간데없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고 만다. 평범한 주부의 일상에도 미세먼지가 가져온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우선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생겼다. 교통카드와 백해무익한 담배, 라이터 사이를 뚫고 들어온 일회용 마스크가 그것이다.
 
동네 마트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와 공기 청정기. [사진 홍미옥]

동네 마트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와 공기 청정기. [사진 홍미옥]

 
아침 청소를 하려고 공기청정기를 켠다. 빨간 경고등이 불안하게 깜빡이고 있다. 잠시 후 관공서와 회사들이 활동을 시작할 무렵, 여행사의 광고문자가 딩동 도착한다. 청정지역을 찾아 떠나는 힐링 여행을 추천한다는 장문의 문자다. ‘연일 이어지는 미세먼지의 공습에서 벗어나는 피미여행(미세먼지를 피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 보세요’라며 북유럽, 오세아니아, 북미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마무리는 뻔하게 마감 임박. 빅 세일이란 문구다.
 
그것뿐인가. 화장품 브랜드에서 온 문자도 있다. 모공 속까지 침투하는 미세먼지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세안제가 출시됐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를 대처하지 않으면 피부가 슬퍼할 거라며 소비자를 자극한다. 세안제 정도면 몰라도 피미여행이라니!
 
언감생심이지 하는 맘으로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TV를 켜니 홈쇼핑 쇼호스트가 흥분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요즘 같은 환경에는 꼭 먹어줘야 하는 건강식품이 나왔다고. 미세먼지에 들어있는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데 탁월한 성분으로 만든 획기적인 신상품이라는 거다.
 
특별히 구매자에겐 공기정화 식물을 사은품으로 얹어줄 것이며 마치 지금 당장 전화를 들지 않으면 중금속이 온몸을 뚫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귀여운 협박(?)성 멘트를 날린다. “아! 사야 하나.” 여전히 창밖은 뿌옇고 머릿속도 먼지 바람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다.
 
퇴근길까지 여전한 먼지 가득한 하늘. [사진 홍미옥]

퇴근길까지 여전한 먼지 가득한 하늘. [사진 홍미옥]

 
오후가 되면서 바람으로 인해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으로 바뀌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살면서 바람에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 무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을 빼곤 그런 일은 없었을 게 분명하다. 찬거리를 사러 간 동네 마트에선 미세먼지를 완벽히 막아준다는 마스크 특별세일이라는 전단이 큼지막하게 붙어있고 예상대로 정육 판매대엔 큼지막하게 ‘미세먼지엔 우리 돼지고기’라고 쓰여 있다. 저녁 메인뉴스의 헤드라인도 역시 미세먼지다.
 
전국 초등학교에 공기청정기를 보급하는가 하면 미세먼지 신호등 이라는 걸 설치해 아이들에게 그 심각성과 대처방안을 가르친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관심사는 운동장에서 야외활동을 하느냐 마느냐 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의도치 않게 내 하루의 키워드는 먼지가 되어버렸다. 먼지를 모아 그린 그림과 세상만사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더스트 인 더 윈드’.
 
우울했던 기분 풀어준 ‘더스트 인 더 윈드’
미국의 어느 화가는 집안의 먼지를 진공 봉투에 모아 그림을 그리는 거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천덕꾸러기 먼지라는 녀석도 제법이다. 놀랍게도 보통의 가정에서 보름 나절이면 그림 한 점을 그릴만한 생활먼지가 모인다고 한다.
 
캔버스 위에 접착제를 바르고 애지중지(?) 모아둔 먼지로 정성껏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지저분하게만 느껴졌던 먼지로 그린 그림은 예상외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예술이 되어 날아온 먼지랄까. 때마침 라디오에선 켄사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가 흐른다. 세상만사는 먼지와 같고 우리의 인생은 그저 바람 속의 먼지 티끌에 불과하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숨 막힐 듯 일상을 위협하던 미세먼지에 짓눌렸던 하루, 답답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노랫말 한 구절에 살짝 풀어지는 것 같았다. 조만간 맑은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고민해본다.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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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