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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인사고 막자’ 경찰 집념…횡단보도 옆 ‘장수의자’ 탄생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별사랑마을 교차로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던 한 70대 노인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신호등 기둥에 다가갔다. 기둥에는 접이식 의자(폭 20㎝, 높이 70㎝)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의자를 살짝 내린 후 그 곳에 앉았다. 신호가 바뀌어 그가 일어나자 의자는 다시 자동으로 접혔다.  
지난달 29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별사랑마을 횡단보도 앞에 시범 설치된 장수의자. 한 노인이 앉아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남양주경찰서는 1일 오후 1시 별내동에 총 60개의 의자를 설치한다.[사진 별내파출소]

지난달 29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별사랑마을 횡단보도 앞에 시범 설치된 장수의자. 한 노인이 앉아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남양주경찰서는 1일 오후 1시 별내동에 총 60개의 의자를 설치한다.[사진 별내파출소]

이 모습을 한 경찰관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유석종(55) 남양주시 별내파출소장이다. 그가 이 의자를 개발했다. 단지 노인이 잠시 쉬어가는 용도가 아니다. 서서 신호를 기다리기 힘든 노인이 무단횡단을 하다 유발할 수 있는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다. 무단횡단을 안 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의자 이름도 ‘장수의자’라고 지었다. 남양주경찰서는 이 의자를 1일 오후 1시 별내동 교차로 10곳에 총 60개 설치했다.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장수의자. 높이를 노인 앉은 키에 맞추고, 등받이에 고무 쿠션을 부착해 노인이 앉기 편안하게 제작했다.스테인리스 재질로 무게 100kg까지 감당할 수 있다.[사진 별내파출소]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장수의자. 높이를 노인 앉은 키에 맞추고, 등받이에 고무 쿠션을 부착해 노인이 앉기 편안하게 제작했다.스테인리스 재질로 무게 100kg까지 감당할 수 있다.[사진 별내파출소]

유 소장이 장수의자를 개발한 건 노인 보행 교통사고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 4185명 중 보행 사망자는 40%(1675명)였다. 이 가운데 노인 보행 사망자가 54%(906명)에 이른다. 이중 37%(335명)가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노인 보행 사고를 막기 위해 장수의자를 개발한 유석종 별내파출소장. 그가 1일 장수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사진 별내파출소]

노인 보행 사고를 막기 위해 장수의자를 개발한 유석종 별내파출소장. 그가 1일 장수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사진 별내파출소]

유 소장은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남양주경찰서 교통관리계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이때 노인 보행 사고를 자주 접하며 안타까웠고, 무단횡단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지난해 9월 별내파출소장으로 부임해 노인 수십 명을 대상으로 ‘탐문 인터뷰’를 벌였다. “왜 무단횡단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 있으면 다리랑 허리가 너무 아프거든.” “횡단보도 앞 기둥 같은데 기대 있을 때도 있어.” “끌고 다니는 카트에 앉아서 기다리기도 해”….    
한 노인이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고 걷어가고 있는 모습. 유석종 소장이 지난달 우연히 발견해 촬영했다.[사진 유석종 소장]

한 노인이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고 걷어가고 있는 모습. 유석종 소장이 지난달 우연히 발견해 촬영했다.[사진 유석종 소장]

의자를 끌고 가던 노인은 횡단보도 앞에선 이 의자에 앉아 신호를 기다렸다.[사진 유석종 소장]

의자를 끌고 가던 노인은 횡단보도 앞에선 이 의자에 앉아 신호를 기다렸다.[사진 유석종 소장]

 
이 말을 들은 유 소장은 바로 의자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어르신들에게 ‘무단횡단하지 말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상에 없던 의자를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의자가 보행을 방해하지 않는데도 신경 써야 했다. 그는 “세상에 모든 물체가 의자로 보였다”면서 웃었다. 
 
화장실의 유아용 의자와 전봇대의 전압기를 받치는 선반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둥에 접이식 의자를 매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갖고 제작 업체 여러 곳을 찾았다. 대부분의 업체가 “이런 걸 만든 적이 없다”며 거절했지만, 한 업체만 제작해 주겠다고 했다. 유 소장은 이 업체에 아이디어 권리를 넘겨줬다. 의자는 업체 명의로 특허출원했다.   
장수의자는 신호등 기둥 등에 접이식으로 매달려 보행자의 보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사진 별내파출소]

장수의자는 신호등 기둥 등에 접이식으로 매달려 보행자의 보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사진 별내파출소]

의자 설치 장소는 크게 3가지 기준에서 정했다. 무단횡단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곳, 노인이 많이 다니는 병원·은행 등이 있는 지역, 마을과 마을 사이에 노인 왕래가 잦은 곳이다. 유 소장은 “동주민센터로부터 지역 노인 인구 통계를 받아 지도에 일일이 적으면서 설치 장소를 정했다”고 말했다. 보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의자를 매다는 곳은 4곳이다. 신호등이나 전봇대 기둥, 횡단보도 앞 말뚝, 그리고 여름철 횡단보도 앞에 설치되는 그늘막 기둥이다. 
유석종 소장은 2013년 국내 최초로 형광물질로 침입범죄를 예방하는 예방책을 도입했다. [중앙포토]

유석종 소장은 2013년 국내 최초로 형광물질로 침입범죄를 예방하는 예방책을 도입했다. [중앙포토]

유 소장은 ‘장수의자’보다 먼저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게 있다. 주택 배관에 형광물질을 도포해 침입범죄(일명 ‘스파이더 범죄’)를 막는 예방책이다. 지금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쓰는 이 예방책은 그가 2013년 국내 처음 선보였다. 
 
그가 경기 구리경찰서 경무계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구리시 토평동 원룸단지엔 침입범죄가 잦았다. 해결책을 고민하던 그의 눈에 영국 경찰의 절도 범죄 예방 자료가 들어왔다. 그는 구리시 의원들을 설득해 어렵게 추경 예산 1300만원을 받아 이 형광물질을 수입했다. 이 형광물질을 원룸 배관에 바르고, 동네 곳곳에 이를 알리는 표지판도 붙였다. 이 형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도가 만지거나 밟으면 효과가 나타난다. 특수조명을 비추면 지문과 족적을 채취할 수 있다.   
형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특수조명을 비추면 드러난다.[중앙포토]

형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특수조명을 비추면 드러난다.[중앙포토]

토평동 원룸의 침입 범죄 건수는 2012년 40건이었으나, 이 물질을 바른 후인 2013년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 물질이 도포된 지역의 침입범죄 발생률은 2017년 상반기에 2015년 상반기 대비 27.6% 감소했다.  
 
유 소장은 “범죄 예방은 티가 안 난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안전해지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시민의 시선에서 바라볼 것이다. 장수 의자도 전국으로 번져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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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