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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이 친근하다고요? 그럼 너도 한번 들어볼래?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23)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집 귀한 자식임을 생각해보라’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반말하는 버릇만 고쳐도 우리 일상에서의 행복감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중앙포토]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집 귀한 자식임을 생각해보라’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반말하는 버릇만 고쳐도 우리 일상에서의 행복감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중앙포토]

 
"나한테 말하면 돼. 말해봐!" 스마트폰 보다가 귀가 쫑긋 섰다. 조용하던 동네 병원 대기실에서 갑자기 반말이 들린다. 이상하다. 반말 들을 아이도 없고 아무리 아이라도 대놓고 이런 시비조의 반말을?
 
원무과 직원이 40대 부인에게 하는 말이다. 어? 조금 전까지 서로 존댓말 했던 것 같은데? 친구 사이도 아닐 테고… 아마 외국인 노동자인데 뭔가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은 것 같다. 직원은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존댓말로 돌아갔는데 조금 전의 반말도 지금의 존댓말도 다 부자연스럽다.
 
예의 없고 권위적인 어른, 즉 '꼰대'들의 대표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반말이다. 정색하고 따질 수도 없는 입장을 간파해서 어쩌면 그렇게도 자연스레 툭툭 던지는지, 정말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모습이 눈앞에 그대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에는 '남의 집'까지만 쳐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 뜰만큼 젊은 알바 종업원들한테 함부로 대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도 시작은 험한 반말부터였을 것이다.
 
이 반말은 위아래 세대뿐 아니라 계층 간에도 나타난다. 옛날에는 양반댁 꼬맹이가 어른 하인한테 ‘이래라저래라’ 했다. 신분의 표출양상이던 것이 이제 용도가 달라져 갑질의 도구로 쓰인다. 제멋대로 신분을 정해서 자기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상대방을 하대한다.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강아지가 생각난다. 가끔 사람을 보고 이유 없이 화내고 짖어대는 강아지가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서열과 위계를 정해 그 사람이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자기만 야단맞지만, 그 작은 머리통 속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가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반말'을 검색해보면 나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반말 때문에 인격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례가 매우 흔하다. [사진 네이버 검색 화면 캡쳐]

인터넷에서 '반말'을 검색해보면 나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반말 때문에 인격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례가 매우 흔하다. [사진 네이버 검색 화면 캡쳐]

 
식당이나 가게에서 종업원을 막 대하는 것이 그렇고, 그때 병원에서 본 것도 그렇다. 언젠가는 택시기사가 동남아 사람(노동자 같았다) 앞에 차를 세우더니 “야, 어디가? 타!” 하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공짜로 태워주려는 줄 알았다.
 
반대의 경우도 짜증 난다. 집 근처 경동시장에 가보면 일부 상인들이 노인 손님한테 소리 질러가며 반말을 한다. 자기들끼리 ‘반말은 정겹다’는 공식을 만들었는지, 한참 서서 지켜보면 ‘엄마, 삼촌’처럼 원하지도 않는 가족 호칭을 가끔씩 붙여가며 욕지거리 느낌 나는 반말을 해댄다. 좀 깎아보려다가 봉변당하는 어른들 모습이 안타깝다.
 
그러니 ‘억센 삶 속에서는 반말이 더 효과적인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인데 존댓말로 지시하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퉁명스러운 반말로 하면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실수한 사람에게 존댓말로 정중히 항의하면 금세 긴장을 풀며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 한다.
 
정말 위압적인 반말로 뭔가를 더 얻어낼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얻고 싶은 뭔가가 ‘권위’라면 대단한 착각이다. 서로 간의 존중과 배려를 넘어 시장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존경심은 거의 없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망신당하는 걸 본다.
 
물론 반말은 좋지 않은 심기를 표출하는 기능이 있다. 한 번은 매장에서 사장에게 소리치며 반말하는 사람을 보았다. 종업원이 실수했나 본데 요즘은 열 받으면 한번 들이받고 그만둘 수도 있는 알바생보다는 주인이 더 만만한가 보다. “사장 나와!” 하는 것도 그 장소에서 사장이 가장 약한 사람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 아닐까.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반말을 듣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기는 힘들다. 반말로 인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준다면 그것도 폭력일 것 같다. [중앙포토]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반말을 듣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기는 힘들다. 반말로 인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준다면 그것도 폭력일 것 같다. [중앙포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떤 지인은 교회에서 다 같이 열심히 기도하고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가도 예배 끝나고 주차장 봉사하면서 신도들의 신경질 섞인 반말을 들을 때면 영성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양면적인 마음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반말이다.
 
주례를 서주셨던 은사님께서는 옛 조상들은 부부끼리도 존대하고 살았다며 서로 존댓말을 쓰라고 하셨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산다. 이제 틀린 것 같다. 사실 부부 사이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반말하려면 가려가며 '잘' 해야지, 잘못하면 봉변당한다. 20년 전쯤 직급 낮고 나이도 서너 살 어린 직원이 ‘왜 반말하냐’고 따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바로 “미안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하고 사과했다. 일전을 각오하던 상대방도 맥 풀린 모습이었다. 얼마나 민망하고 불편하던지. 이게 무슨 못난 꼴인가, 기억하기도 괴롭다.
 
몇 년 전까지도 동네 중고생들한테 반말을 했다. 우리 아이와 같은 학교라 다 우리 아이 같아서 다정스럽고 인자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아내가 그러지도 말고 무조건 존댓말 쓰라고 했다. 하긴, 그 ‘아들딸 같아서, 손자 같아서’가 문제를 만든다.
 
이제 내가 반말하는 대상은 가족들, 내 친구와 동생으로 ‘등록’된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뿐이다. 반말은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반말하려면 많은 준비와 투자가 필요하다. 충분히 존경받은 후, 상대방이 몇 번에 걸쳐 확인해준 후 해도 늦지 않다. 자신 없으면 죽는 날까지 존댓말만 하며 살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존댓말은 딱딱하고 반말은 정겹다는 머릿속의 잘못된 생각, 버려야 한다. 그렇게 정겨우면 미리 충분히 베풀어 환심부터 사두시길.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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