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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정치가 스포츠에 진입한 날···"황교안 반칙에 무너진 경남"

경남FC 경기장 내 유세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캡처]

경남FC 경기장 내 유세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30일 경상남도 창원시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 FC와 대구 FC의 프로축구 K리그1 4라운드는 축구가 아닌 ‘선거’와 ‘정치’를 화두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는 3일 열리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창원축구센터 외부에서 유세 중이던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창원성산 국회의원 후보자가 경기장 안으로 진입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황 대표와 강 후보는 한국당 당명이 적힌 붉은 점퍼를 입고 관중석을 향해 기호 2번을 상징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아울러 축구팬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당부했다. 한국당은 경기장 내부 유세 장면을 당 공식 유튜브 ‘오른소리’에 고스란히 게재했다.
 
이는 경기장 내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 및 프로축구연맹(이하 프로연맹) 규정 위반이다. 축구협회 정관 3조 및 프로연맹 정관 5조는 ‘협회와 연맹(산하단체 포함)은 행정 및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명시해놓았다.
 
같은 이유로 선거철에는 정당명, 후보명, 기호 등이 담긴 의상과 피켓, 어깨띠, 현수막, 명함, 광고 전단을 경기장 내부에 반입하거나 내부에서 사용하는 걸 엄격히 제한한다. K리그만의 기준은 아니다. ‘정치와 거리를 둔다’는데 종목은 물론, 프로와 아마의 구분은 없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30일 경남 FC 홈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서 유세하고 있다. 구단 관계자가 제지하자 당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벗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30일 경남 FC 홈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서 유세하고 있다. 구단 관계자가 제지하자 당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벗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경남 구단은 황당해한다. 경기 당일 황 대표측과 실랑이를 벌인 구단 관계자 A씨는 “입구에서 보안요원이 (한국당 관계자들의) 입장을 제지했지만, 경찰을 대동하고 밀고 들어오니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경기장 안으로 진입한 것을 확인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다른 당 관계자들도 관중석에 들어가려했지만, 구단 관계자가 규정을 제시하며 설득하자 발길을 돌렸다.
 
A씨는 “경기장 내부에서도 실랑이가 있었다. 황 대표측에 ‘기호, 당명 등이 인쇄된 점퍼를 벗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면서 “구단 직원이 근처에 있을 땐 (점퍼를) 벗고, 멀어지면 다시 입으며 구단 제지를 무시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 B씨는 “규정을 위반한 황 대표와 강 후보를 즉각 퇴장시켰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우리로선 억울하다”면서 “구단주(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공석인 상황에서 정치적 판단에 가까운 그 결정을 우리 구단의 누가 내릴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선거가 열리는 창원성산은 경남 FC 홈구장 창원축구센터가 위치한 지역구다.
 
프로축구 경남 FC 홈경기가 열리는 창원축구센터 내부에서 관중들을 상대로 유세하는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자. [사진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프로축구 경남 FC 홈경기가 열리는 창원축구센터 내부에서 관중들을 상대로 유세하는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자. [사진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황 대표의 돌발 행동으로 ‘경기장 질서 확립’에 실패한 경남 구단은 무거운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프로연맹 상벌규정에 따르면 경기장 안에서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관리 책임을 지는 구단은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 무관중 홈 경기, 홈 경기 제3지역 개최, 2000만원 이상의 제재금, 경고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정황상 경남 구단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상황을 면밀히 파악한 뒤 상벌위원회에 회부해 원칙대로 징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내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건 스포츠의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챔스) 무대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일본 전범기(욱일기) 논란이 대표적이다.  
 
AFC는 챔스 경기 도중 관중석에 욱일기가 내걸릴 때마다 해당 팬이 속한 일본 구단에 벌금 등 징계를 준다. 지난해 4월 J리그 구단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챔스 경기에 욱일기가 등장하자 AFC가 가와사키에 1만5000달러(1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경남 FC 홈경기 도중 관중석에 들어가 기호 2번을 상징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자유한국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캡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경남 FC 홈경기 도중 관중석에 들어가 기호 2번을 상징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자유한국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캡처]

 
하물며 정치인이 선거기간 중에 프로스포츠 경기장 안으로 밀고 들어와 관중을 상대로 유세를 한 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해프닝이다. 경남 구단에 불어닥칠 후폭풍 또한 상당할 전망이다. 승점 10점 삭감이든, 수 천 만원의 벌금이든 구단 입장에선 억울하고 또 가혹하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등이 터져버린 ‘스포츠 새우’에게 ‘정치 고래’가 진심으로 사죄해야한다. 경남 구단과 K리그는 ‘새우’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시간과 돈을 들여 경기장을 찾는 ‘국민’이 있다. 혹여 프로스포츠 팬들을 ‘한가롭게 공놀이나 즐기는 사람들’로 여겼다면, 더 큰 반성이 필요하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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