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스타트업 뛰어든 남경필…1시간에 "가슴 뛴다" 13번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난달 30일 용인시 기흥구 자택 아파트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남 지사는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난달 30일 용인시 기흥구 자택 아파트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남 지사는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쉰넷에 처음 의원 배지를 단들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그 나이에 5선에 도백(道伯)까지 한 이가 정계를 떠났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다. 그는 지난달 29일 낮 페이스북에 “젊은 시절을 온전히 바쳤던 정치를 떠난다”며 “밤낮으로 노력하고 땀 흘려 일해 좋은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스타트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통상 경제인을 포함, 여느 직종이든 종착지가 정치인일 때가 많다. 역은 드물다. 남 전 지사는 그러나 통념을 거스르고 정치인으로 왕성하게 움직일 나이에 오히려 물러나 경제인이 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정치 전적은 화려했다. 33살 때인 1998년 부친(남평우)의 별세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내리 5선 했고 2014년 경기도지사의 자리에 올랐다. 본선에서 패배 경험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진 게 유일했다.

 
30일 오전 그의 경기도 자택으로 찾아간 이유였다. 한 시간여 만나는 동안 그는 “가슴이 뛴다”는 말을 열세 번 했다. 자주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한 차례 한숨도 내쉬었다.

 

2017년 낸 자서전에 ‘나는 요즘 정치가 재미있다’고 썼더라.
“이 일은 가슴이 뛴다. 인생을 살면서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스타트업을 한다고 했는데 어떤 일인가.
“헬스케어 쪽에서 국민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모두의 건강’)를 만들었다. 도쿄에 갈 때만 해도 도쿄에서 6개월, 독일 베를린에서 6개월 잘 공부하고 11월에 복귀해서 내년 총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블록체인에 대해 공부하고 글로벌 영역에서 계신 분들, 테헤로와 판교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슴이 뛴다는 이유는 뭔가.
“도지사 시절 기업인들 만나면 늘 그랬다. ‘깨끗하게 벌어서 세금 내고 일자리 창출하고 당신들이 최고의 애국자요’라고. 이제 내가 최고의 애국자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치하며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 글로벌 수준의 경험과 펀드를 가진 분들과 함께 힘을 합쳐, 정말 힘든 청년들, 스타트업하는 사람들을 키우려고 한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인으로서 장래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상선 기자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인으로서 장래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상선 기자

그간 정치를 한 게 20년이다.
“도지사 하면서 정치론 연정, 경제론 공유경제를 내걸었다. 그사이 정말 많은 기업인들을 만났다.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를 만들고 도왔다. 이젠 선수로 뛰고 싶다.”
아쉽지 않나.
“정치하며 추구하고자 한 건 다 했다. 아쉽지만 버려야 얻는다. 나를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갈 수 있다. 처음엔 왜 안 두려웠겠냐. 20년간 이것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인데,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간다고 할 때 성공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고민 많이 했다. 그렇지만 가슴이 뛰는 걸 어떻게, 그냥 가슴이 뛰었다.”
지금 발표한 이유는.
“최근 정치권에서 유력인사들이 ‘좀 보자’ ‘누굴 만나봐라’ ‘뭘 하자’ 이런 얘기를 하더라. 나를 변수에서 제외해야 이분들이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이 될 듯해 (발표)했다. 나를 도왔던 보좌진들도 자기의 길을 찾아야 할 테고.”
 

그는 20년 내내 소장파로 불렸다. 보수 정당에서 중도적 목소리를 냈고 선수(選數)에 비해 젊은 나이여서다. 가족 문제로 어려운 시기도 겪었다. 2016년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을 탈당할 무렵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 일도 있다. “20년 정치하면서 어머니도 잘 못 모시고 동생들이랑 마음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애들 엄마하고 헤어졌고…아버지 덕분에 5선 하고 도지사도 했는데 이제 남은 건 제가 해보고 싶은 정치를 하고 싶다.”(『가시덤불에서도 꽃은 핀다』)
 
남경필 전 지사가 최근 읽고 있는 책들. 김상선 기자

남경필 전 지사가 최근 읽고 있는 책들. 김상선 기자

코리아 리빌딩을 얘기했었다.
“그 꿈은 정치를 하는 분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안타까운 건 집권과 갈등과 몰락이 계속 반복되고, 대통령들이 감옥 간다는 것이다. 여야는 적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호를 탄 동지적 관계다. YS(김영삼)·DJ(김대중)는 그랬다고 본다. 국가의 미래 방향을 보면 노동·재정·복지·남북·외교·교육은 한 정권, 한 정파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잠이 안 와야 할 텐데 지금은 분노에 가득 차서 잠이 안 오는것 같다. 이런 위기에 공감하고 합의하는 정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해보려 했으나 못 했다. 그건 이제 정치권에 맡기고 나는 새로운 경제에 도전하겠다. 깨끗하게 경영하고 멋지고 의미 있게 쓰겠다.”
정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삶의 구조를, 사회의 구조를 만들고 바꾸는 게 정치다. 내가 정치하면서 사람을 어떤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냐면 민주주의자다. 그 전제는 ‘나는 불완전하다,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늘 토론하고 자기 생각이 틀렸을 땐 상대방 의견에 동의할 수 있다, 그리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하면서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솔직히 얘기해서 (진보의) 심상정이 아니다. 우리 당내에서 있는 같은 소장파를 하는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제일 어렵더라.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힘들다. 정치는 선악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방향에 대해 동의하면 수단은 협상 가능해야 한다. 두 번째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사안이 닥쳤을 때 제일 먼저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을 위해 좋으냐, 나를 위해 좋으냐를 따져야 하는데 대부분 거꾸로 한다. 민주적 마인드, 퍼블릭 마인드 두 가지가 중요하다.”
지금 정치는 어떻다고 보나.
“제일 큰 문제는 분노의 정치가 일상화돼 있다는 점이다. 선거의 1번 전략도 분노의 대상을 찾는 것이다. 상대방을 분노의 대상으로 만드는 싸움을 한다. 이런 정치는 공멸이다. 권력을 가져봐야 똑같은 잣대로 자신도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재미 없는, 어떻게 보면 지루한 정치를 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정치가 집권을 못 한다는 데 있다. 이 시스템을 바꿔줘야 한다.”
본인이 바꾸려고 할 수 있지 않나.
“실패했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주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단 한 차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김상선 기자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주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단 한 차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김상선 기자

내내 밝았던 그가 처음으로 “하”란 소리가 나도록 한숨을 내쉰 건 이 대목이었다. “본선에서 진 건 한 번이었다”고 말을 건넸을 때였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고민했다. 분노의 정치, 미움의 정치를 해야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인데, 더 할 것이냐, 다른 일을 할 것이냐 그 안에서 갈등이 많았다. 내가 그건 못하겠더라. 경기지사로서 바꿔보려고 했는데 안 됐다. 현금 복지가 최고 선거전략이더라. 연정을 두고 ‘좋다’ ‘좋은 일’이라고 했지만 그러곤 끝이었다.”

 
정치인들이 정계 은퇴한다고 해도 다들 안 믿는다.
“오늘은 많이 믿는 것 같더라. 정계 은퇴하고 산으로 간다, 외국으로 간다, 토굴로 간다니 안 믿는다. 토굴에 있어야 얼마나 있고 외국에 나가야 얼마나 있겠느냐. 그런데 스타트업을 한다니까 ‘사업에 성공하면 안 오겠구나’라고 한다. 한 유명인에게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남 지사, 나는 정치인들이 절대 정치 안 한다는 말을 절대 안 믿는다’고 하더라.”
실제 DJ를 비롯해 정계 은퇴한 사람들이 상당수가 돌아왔다.
“여기서(사업) 더 큰 일을 하겠다. 시작은 작지만 꿈은 있다. 경제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쉽게 얘기하면 깨끗하게, 함께 잘 살게 말이다. 주주만 좋은게 아니라 노동자도 좋고 소비자도 좋은 그런 게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모습이다.”
 

31일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비행 중 생각했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함께 힘을 모아 함께 성장하는 투명하고 안전한 세상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도전할 거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서 연정에 처음 도전했듯이 경제에서도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자 한다. 그래서 가슴이 뛴다. 꿈에 도전하는 것은 날 가슴 뛰게 만든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되는 플랫폼 위에 안전하고 투명한 기업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공유성장, 투명, 안전이 4차 산업혁명의 방향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유시장 경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그가 다시 정치하는 날이 올까. 누가 알겠는가. 다만 남 전 지사에게 지금 정치인에서 경제인으로의 이행이 어떤 단절(end)이기보다는 과정(and)처럼 보였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