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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절차보다 결론? 변호사로 법정 서자 생각이 바뀌었다

부장판사 출신 작가의 눈으로 본 형사재판
판사들은 어떤 마음으로 재판하고 판결할까. 그들은 인생을 걸고 법정에 서는 피고인과 당사자를 위해 얼마나 애쓸까. 요즘 이런 물음과 마주치는 건 법원과 판사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영장이 기각되고 발부될 때마다 판사들 경력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뿐인가. 전직 대법원장·대법관·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받고 있고, 전·현직 판사들이 피고인석과 증인석에 줄줄이 선다. 열광과 냉소가 교차하는 법정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도진기 변호사는 ’내 판결에 억울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판사 하면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도진기 변호사는 ’내 판결에 억울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판사 하면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래서일까. ‘본격 법정물’을 표방한 소설이 눈에 밟혔다. 『합리적 의심』. 소설은 ‘부장판사 현민우’가 젤리 살인 사건 재판을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모텔에서 젊은 남성이 질식사하는데, 함께 있던 여성은 “젤리를 먹다가 목에 걸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후 여성이 거액의 보험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은 계획 살인으로 보고 사형을 구형한다.  
 
현민우는 유죄임을 확신하지만 배심 판사들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맞선다. 현민우는 정의감과 법 원칙 사이에서 번민하다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그러나 항소심 무죄, 대법원도 무죄다. 그는 피해자 가족에게 “가해자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라”고 말하는데….
 
소설을 쓴 이는 20년 간 판사 생활을 했던 부장판사 출신 도진기 변호사. 추리소설 작가인 그를 서울중앙지법 앞 사무실로 찾아갔다.
 
소설을 쓴 계기는.
“판사로 있을 때였다. ‘낙지 살인’ 사건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판결문과 기사를 찾아봤는데, 1심에서 사형 구형 후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피고인이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쳤다는 거였다. 진실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수고하셨습니다!’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시작은 분노였나.
“응보(應報)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며 작품으로 승화시키게 됐다. 가해자·피해자의 성별도 바꿨고…법원 판결과 시민 상식의 괴리를 보여주고, 시민들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관련 사건기록을 찾아서 참고했나.
“다른 작가들과 공정 경쟁을 했다. 오로지 판결문과 신문 기사만 보고 썼다. 공교롭게 낙지 살인 사건 1심 재판장, 2심 재판장과 연이어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지만, 사건에 관해선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다른 판사 사건에 관해 묻는 건 법관사회의 금기다.”
 
프롤로그를 보면 ‘응급실에 실려 온 히틀러를 진료하는 의사의 심정이 되는 때도 가끔은 있다’며 결론과 절차 사이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현민우는 결국 절차보다 결론을 택하는데.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공정한 결론과 공정한 절차의 딜레마, 그 자체였다. 그 내적인 갈등이 모티브이자 주제다. 재미있는 건 법복 벗고 2년이 지나면서 소설을 보는 나 자신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캡션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캡션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시각이 달라졌다는 건?
“판사를 하는 동안엔 정의 실현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현민우’가 그랬듯 피해자 가족에게 전화해 ‘민사소송을 해보라’고 말해줄까, 망설이기도 했다. 형사소송에서 유죄가 되려면 거의 100%의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민사소송은 51%로도 이길 수 있다고.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나선 예측 가능한 절차의 시스템 속에서 옳은 결론을 추구하는 판사가 좋은 판사 아닌가, 생각한다.”
 
대화의 주제가 소설에서 현실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도 변호사에게 다시 물었다. 왜 그런 시각의 변화가 생긴 거냐고.
 
“법원 있을 땐 ‘1+1=2’, 즉 올바른 법 논리는 하나뿐이라고 믿었다. 또 동료 판사들을 신뢰했다. 외부 비판에도 ‘설마 그랬겠어?’ 쉴드(방패)를 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법정에 변호사로 들어가 판사들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70%는 훌륭한 판사다. 20%는 더 노력했으면 좋겠고, 10%는 문제가 많다. 여론의 영향도 있지만, 감정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감정에 영향받는다면?
“예를 들어, 판사가 기록을 대충 보고 와서 질문하는데 변호사나 피고인이 ‘그게 아니고 이겁니다’라고 말하면 기분이 상해버린다. 그렇게 생긴 감정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피고인들에게 가장 먼저 말하는 게 ‘법정에서 태도를 좋게 하라’는 거다. 내용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다. ‘네 맘대로, 주관적 정의감이 가리키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법이라는 이름의 룰에 따라서만 재판하라는 것이다.’ 형사 재판에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가.
 
“반(半) 검사인 판사들도 있다. 통계적으로 기소 사건의 95%가 유죄이니까 유죄로 보면 대충 맞는다는 안이함도 있겠고…피고인을 색안경 끼고 본다. 나쁜 놈 나쁘게 처벌하는 건 근대 이전에도 해오던 거다. 5%의 억울한 사람 만들지 않기 위해서 형사소송법 절차가 있고, 판사가 있는 거다. 현민우처럼 형사소송 원칙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판사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판사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결론이 기대와 다르더라도 승복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판단부터 내리고 재판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첫 기일에 예단을 노출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부터 피고인은 무너져 내린다. 판사가 한번 편견을 가지면 아무리 변론해도 극복이 안 된다. 판사 오래 한 분일수록 ‘해봐서 아는데’라는 자신감으로 낙인 찍어버리는 경향이 보인다. 법보다 자아가 앞서는 판사도 있다. 판사 이전에 고시생이었으니까….”
 
『합리적 의심』엔 판사들 생활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을 공평하게 한 부씩 받아보는 게 판사실의 유행이고, 곰탕 국물처럼 뿌옇고 모호한 화법이 난무하고, 그렇게 10중의 1을 이야기해도 10을 알아듣고 행해야 한다.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NASA 발표가 나더라도 판결문 다 썼냐며 묵묵히 수저를 뜨고, 술자리에서도 상대방을 견제하는 듯 겉도는 주제만 주워섬기며, 소심한 인간들 박박 긁어모은 데가 법원, 이라고 소설은 묘사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사법농단’이란 사태도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관계 맺으며’ 살아온 판사들이 서로 독립되지 못한 채 일사불란한 권력의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일어난 것 아닐까. 이 사태가 빚어진 원인은 판사가 어떻게 재판해야 하고, 무슨 일은 해선 안 되는지 고민하지 않은 데도 있는 게 아닐까.
 
“인사권자가 말하면 재판 결과에 영향 준다고 본다. 절차가 공정해야 한다는 제1원칙을 어겨놓고 ‘결과엔 영향 없다’고 하는 건 좀…. 이건 하나 꼭 말하고 싶다. 판사처럼 비판받지 않는 직업도 드물다는 거다. ‘유전무죄’나 ‘정치적 편향’ 같은 비판은 판사가 ‘난 아닌데?’ 하면 그만이다. 판결 자체의 논리성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나는 다행히 작가를 하면서 안 맞던 돌을 맞아봤다. ‘문장이 엉망’이란 댓글도 보고…제대로 비판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
 
도 변호사의 말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언론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판결의 결론만 보고 ‘편향 판결’이다, 아니다 규정짓는 데 그쳐선 안 된다. 판결문 속에 혈관처럼 이어진 논리의 흐름을 추적하고, 사회적 의미와 맥락을 짚어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 언론의 살길이 열린다.
 
판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판사들이여, 스스로를 ‘합리적 의심’ 앞에 세우고 절차와 결론을 향한 내적 갈등을 멈추지 말라. 어떻게 해야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고독하게 고민하라. 법정을 주권자인 국민 앞에 투명하게 개방하라. 법정은 판사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므로.
  
권석천 논설위원
※이정원 인턴기자가 인터뷰를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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