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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고려 땅 독점 울분 토하더니 60만평 챙긴 사대부 위선

 고려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그린 '아집도(雅集圖)' [자료=호암미술관]

고려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그린 '아집도(雅集圖)' [자료=호암미술관]

유성운의 역사정치
 
“근년에 이르러 겸병이 더욱 심하여, 간흉한 무리가 주군(州郡)과 산천(山川)을 경계로 삼아…누세에 걸쳐 심은 뽕나무와 집까지 모두 빼앗아 가고, 무고한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고려사』-「식화지(食貨志)」)  
 
조선 건국세력이 편찬한 『고려사』를 보면 권문세족(權門勢族)의 대토지 소유를 비난하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대목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성계 일파는 토지 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내걸고 고려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1388년 6월,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세력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도 바로 토지제도 개혁이었습니다. 일종의 '적폐 청산'이었던 셈이죠.
 
역성 혁명의 명분, 토지개혁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위화도회군 후 내전을 벌인 이성계(유동근)와 최영(서인석) [자료=KBS]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위화도회군 후 내전을 벌인 이성계(유동근)와 최영(서인석) [자료=KBS]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세운 이성계 세력은 창왕 즉위년에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관원도, 군사도 아니고 국역(國役)을 지는 것도 아닌 사람들에겐 토지를 주지 말고…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국가 비용을 충족케 하고 백성의 살림을 넉넉히 만들며 조정의 관원들을 우대하고 군사들에게 충분한 공급을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고려사』-「식화지(食貨志)」
 
취지는 좋았지만 토지 개혁은 기존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것이 전제된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또 비록 ‘백성의 살림살이’를 내세웠지만 그 이면엔 정치 세력간의 알력도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좋은 땅을 권문세족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이제 막 정계의 핵심으로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관직에 올라도 정부로부터 받을 마땅한 땅이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사』는 이렇게 전합니다. “재상으로 마땅히 300결을 받을 자가 송곳을 세울만한 땅도 없고, 녹봉 360석을 받을 자가 20석에도 차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세력 확장과 군인 및 관료들의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토지개혁은 필수였던 셈이죠.  
길이 10미터도 안되는 작은 규모의 다리인 북한 개성의 선죽교(1997년). 온건개혁파였던 정몽주는 이성계 세력이 추진한 토지개혁 등에 반대하다가 선죽교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앙포토]

길이 10미터도 안되는 작은 규모의 다리인 북한 개성의 선죽교(1997년). 온건개혁파였던 정몽주는 이성계 세력이 추진한 토지개혁 등에 반대하다가 선죽교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앙포토]

 
결국 신구 세력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3년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창왕과 정몽주, 이색 등 온건개혁파 세력이 숙청됐습니다. 그리고 이성계 새력은 1390년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을 내세워 고려의 구(舊) 토지대장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1391년 5월에 과전법(科田法)을 제정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새 왕조가 개창되고 50년도 지나지 않아 과전법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관원들에게 나눠줄 토지가 부족하게 된 겁니다. 일부 계층의 대토지 소유가 원인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모든 토지를 백성에게, 국가를 부유하게”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 [자료=SBS]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 [자료=SBS]

일단 과전법이 무엇인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조선 건국의 핵심세력은 성리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였습니다. 이들은 고대 주(周)나라의 제도를 이상향으로 그리며 이를 복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토지 제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도전은 고대 중국의 정전제(井田制)에 기초해 전국의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백성에게 고르게 나눠주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토지를 경작하던 가장(家長)이 사망하면 국가에 반환하도록 하면 부의 대물림이나 대토지 소유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일종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했는데, 그가 지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에는 이런 철학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고대에는 토지가 관(官)에 있고 이를 백성에게 주었으니, 백성이 경작하는 것은 모두 (국가에서) 준 토지였다. 천하의 백성으로 토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빈부와 강약이 서로 차이가 심하지 않았으며, 토지에서 나오는 바가 모두 국가로 들어갔으므로 국가 역시 부유하였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고려의 역사를 다룬 『고려사절요』 [중앙포토]

고려의 역사를 다룬 『고려사절요』 [중앙포토]

반면 이성계 세력의 ‘경제 브레인’ 조준은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몰수 뒤 재분배할 토지를 권문세족 등 특권층이 점유했던 수조지(땅에서 생산된 곡식이나 세금에 대한 소유권만 인정하는 토지)로 한정했습니다. 
그리고 전·현직 관료와 그 가족 등에게 관직이나 품계에 따라 경기도의 땅을 분배하고 토지 수급자가 사망하면 다시 국가가 환수토록 했습니다. 
그래도 과부가 재혼하지 않거나, 자녀가 미성년이면 사대부로서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남겨두는 배려도 했습니다. 조선은 공무원에겐 확실히 좋은 나라였습니다.
 
비록 정도전이 주장한 전면적 토지 재분배보다는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한 셈입니다. 하지만 고려 말 권문세족이 불법 소유한 땅이 워낙 막대했기 때문에 이것으로도 국가 재정은 숨통이 확 트였습니다.
 
과전법(科田法) 위에 공신전(功臣田)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제1차 왕자의 난을 다룬 장면 [자료=SBS]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제1차 왕자의 난을 다룬 장면 [자료=SBS]

그런데 이 같은 구상은 태종대부터 흔들렸습니다. 대토지 소유를 혁파해 나라의 재정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던 구상이 무너진 결정적 요인은 공신전(功臣田)이었습니다. 
공신전은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나눠준 토지였는데, 대대손손 세습이 가능하고 면세의 혜택을 줬습니다. 사실 공신전은 일종의 예외적 특혜였습니다. 토지를 관직에 따라 나눠준 뒤, 사망하면 되돌려 받는다는 과전법의 기초를 뿌리부터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데타에 이어 ‘왕자의 난’을 벌이며 정권의 정통성이 허약했던 조선의 왕들은 자신을 도왔던 이들에게 공신전을 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은 태조부터 세조까지 건국한 지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개국공신 외에도 제 1ㆍ2차 왕자의 난 때 활약한 정사공신ㆍ좌명공신, 수양대군의 집권을 도운 정난공신ㆍ좌익공신 등 6차례에 걸쳐 261명의 공신을 책봉했습니다. 
 
그렇다면 공신들이 차지한 땅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조준은 개국 직후인 1392년 9월 발표된 논공행상에 따라 1등 공신에 올랐습니다. 1등 공신은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 17명으로 각각 150~220결의 공신전과 15~30명의 노비가 주어졌습니다. 또, 2등 공신 11명에게는 공신전 100결과 10명의 노비가, 3등 공신 16명에게는 공신전 70결과 노비 7명이 각각 주어졌습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신 적폐’가 된 개국공신 세력 
결(結)은 고려ㆍ조선 시대의 토지 단위입니다. 비옥도에 따라 책정됐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라고 단정 짓기가 어렵지만,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가장 비옥한 1등전의 1결은 대략 9800여㎡ 정도로 추정됩니다. 1등 공신인 정도전과 조준에게는 당연히 1등전을 줬겠지요.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이들이 받은 토지는 215만6000㎡, 약 65만3000평 정도입니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김상선 기자]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김상선 기자]

과전법과 마찬가지로 공신전도 경기도의 땅으로 줬습니다. 수도권의 알짜배기 땅은 지금도 가치가 높지만 조선처럼 개발도가 낮은 국가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조준 외에 다른 공신까지 합치면 공신전의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인데, 이미 태종 2년엔 “경기도 토지 14만 9000여 결 가운데 공신전이 3만 1240결에 달한다(『태종실록』)”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즉, 경기도 토지의 20%가량을 공신들이 나눠가진 셈입니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를 비판하고, 이를 몰수하는 개혁을 추진했던 인사들이 이렇게 대토지 소유자로 변모했으니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는가’라는 반문이 나올 법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과전법을 내걸고 각종 반대를 무릅쓰며 권문세족의 대토지를 몰수하고, 토지를 재분배하는 동안 권력의 핵심층은 이를 뿌리부터 갉아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심지어 조준은 앞서 소개했듯 과전법의 설계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판의 여지는 더욱 커집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과 서울 흑석동 상가건물. [중앙포토·연합뉴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과 서울 흑석동 상가건물. [중앙포토·연합뉴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여 29일 대변인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번 재산공개를 보면 부동산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내놓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고위 공직자 46명 가운데 다주택자가 13명인 것으로 나타났으니까요. 또 부동산 정책을 끌고 가야 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알짜 지역인 분당ㆍ잠실ㆍ세종에 주택과 분양권을 소유하면서 2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현대사회의 부동산 거래와 왕조시대의 공신전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투기는 사회악이라며 규제를 강화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많은 고위공직자가 다주택자라는 뉴스를 듣는 국민들의 심정이 과거 공신전으로 땅을 늘린 사대부를 바라보던 조선 백성들의 심정과 아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습니다.  
 
이 정부를 향해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를 청와대는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이 기사는 최이돈 『태종대 과전 국가관리체제의 형성』, 신은제 『고려말 ‘私田’ 담론의 정치적 구성』, 이민우, 『고려 말 조선 초 토지제도 개혁과 사회 변화』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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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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