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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영화 '생일'이 좌파? 내가 아는 한국이 맞나 싶어요"

세월호 유족의 삶을 다룬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세월호 유족의 삶을 다룬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중앙일보 대중문화팀 정현목 기자, 한국영화 전공의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한일간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는 '한남(韓男)일녀(日女)수다'. 12번째 토크의 주제는 세월호 유족의 삶을 다룬 영화 '생일' 개봉을 계기로 본 한일 양국의 국가적 트라우마입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는 양국민들의 가슴에 큰 상흔을 남겼고,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 등 관련 영화도 이에 큰 몫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계속 나올 것 같습니다. 이에 문화콘텐츠가 갖는 치유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정현목(이하 현목)= 영화 '생일'을 본 느낌이 각별할 듯 해요. 세월호 참사 때 팽목항에서 취재를 했잖아요?
 
나리카와 아야(이하 나리카와)= 사고 다음날 아사히신문 특별취재팀으로 현장에 투입됐어요. 영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많이 울었어요. 유족들의 치유를 돕는 자원봉사를 했던 감독의 경험이 담겨있기에 유족의 심경을 진실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목= 유족들의 슬픔을 담담히 들여다보며,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어떤 장면에서 눈물이 많이 나던가요?  
 
나리카와= 수호를 추모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한 생일모임 때 수호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요. 그런 모임이 유가족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아요.    
 
현목= 저도 그 때 눈물이 많이 났어요. 세월호 현장취재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죠?
 
영화 '생일'에서 수호의 가족과 친구들이 추모 성격의 생일모임을 갖는 장면

영화 '생일'에서 수호의 가족과 친구들이 추모 성격의 생일모임을 갖는 장면

 
나리카와= 팽목항에 갈 때만 해도 구조 기사만 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취재도 잘 안되고, 오보와 잘못된 발표도 많았어요. 그런 현장은 처음이었어요. 희망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가족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현목= TV화면으로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현장 기자들은 오죽했을까 싶네요.  
 
나리카와= 그 때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미흡한 대처가 피해를 더욱 크게 만들었어요. 한 예로, 일본 해상보안청이 구조작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한국이 거절했잖아요. 당시 이에 분개하는 가족들이 많았어요. 일본 해상보안청이 구조선박과 다이버들을 대기해놓고 있었는데, 결국 출동하지 못했대요.  
 
현목= 일본의 뛰어난 해난구조 기술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됐을텐데.  
 
나리카와= 민간 다이버들도 당국의 제지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인데, 이해 안가는 게 너무 많았어요.    
 
현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일부라도 살릴 수 있었다면, 참사 트라우마가 이렇게까지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진 않았을 거에요. 나리카와 상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 같은데.
 
나리카와= 팽목항 취재를 마치고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에게 '내가 아는 한국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2년간 유학하며 한국은 가족처럼 서로 도우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나라란 생각을 했는데, 세월호 현장은 무력감과 불신감이 팽배한 곳이었어요. 원래 이런 나라인가 싶어 패닉에 빠졌죠. 일본에 돌아가서 한동안 눈물도 안났어요.   
 
현목=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당분간 눈물도 안나죠.  
 
나리카와= 한참 지난 뒤 엄마에게 얘기하다가 눈물이 터졌어요. 가족들이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체육관에서 자식의 이름이 불리면 혹시나 하는 희망에 뛰어나가는데 잠시 뒤면 어김없이 비명과 함께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게 되풀이되면서 시신확인 절차라는 걸 알게 됐죠. 그 다음부터 가족들은 자식의 이름이 불릴까 두려워했어요. 그 얘기를 엄마에게 하면서 같이 울었어요.  
 
현목= 유가족을 더 슬프게 한 건, 일각의 그릇된 시선이에요.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러냐, 안그래도 경제가 어려운데 그만 좀 해라 등등. 단순한 교통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주장도 있었죠.   
 
나리카와= 오히려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이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 아닌가요? 위안부·징용피해자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정작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안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세월호 영화가 나온다고 하니까 한국인 친구가 대뜸 '좌파 영화'냐고 물어 황당했어요.  
 
현목= 좌파 딱지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 왜 잘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께 부담을 주느냐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하는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으며 조롱한 일베 회원들의 행동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이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았죠? 원전사고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차별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나리카와= 후쿠시마에서 전학온 아이들을 '방사능에 오염돼 더럽다'고 놀리는 경우가 있었어요. 후쿠시마에서 왔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니까, 다른 곳에서 왔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삶의 기반을 잃은 피해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거죠. 참사의 유형은 다르지만, 삐뚤어진 사회의 시선에 또 한번 상처받은 세월호 유족들과 다르지 않아요.   
 
현목=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사람들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나요? 안온해 보이는 일상이 사실은 취약한 기반 위에서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각성?
 
나리카와= 맞아요. 우리의 일상이 당연하게 계속되는 건 아니란 걸 절실히 느꼈죠. 내일 당장 큰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 자신이 죽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으니까.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진짜 많아요. 지진 났는데 배우자가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도망간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혼을 결심한 ‘신사이리콘(震災離婚)’이 속출했고, 불안한 삶에서 내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건 가족 밖에 없다는 생각에 결혼을 하는 '신사이케콘(震災結婚)' 또한 늘었어요.    
 
현목= 지진보다 더 큰 공포를 준 게 원전사고였죠? 후쿠시마 원전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고,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은 강제로 봉인됐을 뿐 해소되고 있지 않잖아요? 
 
나리카와= 원전사고는 피해가 계속 이어지고,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공포스럽죠. 2016년에 두 편의 화제작이 나왔는데, 모두 동일본 대지진 관련 영화였어요. 
 
현목=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과 괴수영화 '신 고질라'죠? 
 
나리카와= 맞아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원래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감독이 아닌데, 대지진을 겪고서 '너의 이름은.'은 꼭 해피엔딩으로 하기로 결심했대요. 남녀 주인공이 고군분투해 혜성충돌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지켜내는 대목이 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준 거죠.   
 
'너의 이름은.' 포스터

'너의 이름은.' 포스터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현목= '너의 이름은.'이 한국에서도 흥행한 이유 중 하나가 그거에요. 우리도 저렇게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한 관객들이 많았어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세월호 참사에 충격받아 작품에 반영한 것도 있잖아요. 마을 읍장이 '안심하고 가만히 계세요'라는 안내방송으로 주민들의 대피를 막아서는 장면. 
 
나리카와=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끔찍하고도 참담한 안내방송이 떠올랐죠. 한일 양국민의 트라우마를 보듬어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에요.         
 
현목= 대지진 이후 내 삶이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불안을 안고 사는 일본인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단 하나의 목숨이라도 되돌리고 붙들어야 한다'는 외침을 전하려 했다는 감독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나리카와= '신 고질라'는 원전사고를 모티브로 했어요. 원전사고를 영화 소재로 삼아선 안된다는 암묵적인 금기를 교묘하게 피해가요. 고질라는 바닷속 핵 폐기물 속에서 성장한 돌연변이로, 원전사고 그 자체거든요. 
 
영화 '신 고질라'의 한 장면

영화 '신 고질라'의 한 장면

영화 '신 고질라'의 한 장면

영화 '신 고질라'의 한 장면

 
현목= 고질라의 등장에 우왕좌왕하고 탁상공론하는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괴수물이라기보다 정치드라마 같던데요. 
 
나리카와= '즉각적인 피해는 없습니다' '예상의 범위를 벗어난 일입니다' 등 원전사고 때 관료들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이 대사로 나와요. 그걸 보며 쓴 웃음 지은 관객들이 많아요. 
 
현목= '너의 이름은.'이 대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와 희망을 이야기했다면, '신 고질라'는 원전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혀요. 방식은 다르지만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 드리워진 어둠을 조명했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하네요. 영화 '생일'도 한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상흔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요?
 
나리카와= 극장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일단 보면 다들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동일본 대지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봄은 온다'에 보면, 남편이 잠시 외출했을 때 아이 셋이 쓰나미에 휩쓸려 죽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아내가 나오는데, 그때 애들을 지켜주지 못한 남편이 평생 미워질까봐 그 때 상황을 묻지도 듣지도 않고 살아가요. 세월이 지난 뒤 아내는 깨달아요. 애들을 더 사랑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남편이 자신보다 더 힘들었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일'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잖아요. 상처가 아물기 위해선 역시 시간이 필요하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동일본 대지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봄은 온다'의 한 장면

동일본 대지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봄은 온다'의 한 장면

 
현목= 주변의 위로와 격려도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어느 누구도 유족들에게 눈물을 거두라고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돼요. 오직 유족들만이 스스로 눈물을 거둘 수 있어요. 상처는 결코 아물 순 없겠죠. 하지만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건 우리 사회의 몫이라 생각해요. 다큐 '봄은 온다'의 영어 제목이 뭔지 아세요?  'life goes on' 입니다.
 
나리카와= 정말 좋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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