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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역사 100년, 단순히 ‘책 빌려보는 곳’ 이젠 벗어나야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서울 잠실에 사는 워킹맘 홍민영(37)씨는 공공도서관 단골 이용자다. 여덟 살 딸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역 어린이도서관에서 100권 넘게 대출받아 읽혔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수십만원 하는 50권짜리 수학동화 전집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인근 공공도서관을 빠짐없이 훑었지만 워낙 책이 인기 있다 보니 서너 명 이상씩 대출 예약이 밀려 있었다. 대부분의 도서관은 해당 전집을 한 질씩만 보유하고 있었다. 홍씨는 “차츰 난이도가 높아지도록 전집이 구성돼 있어 중간에 빠진 책이 반납되기를 기다렸다가 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집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창업 지원, 시민 교육 서비스 등
사회 변화 따른 역할 모색 필요

지자체장 등 행사에 내몰린 사서
“책 구경할 시간조차 없다” 호소

도서관 숫자 늘어도 사서는 줄어
핵심 업무인 분류 작업도 외주화

홍씨의 사례를 강남 엄마의 극성스러운 사례로 치부할 수 있을까. 도서관들이 대출 수요가 많은 책을 평소보다 더 구입하는 유연성을 발휘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을 문제다. 한국 근대도서관의 역사는 올해로 100년을 헤아린다. 1920년 독립운동가 윤익선이 세운 경성도서관을 시초로 잡을 경우다. 2009년부터 5년 주기로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세워 실행 중이고 2006년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외형적으로는 성장했다는 평가다(그래픽 참조). 하지만 내실은 사정이 다르다. 홍씨의 사례처럼 이용자 서비스가 섬세하지 않다. 도서관을 지역 공동체 결속의 거점으로 삼거나 민주적 토론의 실험장으로까지 여기는 도서관 선진국들에 견주면 한국의 도서관 현실은 걱정스러울 정도다.
 
 
‘셰익스피어’는 260건 ‘세익스피어’는 4건
 
가령 우리 공공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인들이 ‘전거통제(典據統制)’라고 표현하는, 유사용어 검색이 되지 않는다. 제목이 다른 복수의 판본이 존재하거나(『노르웨이의 숲』과 『상실의 시대』), 외국어 이름 한글 표기가 복수인 경우 어느 한쪽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나머지 한쪽에 해당되는 책을 찾을 수 없다.
 
서울 백제고분로에 있는 돌마리도서관 홈페이지의 검색창. 송파 지역 13개 공공도서관의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입력하자 260건의 도서가 검색된다. 반면 ‘세익스피어’를 쳐넣으면 4건만 나온다. 이용자가 표준 표기를 모르더라도 알아서 책을 찾아주도록 도서관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다.
 
교육청 소속 도서관도 마찬가지. 서울 정독도서관 자료검색창(시 교육청 산하 22개 도서관 자료 검색)에 ‘모차르트’를 입력하면 1913건, ‘모짜르트’라고 입력하면 94건의 도서가 각각 검색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서 업무 제대로 하는 도서관 많지 않아”
 
‘전거통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도서관의 핵심 인력인 사서의 숫자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사서의 기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경기대 문헌정보학과 조현양 교수의 직무분석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은 평균 8개 영역, 115개의 과제를 수행한다. 이 가운데 도서관발전계획 수립(95.9%), 장서개발계획수립(100%) 등 거의 모든 과제에서 사서직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기관이 도서관이다. 하지만 도서관이 늘어나는 사이 1관당 사서 숫자는 오히려 줄었다(그래픽 참조). 사서 공급보다 도서관 숫자가 더 크게 늘면서 생긴 일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충남교육청 소속 윤병훈 사서는 “사서의 두 가지 핵심 업무인 도서 구입·분류와 이용자 상대 창구 서비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서가 선출직 지자체장이나 교육감을 빛내는 독서문화프로그램 등 운영에 내몰리다 보니 책을 구경할 시간조차 없다고 호소한다. 어떤 책을 새로 구입할지 사서가 검토할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 등의 홍보 목록에 의존한다. 구입한 책을 이용자가 빌려볼 수 있도록 청구기호를 작성해 붙이는 작업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업체에 의존한다. 사서의 핵심업무인 도서 분류 작업의 외주화다. 정육점 등 비전문 사업자가 지역 도서관에서 도서 납품 계약을 따낸 뒤 재하청을 주는 사례도 발생한다. 전거통제 미비는 이 과정의 산물이다.
 
실제로 충남의 군 단위 도서관의 한 사서는 “도서를 납품하는 3, 4개 업체 가운데 실제 서점은 한 곳뿐”이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업체라는 얘기다.
 
명지대 문헌정보학과 권나현 교수는 “도서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사서를 늘리지 않는 것 같다. 도서관은 책만 빌려주는 기관이 아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역할이 바뀐다. 창업 지원 서비스를 할 수도, 시민 교육을 통해 사회 통합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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