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신 안중근 드라마’…만주대륙 철길위에 펼쳐진 지정학의 대격돌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하얼빈 거사의 국제정치학
철길은 긴박하다. 1909년 10월 북만주의 하얼빈 역. 만주 철도망의 허브다. 세 방향에서 열차가 집결한다. 아래쪽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등박문) 열차가 다가온다. 서쪽은 블라디미르 코코프체프(Влади́мир Коко́вцов)의 열차다. 이토는 제국 일본의 원로(당시 68세). 코코프체프(56세)는 제정(帝政)러시아의 실세(재무대신)다. 러·일 양강의 거물 정치인 회동이 예고됐다. 초겨울의 하얼빈. 찬바람 속에 긴장과 흥분이 섞인다.
 
진정한 주연은 따로 있다. 30세의 안중근. 대한의군(義軍) 참모중장이다. 그는 동쪽(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행 열차를 탔다. 안중근은 불멸의 서사시다. 그 드라마는 이토를 처단하는 순간 장엄해진다. 그 속에 비분과 강개가 넘친다. 하지만 그 정서만으로 서사는 충족하지 못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서사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안중근은 민족의 영웅이면서 해양 세력의 영웅이다.” 그 말은 지정학적 상상력을 생산한다.
 
 
체포 직후 안중근(러시아식 반외투 차림)

체포 직후 안중근(러시아식 반외투 차림)

만주는 중국(청나라) 땅이다(지금의 동북3성). 하지만 철도의 소유·운영은 러시아(동청철도)와 일본(만철)이다. 철도는 제국주의 팽창의 통로다. 지정학(地政學) 전략의 전개 수단이다. 철길은 뱀의 혀처럼 내밀고 삼킨다. 만주 대륙에 미국이 뒤늦게 뛰어든다. 철도 진출의 야망 때문이다. 만주의 정세는 급속히 민감해졌다. 하얼빈은 안중근·이토·코코프체프 모두에게 처음이다. 나는 그들의 철길과 행적을 추적했다. 이제부터 ‘신(新)안중근 전’이다.
 
이토가 먼저 만주에 들어갔다. 1909년 10월 18일 다롄(大連)항구에 내렸다. 이토는 원로 집단인 추밀원의 의장(네 차례 총리 역임). 직전 직책은 조선통감. 그는 이틀 전에 모지(門司, 북규슈)항에서 상선을 탔다. 일본 출발(오이소)은 10월 14일. 다롄과 뤼순(旅順)은 쌍둥이 항구. 그곳의 조차(租借)점거는 러일전쟁 승전의 전리품이다. 다음 일정은 뤼순의 격전지 203고지.  
 
안중근의 거사 동지 우덕순·조도선·유동하(왼쪽부터, 재판사진)

안중근의 거사 동지 우덕순·조도선·유동하(왼쪽부터, 재판사진)

고지의 일본군 승전탑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일제 때 건물은 도심을 장식한다. 중국은 침략 흔적을 부수지 않는다. 물망(勿忘, 잊지 마라) 정신에 집중한다. 한국의 과거사 접근과 판이하다. “이토는 야심을 숨겼다. ‘개인적 만유(漫遊)’라고 했다. 그는 다롄에서 만철을 탔다. 봉천(지금 선양)에 이어 25일 관성자(寬城子, 창춘)로 올라갔다.” (미요시 도오루 『사전(史傳)이등박문』)
 
코코프체프의 출발은 10월 12일.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시찰의 목적은 만주 현황 파악이다. 동청철도 관리는 그의 재무성 관할이다. 열차의 지정학적 가치 재평가도 그의 몫이다. 열흘 뒤 그의 특별열차는 시베리아의 치타 역에 진입했다. 이어 아래쪽 동청 철로. 22일 밤 청나라 국경도시 만저우리를 지났다. “이번 여정은 기분 좋은 휴가다.” (『코코프체프 회고록 Out of My Past』 영문판) 그는 24일 하얼빈에 도착했다. 하얼빈은 동양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는 제국의 성취를 즐겼다. 도심 속 성 소피아 성당을 찾았다.
 
거사 직전 장면, 열차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화살표)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있다. 그의 오른편은 러시아 코코프체프 (군복 차림 뒷모습)

거사 직전 장면, 열차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화살표)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있다. 그의 오른편은 러시아 코코프체프 (군복 차림 뒷모습)

그 무렵 안중근 의사(義士)는 침체 상태였다. 거대한 반전(反轉)이 찾아왔다. 10월 19일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이토의 하얼빈 방문 소식이 포착됐다. 그는 결의에 찼다. “늙은 도적(老賊)이 내 손에서 끝나는구나” (안중근 『안응칠 역사』) ‘안응칠’은 어린 시절 이름. 그곳 ‘대동공보’ 편집장 이강의 후원이 있었다. 안중근은 서둘렀다. 거사 동지로 우덕순(29세)을 맞았다. 우덕순은 국내진공 작전 때 전우.  
 
10월 21일 아침 두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출발했다. 열차는 우수리스크에서 동청철로에 올랐다. 이어 국경도시 포그라니치니. 세관검사의 정차시간은 1시간15분. 그는 근처 유경집(한의사)의 집으로 뛰어갔다. 아들 유동하(17세)가 의거에 동참했다. 역할은 러시아어 통역. 열차는 청나라의 쑤이펀허로 진입했다. 다음 날 22일 밤(9시15분) 하얼빈 역에 닿았다. 쑤이펀허에서 10시간 넘게 걸렸다.
 
21세기 그곳 중·러 국경은 ‘프리모리에 1호 구간’이다. 물류협력 통로다. 중국은 고속철 왕국이다. 쑤이펀허~하얼빈 간은 3시간쯤 걸린다. 쑤이펀허 역은 거대하다. 러시아 쪽 건물은 초라하다. 그곳에 함께 간 장뤼핑(다롄 외국어대 방문교수)의 감상은 실감난다. “한 세기 전 러시아 동청철도 관리들이 중국인을 깔보며 철도 관리법을 가르쳤는데 이젠 성쇠(盛衰)가 역전됐다.”
 
뤼순 203고지에서 이토(左), 하얼빈 집무실의 코코프체프(右)

뤼순 203고지에서 이토(左), 하얼빈 집무실의 코코프체프(右)

1908년 들어 만주 정세는 미묘해졌다. 코코프체프는 러시아의 간판 세르게이 위테(재무대신, 총리 역임) 아래서 성장했다. 동청철도는 위테의 작품. 하지만 코코프체프는 달랐다. 그 무렵 러시아의 시선은 복잡했다. 군부는 러일전쟁 재발을 경계했다. 이즈볼스키 외무대신은 일본과의 협력 강화 쪽이다. 재무대신 코코프체프는 동청철도를 팔 생각이었다. 그것은 “경영 적자와 군사·지정학적 가치 하락 때문”( 『코코프체프 회고록』)이다. 시베리아 철로의 마지막 노선(아무르 구간) 건설 결정(1908년 6월)도 그런 결심을 다졌다.
 
동청철도 매각 소문은 파란을 예고했다. 미국의 철도왕이 뛰어들었다. 에드워드 해리먼(Edward Harriman)-. 그는 3년 전 만철의 공동경영을 제안했다. 최종 단계에서 일본은 거절했다. 해리먼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하지만 다음해(1909년 9월) 그는 숨졌다. 이번엔 미국 정부 차원에서 움직였다. 만주 문호개방은 미국의 숙원이다. 중국은 미국과 결속하려 했다.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적 제휴 가능성이 등장했다. 거기엔 일본의 만주 독점에 대한 불안·거부감이 깔렸다. 그것은 일본엔 악몽이다. 만주 공략구도가 헝클어진다. 한국 강제병합 음모도 흔들린다.
 
안중근의 옥중 유고 『동양평화론』과 유묵 ’欲保東洋先改政界時過失機追悔何及“(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급: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을 바꾸어야, 때가 지나고 기회 놓치고 후회한들 무엇하랴.)

안중근의 옥중 유고 『동양평화론』과 유묵 ’欲保東洋先改政界時過失機追悔何及“(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급: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을 바꾸어야, 때가 지나고 기회 놓치고 후회한들 무엇하랴.)

안중근은 국제정세 감각을 다듬어왔다. 신문(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잡지(대한자강회월보)·책(태서신사)을 정독했다. 러일전쟁으로 그의 시각은 재정립됐다. 처음엔 일본의 승리에 환호했다. “통쾌하다, 장하도다. 수백 년 악을 행하던 백인종의 선봉(러시아)을 한 번 북소리로 크게 부수었다(一鼓大破)···슬프다. 일본이 크게 승리한 뒤에 하루아침에 달라져 러시아보다 만행이 더욱 심한 나라가 되었다.” (안중근 『동양평화론』) 일본의 돌변은 배신이다. 한복판에 이토가 있다. 이토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원훈(元勳)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권을 능멸한 원흉(元兇)이다. 이토의 교활한 책략은 동양평화 교란이다.
 
 
이토의 만주 방문에 기획자가 있다. 고토 신페이(後藤新平·52세)-. 고토는 만철의 초대 총재(1906.1~08.7)다. 그는 의사 출신. 만철은 일본의 만주 공략 첨병이다. 그의 경영철학 ‘문장적무비(文裝的武備)’는 교묘하다. “문(교육)으로 치장해 무(만주공략)를 준비한다”다. 1907년 이토는 고토를 불렀다. 히로시마 아래 이쓰쿠시마(嚴島)에서다. 고토는 지정학적 책략을 설파했다. ‘신구(新舊)대륙대치(對峙)론’이다. “사흘간 천하경륜(天下經綸)을 나눴다. 신구대륙대치론은 에밀 샬크(Emil Schalk)의 ‘자연과 국가’에 뿌리를 뒀다. 샬크의 이론은 구대륙의 프랑스와 독일이 적대하면 유럽은 쇠퇴하고 신대륙 미국에 압도당한다는 것이다.” (『정전(正傳) 고토 신페이』 藤原서점)
 
책사(策士) 고토는 도발적이다. 그것은 섬나라 일본을 대륙국가로 재편하는 책략. 이를 위해선 러시아와의 결속이 필요하다는 것. 이토는 원래 친(親)러시아파다. 고토를 알면 이토의 만주행 윤곽이 드러난다.
 
1909년 8월 이토는 고토(체신대신)를 다시 불렀다. 이토는 두 달 전 조선통감을 그만뒀다. 그해 4월에 한국 병합에 찬성했다. 두 사람은 만주 정세를 의논했다. 고토는 코코프체프와의 회동을 건의했다. 이토의 노회함이 발동했다. 9월말 하얼빈 회동(10월말 예정)이 잡혔다. 『코코프체프 회고록』은 다르다. "나의 극동 여정은 차르(니콜라이 2세 황제)의 지시다. 이토와의 일정은 시베리아 열차 안에서 급하게 결정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토의 복안은 만주에서의 영향력 확대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 강제 병합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의 만주 철도 야망을 꺾어야 한다. 석화정 박사(전 공사교수)의 해석은 탁월하다. "이토의 하얼빈행은 미국과 러시아의 제휴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일본과 러시아의 앙탕트(entente·우호협력) 확보가 주목적이었다.” (『러·일 협약과 일본의 한국 병합』)
 
안중근의 ‘하얼빈 열하루’가 펼쳐진다. 도착 다음날인 23일 그는 거사를 치밀하게 재설계했다. 조도선(30세)이 합류했다. 24일 제2의 장소를 물색했다. 하얼빈의 직전 간이역(80㎞ 아래쪽)인 채가구(蔡家溝)다. 하지만 현지 답사 결과 분산·결행을 선택했다. 채가구 쪽은 우덕순·조도선이 맡기로 했다. 하얼빈은 안중근 담당이다. 그는 25일 오후 하얼빈으로 돌아갔다.
 
옛 뤼순 감옥과 박보균 대기자. [중앙포토]

옛 뤼순 감옥과 박보균 대기자. [중앙포토]

25일 오후 11시 창춘(長春·장춘). 만철의 종착역이다. 러시아의 동청열차가 이토를 태웠다. 레일 폭이 달라진다. 만철은 표준궤(1435㎜), 동청철도는 광궤(廣軌·1520㎜)다. 특별열차는 채가구 역을 통과(2분 정차)했다. 우덕순·조도선은 갇혀서 나설 수 없었다.
 
26일 오전 9시 하얼빈 역. 이토의 열차가 진입했다. 안중근은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코코프체프가 이토의 열차에 올라갔다. 둘은 환담 뒤 객차 밖으로 나왔다. 의장대 사열이다. 9시30분 이토가 안중근의 시선에 걸렸다. "누런 얼굴, 백발의 일개 조그마한 늙은이(一個黃面白髮之小翁).”( 『안응칠 역사』) 안중근은 결행했다. 세 발의 총탄은 정확했다. 그는 ‘코레야 우라(Корея Ура·한국 만세)’를 외쳤다. 2014년 하얼빈 역 건물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생겼다. 1번 플랫폼(의거 장소) 천장에 안내판, 바닥에 표식이 있었다. 역 건물 증축 공사(2017년)로 철거됐다. 올 상반기 기념관이 재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안중근 의거(義擧)는 이토의 ‘러·일 앙당테’ 구도를 깼다. 이어령 교수의 해석은 신선한 파격이다. "민족적 위대함을 넘은 거사다. 고토 신페이의 지정학적 책략이 담겼던 이토의 야욕, 그것을 저지한 해양세력의 영웅이 안중근이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으로 옮겨졌다. 이제부터 옥중투쟁이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 것보다 동북아 평화 정신을 일깨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법정투쟁에서 논리를 개진하고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고 했다.
 
안중근의 지정학적 접근은 동서양의 대립이다. 전략적 해법은 한·중·일의 결속. 그것이 동북아 안정의 토대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의 동양 침략)의 화환(禍患)은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하여 극력 방어하는 것이 제일 상책이다.”(『동양평화론』) 실천방안은 흥미롭다. "뤼순을 청나라에 돌려주고···뤼순에 은행을 설립해 (일·한·청) 공유 화폐 발행···열강에 대비하려면 무장해야···”(『안중근 청취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안중근의 방략은 참신하고 선진적이며, 공용화폐 통용은 유럽연합보다 반세기 앞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뤼순의 옛 감옥은 남아 있다. 안중근이 갇히고 순국(사형선고)했던 곳이다. 그곳에 가면 비감(悲感)에 젖는다. 경건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만주
현재 동북3성,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관동주 조차(租借)
러일전쟁(1904~05) 승리(포츠머스조약)로 일본은 삼국간섭으로 잃은 이권(뤼순·다롄 조차)을 탈환, 관동주(도독부) 설치

 
하얼빈·쑤이펀허·다롄·오이소
글·사진=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