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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연금 사회주의'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기자
김종윤 사진 김종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국민연금기금이 외국인 주주 및 일부 소액주주 등과 힘을 합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내 등기이사 연임을 저지했습니다.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중 핵심은 기금운용의 독립성 여부입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금 운용 수익성 극대화’라는 명분에서 출발합니다. 639조원이 쌓인 국민연금기금은 정권의 것이 아닙니다. 가입자인 국민이 연금으로 돌려받을 노후 최후의 보루이죠.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이 기금을 잘 운용해 수익성을 높여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항공 지분 11.5%를 가진 국민연금은 조 회장이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대한항공의 가치가 훼손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반대한 까닭입니다.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 모습. 중앙포토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 모습. 중앙포토

이 논리, 겉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고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독일 연기금은 폴크스바겐이 디젤엔진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 경영진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연기금은 독일 정부에도 압박을 가해 결국 폴크스바겐 회장 등은 물러났습니다.  
 
이렇게 연기금이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는 전제가 충족돼야 합니다. 기금 운용의 독립성입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주주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해도 의사 결정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논란만 커질 뿐입니다.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적은 반면 한국에서는 ‘연금 사회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목소리가 큰 건 바로 독립성의 차이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은 총 20명인데 당연직 6명(보건복지부 장관, 기획재정부 1차관,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고용노동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모두 정부 관료입니다.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입니다. 나머지 14명의 민간위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촉합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주권 행사 및 책임투자 관련 사항을 검토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개 분과 14인으로 구성됐는데 모두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촉합니다. 주요국 연기금 중에서 기금운용위가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곳은 한국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수익성 제고보다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한 겁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 109조원을 투자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기업만 KT·포스코·KB금융지주 등 7곳이고,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기업만 290곳이 넘습니다. 정권이 시장의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을 앞세워 특정 기업을 손보려 한다면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시비는 피할 수 없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란이 커질수록 기금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결국 국민의 노후 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건복지부는 기금운용위를 상설화하거나 위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만 이 안도 정부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신용정책을 심의ㆍ의결하는 최고 정책 결정기구입니다. 한때 금통위도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완벽하게 독립성이 보장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의사결정 구조의 균형을 통해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고든 클락 영국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는 이번 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기금운용위 의사 결정구조 안에서 세력 균형이 가장 중요한데 공적 연기금의 경우 정부 쪽 인사, 가입자 대표, 전문가가 각각 3분의 1을 차지하고 전문가 집단이 정부의 압력이나 노동조합의 요구를 판단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기금운용위 개편 때 참고해야 할 말입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돈입니다. 정권이 국민연금을 기업 다스리기 용으로 쓴다면 국민의 노후는 암담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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