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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에 치이고 쇠고기에 쫓기고···위기의 삼겹살

국내에서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고기는 무엇일까. 정답은 돼지고기다. 돼지고기 소비는 1970년 1인당 2.6㎏였지만 경제발전·소득성장 추세에 발맞춰 급증했다. 1990년 11.8㎏, 2017년 24.5㎏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5.2㎏이 됐다. 1970년에 비해 10배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최근 돼지 소비 증가세가 주춤하다. 절대량은 늘고 있지만 '1인1닭', '치느님(치킨+하느님)' 등으로 대표되는 닭에 비하면 인기가 옛날만 못하다. 소고기마저 증가율에서는 돼지고기를 앞질렀다.
삼겹살 [중앙포토]

삼겹살 [중앙포토]

2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돈협회 등에 따르면 2017년 국내 1인당 돼지 소비는 2007년에 비해 28% 늘었다. 같은 기간 닭고기는 55%, 쇠고기는 49%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양고기도 집계하는데 한국의 양고기 소비는 같은 기간 150%나 늘었다. 다른 고기들이 약진하면서 돈육 비중은 54.2%에서 50% 밑으로 내려왔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소는 수입산이 들어와 가격이 내리면서 접근성이 좋아졌고 닭은 '치맥(치킨+맥주)' 영향 등으로 소비가 늘었다"고 말했다.
 
한돈협회는 2030년 돼지고기 1인당 소비량을 35㎏으로 늘리고 한돈 산업도 현재의 20조원에서 30조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이지만 갈 길이 멀다. 과거 10년새 5㎏ 증가에 그친 것을 다음 10년간 10㎏ 늘리는 게 쉬운 목표는 아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왜 돼지 소비 성장세는 둔화한 걸까. 우선 돼지가 주요 고기섭취원이 된 배경부터 들여다봤다. 『대한민국 돼지 산업사』의 저자 김태경 식육 마케터는 “과거에는 소가 없어서 돼지를 먹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돼지를 키운 목적이 먹는 데 있지 않았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김태경 마케터 [페이스북]

김태경 마케터 [페이스북]

"왜 한국인들은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게 됐나."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에게 돼지를 키우라고 장려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은 돼지를 먹어라. 소는 우리가 가져간다'고 한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에 소는 50만두(마리)였다. 그런데 농사짓는 데 쓰이는 소가 30만두였다. 그러니 먹을 소는 20만두뿐이었다. 3년만 잡으면 먹을 소가 바닥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소는 먹지 말고 되도록 돼지를 먹으라고 한 게 시초다. 지금도 1인당 소비량이 돼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은 처음부터 돼지와 닭을 키우는 목적을 먹는 데 두지 않았다. 돼지는 비료를 만들기 위해 키웠다. 냄새도 나는 편이라 자주 도축하기 어려웠다. 닭은 달걀 낳는 게 주목적이었다. 그래서 귀한 손님이 올 때나 닭을 잡는 풍습이 있었다.
 
"돼지 소비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언제부터인가." 
 
"경제가 좋아지고 육류 소비가 더 늘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1970년대 중반 '기업 농장' 붐이 일기 시작했다. 사료를 먹이고 거세도 하면서 돼지고기 냄새가 덜해졌고 그 결과 삼겹살 붐으로 완성됐다. 광화문·무교동 일대 직장인들의 '삼겹살 회식'이 정착된 것도 이때다." 
 
이랬던 돼지 소비가 최근 주춤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소비의 목적이 바뀌었다. 배고팠던 시대엔 삼겹살로 저렴하게 단백질을 섭취하면 족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비싸도 퀄리티 있고 다양한 고기를 섭취하는 '가치소비'시대가 됐다.
 
1인 가구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치킨은 고기를 구울 필요 없이 배달해 먹기만 하면 된다. 반면 외식·회식서 주로 먹는 삼겹살은 고기를 굽는 등 번거로움이 있다. 여기에 회식문화가 바뀌면서 술집형 고기집은 타격을 입었다. 1인 가구를 겨냥해 도입한 한돈·한우 자판기(1대당 1500만원)는 약 1년간 운영 결과 9곳의 매출이 4200만원에 그쳤다(2018년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실 분석).

김태경 마케터는 "고기의 자발적·비자발적 소비를 구분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비자발적 소비란 편의점 도시락 등에 포함돼 먹게 되는 것, 자발적 소비는 정육점에 가서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사 먹는 것을 뜻한다. 비자발적 돼지 소비는 계속 늘지만, 소비자가 직접 선택해 먹는 수요는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자발적 소비의 경우 개인 맞춤형·온라인 친화형으로 가고 있다. 스타트업 '고깃간'은 정육점에 갈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 PC·모바일을 통해 돼지고기(삼겹살·목살·가브리살·항정살)를 주문해 다음날 바로 배송받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통마진을 줄여 시중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고 명절 선물세트 등도 출시해 다양성을 높였다. 

 
돼지고기의 위기는 사실 '국산'의 위기라고 봐야 맞다. 국산 돼지고깃값은 최근 하락세였다. 2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삼겹살 국산 냉장 100g 중품은 1699원으로 전년 평균보다 12.2% 내렸다. 돼지고기 도매시장 평균 가격(축산물품질평가원 기준)은 지난해 대비 20%가량 내렸다.  
 
가격 하락의 주원인은 수입물량 급증이다. 지난해 돼지고기 수입은 사상 최대치인 46만4000t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25.7% 증가한 것이다. 햄·소시지 등 가공제품 수입 원료육 수요가 늘고 이베리코 붐이 일면서 수입이 폭증했다. 도토리를 먹여 키우는 스페인산 흑돼지(하몽의 원료)인 이베리코는 워낙 인기가 좋은 탓에 원산지를 속인 '가짜 이베리코'가 속출했다. 이베리코 열풍 속에 과거 18%였던 수입산 비중은 30%가 됐다. 한돈 자급률은 70%로 내렸다.  
 
수입산이 늘어난 배경에는 미·중 무역분쟁 여파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해 25%의 관세가 매겨진 뒤, 미국 측이 중국으로 갈 예정이던 물량을 한국·일본 등으로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관세는 62%까지 올랐다.  
 
이에 국내 양돈 농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115㎏ 돼지 기준 출하 평균가격은 27만1000원, 양돈농가가 돼지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36만7000원으로 출하할 때마다 8~9만원 적자를 보는 구조다. 최근 농협은 돼지 가격·수급 안정을 위해 300억원의 긴급자금을 투입했다.
   
국산 돼지고기 산업은 어떻게 나가야 할까. 지난해 말 '우리나라 대표브랜드 돈육 개발을 위한 기초조사'에 착수했던 문정훈 교수는 "삼겹살에 편중된 소비문화 때문에 외국 삼겹살을 너무 많이 소비한다"면서 "다양한 부위를 활용한 구이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돼지에서 나오는 육량의 3분의 1은 후지(뒷다리)인데, 국내에선 선호하지 않는 부위다. 문 교수는 "후지를 구이로 할 때 식감을 좋게 하려면 숙성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에는 고도의 숙성기술을 통해 일반고기보다 180~200%의 추가 이윤을 창출하는 전문가도 있다. 
 
현행 등급제 변경도 고려해볼 만하다. 현행 국내 도매시장 돼지 등급 판정은 무게와 돼지 등 지방 두께로 판정된다. 115㎏ 기준으로 등 지방 두께가 얼마나 얇으냐가 핵심이다. 등 지방이 두꺼우면 낮은 등급이나 등급 외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흑돼지 계열은 등에 지방이 많이 낀다. 농가 입장에서는 흑돼지라고 따로 등급을 매겨 주지 않으니 낮은 등급을 받을 흑돼지를 기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3원 교배종(전체의 95%)만 고집하게 되고 품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기가 힘든 구조다. 한국판 이베리코가 나오기도 어렵다.  
 
정부도 한돈의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재래돼지는 이베리코보다도 비싸게 판매되며 1마리당 순익이 4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송태복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과장은 "지리산 흑돼지 등 우리 고유 브랜드를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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