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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철갑탄은 터지지 않는다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주워서 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의혹 덩어리들은 노천 광산처럼 펼쳐져 있었다. 문재인 정권 2기 내각 후보자들의 면면 말이다. 아파트 세 채에서 거둔 시세차익만 20억원이 넘는 국토부 장관 후보자, 철거민의 비극이 스며있는 곳에서 딱지 투자로 16억원의 이익을 본 행안부 장관 후보자, 두 아들의 황제 유학과 병역·취업 특혜 논란에 휩싸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한 해 생활비가 4억6000만원이라는 중기부 장관 후보자. 살짝 벗겨진 그들 삶의 이력에 서민들은 이질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았던 입 건 통일부 장관 후보자한테서 차라리 ‘서민의 풍모’를 느껴야 하나. 이런 꼴 보자고 촛불을 들었나. 정권 지지층에서조차 한숨 소리가 나온다.
 
청문회는 자유한국당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정권의 민낯을 드러내겠다며 별렀다. 5년 전,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구성 때 두 명의 총리 후보와 두 명의 장관 후보가 낙마했던 기억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사흘간의 청문회를 끝낸 지금, 포연은 가득하지만 이렇다 할 전과(戰果)는 보이지 않는다. 성마르게 높인 목소리는 ‘몰랐다’ ‘송구하다’만 반복하는 후보자들의 숙인 머리 위로 공허하게 흩어졌다. 의혹 제기는 이미 보도된 내용의 재탕 수준이었다. 낮엔 ‘부적격자’로 몰아세우던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게 저녁 땐 대놓고 지역 민원을 펼친 모습은 거의 자학 개그였다.
 
압권은 박영선 후보자 청문회였다, 유방암 수술 특혜 의혹을 들먹였다가 ‘전립선암 수술’로 되치기 당했다. ‘여성 모독’ 질타를 받고 ‘동물’로 격하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청문 대상이 장관 후보자였는지, 한국당이었는지 모를 정도다. 싸움닭 같기만 한 후보자도 거슬리지만, 빌미를 제공한 한국당이 더 한심하다. 이런 예민한 문제를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제기했단 말인가. 다른 한국당 의원은 미국 보스턴에 유학 중인 장남의 3년간 해외계좌 및 카드 사용 내역을 제출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웠다. 그런데 그 이유에 헛웃음이 나온다. “보스턴은 대마가 합법화된 곳인데, 지역 한인 매체에 따르면 유학생 일부가 대마 유혹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런 ‘더듬수’가 통하리라고 스스로는 생각했을까. 마오쩌둥은 “조사하지 않으면 발언권도 없다”(没有调查 就没有发言权)고 했다.
 
한국당은 아무래도 지금의 여당에 한 수 배우는 게 좋겠다. 5년 전 청문회의 백미는 국회 교문위에서 나왔다. 아파트 전매금지 위반 추궁에 방송인 출신 문체부장관 후보자는 “실제 살았다”고 태연스레 답했다. 당시 새정치연합 유인태 의원이 곧바로 이를 반박하는 거래 당사자의 육성 녹음을 틀었다. 당황한 후보자는 사과했고, 며칠 뒤 사퇴했다. 의원 보좌관들이 몇 날 며칠 등기소 기록을 뒤지고, 구매자를 설득한 끝에 거둔 개가였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당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한 방’을 날렸다. 후보자가 거액을 빌린 지인과 해외 동반 골프여행을 갔고, 면세점에서 후보자 부인이 고가 명품을 샀다는 결정적 사실을 폭로했다. 후보자 사퇴 후 검찰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세관을 조사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야당 탄압이라는 비난만 들었다.
 
“후보자들 문제는 이미 다 알고 지명했다”며 방어선을 친 청와대다. ‘개인 정보’라는 보호벽을 자기 손으로 치울 후보자들도 아니다. 두꺼운 철갑을 두른 전함이나 장갑차를 뚫는 철갑탄(徹甲彈)은 목표물 표면에서 터지지 않는다. 보통 포탄처럼 요란한 폭발로 운동에너지를 낭비해 버리면 벽을 관통할 수 없다. 관건은 단단한 탄두 재질, 정확한 입사각, 빠른 속도다.  
 
청와대가 여론을 의식해 후보자 중 일부를 떨어뜨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당의 성과로 기록될 것 같지는 않다. 실력도, 치열함도 없이 험한 말, 높은 목청만 앞세워 여당의 20년 집권 꿈을 깰 수 있겠는가.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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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