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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이 "지역경제의 구세주"는 옛말…"분양조차 안돼"

지방이 위기다. 저출산ㆍ고령화ㆍ저성장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나라 전체 인구는 아직 증가세지만 지방에선 자연 사망이 출생을 압도한다. 여기에 젊은이가 돈과 꿈을 찾아 도시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접 4개 시군을 묶어도 서울 한 개 구 인구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지방은 텅 비었다. 이대로 가면 지방 소멸은 불 보듯 뻔하다. 2040년에 지자체의 30%가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공동체 유지가 어려운 한계 마을은 점(點)에서 선(線)으로, 면(面)으로 퍼지고 있다. 반면 국토 면적의 12%인 수도권은 거의 모든 게 조밀하다. 사람, 돈, 의료, 문화시설이 쏠려 있다. 지방 쇠퇴, 수도권 중심의 극점(極點) 사회는 눈앞의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위기의식은 엷다. 정책이 지방 재생의 대계보다 토건 국가형 대형 SOC 투자, 도시 재생에 무게가 가 있다. 그나마 일부 사업엔 정치 논리도 꿈틀거린다. 지방 소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가. 정부나 지자체 정책에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지방 회생의 처방전은 있는 것일까. ‘지방 붕괴…재생의 길을 찾아서’ 시리즈를 통해 지방의 현주소와 대안을 짚어본다.   
18일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1단지 한 전신주에 공장 임대 광고 전단이 가득 붙어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18일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1단지 한 전신주에 공장 임대 광고 전단이 가득 붙어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앞으로 (경북) 구미국가산업5단지에는 탄소섬유 소재를 바탕으로 후방산업, 연관 산업들이 대거 들어올 겁니다. 인구 증가 효과는 12만 명 정도로 보고요. 분양엔 문제가 없습니다.”
 
2017년 10월 13일 한 방송에서 남유진 당시 구미시장이 해평면·산동면 일대에 조성 중인 구미국가산업5단지(이하 5단지)에 대해 내놓은 전망이다. 기업들이 그해 8월 분양 전부터 관심을 보여 새 단지가 지역 경제의 구세주가 될 것이란 기대였다. 10조원의 부가가치와 22만 개의 일자리 창출…. 구미시는 삼성·LG 등 대기업 공장이 최근 10년 새 수도권과 해외로 이전하면서 침체의 늪에 빠지자 5단지를 회생의 돌파구로 삼았다. 1단계 산동면(375만㎡) 구간의 공정률이 99%에 이른 지금 구미시의 장밋빛 청사진은 그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현실은 딴판이었다.
 
지난 14일 5단지 1단계 조성 현장. 확 트인 벌판이 바둑판처럼 정리돼 있었다. 부지 사이 새로 닦은 길로 공사 자재를 실은 중장비들이 오가고 있었다. 건물만 들어서면 산업단지(산단)의 위용을 갖출 터였다. 공동 주택용지나 지원시설, 상가 분양은 순조롭게 끝났다. 문제는 약 25%에 머무는 산업시설 용지 분양률이다. 지금까지 입주가 확정된 기업은 일본계 도레이첨단소재와 국내 중소기업 10여 곳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실패했다. 공사 현장 인근에서 만난 주민 이홍은(67)씨는 “5단지 공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주민들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SK하이닉스를 가져오지 못하면서 이곳이 유령 산업단지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5단지 조성 현장 전경. 구미=김정석기자

14일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5단지 조성 현장 전경. 구미=김정석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같은 경북의 포항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전체 608만여㎡)도 구미와 오십보백보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과 동해면·장기면에 걸친 블루밸리산단은 1단계(294만여㎡) 공사가 한창이다. 14일 이곳에 들러보니 간선도로 포장과 조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1단계 산업용지 분양률은 3%대에 불과하다. 수요 예측 실패란 지적 외에 주변 상가와 택지 등 부동산 개발만 부추겼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급기야 포항시는 지난 8일 블루밸리산단 분양 특별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정연대 포항시 일자리경제국장은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현재 입주를 검토 중인 기업의 조기 유치를 끌어내고 분양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구미·포항의 두 국가산단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방 경제의 한 단면이다. 중앙 정부가 정하는 국가산단(44곳)은 한국 제조업의 메카다. 지방엔 생존의 버팀목이다. 산단 없는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지는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도 최근에 지정된 국가산단은 무더기 미분양이다. 일선 지자체가 정하는 일반산단(664곳)과 농공단지(472곳)도 마찬가지다. 포항신흥일반산단의 분양률은 0%다. 경주 천북2일반산단은 12.2%, 포항 영일만3일반산단은 20.3%밖에 안 된다.
 
올 1월 현재 나라 전체 산단의 미분양 면적은 26.33㎢다. 산단이 완공된 후에도 분양률이 50%를 밑도는 곳도 26개나 된다(산업입지정보센터시스템). 대부분의 산단이 선분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준공 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곳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 경제 활성화의 총아인 산단이 되레 애물단지로 전락한 곳이 적잖다는 얘기다.
 
미분양만이 아니다. 입주 업체의 가동률도 문제다. 대구 대표 산단인 성서산단의 지난해 4분기 가동률은 3분기보다 0.93%포인트 감소한 70.23%를 기록했다. 4분기 연속 하락세다. 1년 새 기업체가 113개, 근로자가 2958명 줄었다. 구미산단 역시 지난해 10월 현재 가동률 64.8%를 기록했다. 50인 미만 중소기업 가동률은 32.4%로 전국 꼴찌다. 산단 불황은 지역 경기를 덮치고 있다. 구미산단 4단지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강준호(34·옥계동)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체 회식이 잦았는데 최근에는 일대 식당들이 모두 한산하다. 주말에도 손님이 없어 일찍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18일 오후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 A공장. 굳게 닫힌 철문은 녹이 슬어 붉은빛을 띠었다. 주차장에는 공장을 철거하고 남은 대형 H빔이 덩그러니 쌓여 있었다. 지난해 여름 공장을 철거한 뒤 7개월이 넘도록 입주기업이 없는 상태다.  
 
A공장에서 200m가량 떨어진 B공장 역시 오래 방치된 상태다. 공장 뒤편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고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공장 벽면에는 ‘공장전문 임대’를 알리는 빛바랜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인근 공장 직원은 “현수막은 작년 봄부터 있었지만 B공장이 문을 닫은 지는 더 오래됐다”고 전했다. 
18일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 한 공장이 폐업해 분양 광고 현수막을 걸어두고 있다. 천안=신진호기자

18일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 한 공장이 폐업해 분양 광고 현수막을 걸어두고 있다. 천안=신진호기자

18일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 한 공장이 폐업해 문을 굳게 걸어잠갔다. 천안=신진호기자

18일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 한 공장이 폐업해 문을 굳게 걸어잠갔다. 천안=신진호기자

 
충남 지역에선 매년 문 닫는 기업과 공장 수가 상승곡선이다. 2016년 19개 공장이 휴업했지만 2017년엔 32곳, 지난해는 35곳으로 늘었다. 폐업도 2017년 9곳에서 지난해 12곳으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충남도내 산업단지 생산 실적은 2017년 4분기 37조3700여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 26조1300여억원으로 줄었다.
 
산단은 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과 더불어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래 국가 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견인차였다. 지방 낙후지역 개발을 통한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했다. 산단에 기업체들이 대거 몰리면서 일자리가 넘쳐났고 도시 인프라와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일선 지자체들이 산단 조성에 안간힘을 쏟는 데는 ‘산단 성공의 추억’도 깔려 있다.  
 
하지만 산단의 방정식이 바뀌었다. 기업 수요에 비해 많은 공급이 이뤄졌다. 실제 산단은 급증 추세다. 2001년 499곳에서 2005년 587곳, 2010년 902곳, 2015년 1127곳으로 늘어났다. 올 1월 현재는 1207곳이다. 14년새 2배 규모가 됐다. 가뜩이나 경기는 나쁘고 수도권 규제완화도 봇물이다. 기존 산단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은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조성에 나서고 있다. 
전국 산업단지 지정 추이. [자료 국토교통부 산업입지정보시스템]

전국 산업단지 지정 추이. [자료 국토교통부 산업입지정보시스템]

 
산단 상당수가 산업용지 분양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이철규 의원(자유한국당, 강원 동해·삼척)은 “2018년 2월 기준 전국에서 개발 중이거나 미분양인 산단 면적은 여의도의 37배에 해당하는 108㎢”라며 “입지 수요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지역 안배와 포퓰리즘 차원에서 산단이 지정돼 공급 과잉과 미분양에 따른 악순환으로 재정 낭비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주문은 적잖다. 산단 추가 조성에 앞서 입지 타당성부터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기존 노후 산단을 고도화해 경제성을 끌어올리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승한 국토연구원 산업입지연구센터장은 ‘산업단지 개발 50년’ 보고서에서 “신규 산단 개발은 종사자를 위한 정주 환경 확충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고, 노후 산업단지 재생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사업의 경제성 확보와 재생 사업의 특성을 반영한 지원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미·포항·천안=김정석·신진호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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