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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난장판 뒤엔…영국 ‘귀족학교’ 이튼 엘리트의 배타주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처리 과정에서 보이는 영국 정치권의 모습은 난장판이다.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가 부결된 데 이어, 탈퇴 시한(29일)을 열흘 앞두고 테레사 메이 총리가 시도한 합의안 재투표도 지난 18일(현지시간) 무산됐다. 이처럼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민심을 대의민주주의의 표상인 의회가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서 23일엔 시민 100만 명이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실, 집권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연정이 하원의 과반이어서 뜻만 모으면 브렉시트 합의안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118표, 2차 투표에서 75표의 당내 반란표가 나왔다. 유럽연구단체(ERG) 소속으로 EU와 완전한 결별을 추구하는 당내 강경세력 80~90명이 주도했다. 일부는 브렉시트를 1년 이상 늦추면 ‘투표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압박했다.
 
일간 가디언은 이튼 칼리지 등 상위권 사립학교를 나오고 보수 정계의 요직을 꿰찬 엘리트 정치인들의 비타협적, 배타적 문화를 브렉시트 혼란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ERG 대표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은 정부 합의안에 조건을 달며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왔다. 채널 4는 모그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화 가치 하락 기간에 700만 파운드(약 105억원)를 벌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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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정치적 도박을 벌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도 이튼 출신이다. 캐머런 정부는 긴축 정책을 폈는데, 저소득층이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브렉시트가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캠페인을 주도한 다니엘 한난 유럽의회 의원과 극우 성향 더글라스 카스웰 당시 영국독립당(UKIP) 의원, 나이절 패라지 전 UKIP 대표 등도 덜위치, 말보로 칼리지 등 상위권 사립학교를 나왔다.
 
외무장관직을 던지고 메이에게 반기를 든 보리스 존슨은 UKIP이 변방에서 주장하던 브렉시트 캠페인을 중앙 무대로 옮겨왔다.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차기 총리 주자 1위인 그가 성공하면 이튼을 나온 20번째 총리가 된다.
 
소수 유명 사립학교는 영국 학벌 구조의 중심이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입학 확률도 높다. 1980년대 이튼을 다닌 한 인사는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디언 칼럼니스트 존 해리스는 “자만과 오만,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무능력, 타인에 대해 선천적 우월감을 지닌 유명 사립학교 출신 정치인들이 이라크전쟁 참전과 금융 위기 같은 모험을 초래했고, 지금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브렉시트만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이 총리도 타협 방안을 만들 기회를 오래전 걷어찼다. 국민투표 실시 며칠 후 노동당 의원들이 집권당 장관을 찾아가 모두 동의할 안을 만들려면 초당적 모임을 꾸리라고 제안했지만 메이는 무시했다.  
 
영국은 세계에서 대의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발전시킨 나라다. 영국 전역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는 1975년 유럽공동체 가입 문제였고, 2011년 의원 투표 시스템을 바꾸는 내용이었다. 당시 의회는 유권자의 의견과 일치하게 행동했다. 노동당 등 야당 역시 정부 합의안엔 반대하지만, 생각은 제각각이다. 의회가 이도 저도 싫다고 하자 데일리 메일은 ‘바보들의 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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