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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치열한 은퇴경기, 日바둑 명인 1년뒤 숨졌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다. [중앙 포토]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다. [중앙 포토]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일본에서는 30여년간 일본 바둑의 일인자였던 혼인보 슈사이(1874~1940년) 9단의 은퇴 대국이 열렸다. 그의 은퇴기 상대는 젊은 기사를 대표하는 기타니 미노루(1909~1975년) 7단. 장장 6개월 동안 진행된 은퇴기에 모든 것을 소진한 혼인보 슈사이는 은퇴기가 끝나고 1년 뒤 예순여섯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년)는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이 바둑의 관전기 집필자로 참여해 명인의 마지막 대국을 옆에서 지켜봤다. 64회에 걸쳐 도쿄 니치니치(현재 마이니치) 신문에 관전기를 연재했고, 훗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명인』을 썼다.
 
1992년 절판돼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명인』( 메리맥)이 최근 새롭게 나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손바닥 소설』 등을 번역한 유숙자 씨가 이번에도 번역을 맡았다. 책에는 바둑을 도와 예로 취급하던 당시 일본 바둑계의 풍경과 명인의 장인 정신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책 표지

책 표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조훈현(66) 9단은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어린 시절 10년 동안 일본에서 바둑을 공부한 그는 "혼인보 슈사이의 은퇴기는 너무 유명해서 바둑을 공부하던 시절 기보를 놓고 보았던 기억이 있다"며 "대국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인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책에 묘사된 장고 대국에 대해선 "은퇴기처럼 6개월 동안은 아니더라도, 옛날에는 온종일 바둑을 두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며 "아침 10시에 바둑을 시작하면 자정을 넘기는 일이 흔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8시쯤 바둑이 끝나면 매우 빨리 끝났다며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한 판을 두는 데 체력 소모가 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물론 그렇다. 한판 두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과거 바둑의 규칙이었고,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살아있는 바둑의 전설 조훈현 9단 [사진 중앙포토]

살아있는 바둑의 전설 조훈현 9단 [사진 중앙포토]

 
조 9단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자신의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1889~1972년) 9단의 특별한 인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나의 스승은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 나와 나이 차가 크게 나서 가와바타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일본에 있던 시절 스승님께 가와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성공한 작가인 데다 바둑도 잘 알아서 바둑계의 유명 인사였다."
 
조 9단은 스승의 자살에도 가와바타의 자살이 깊이 연관돼 있었다고 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70년 애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하자 2년 뒤인 1972년 4월 16일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 9단의 설명에 따르면 친구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세고에 겐사쿠도 3개월 뒤인 1972년 7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스승님은 가와바타가 자살하기 전부터 실의에 빠져 계신 상태였다. 애제자였던 내가 병역 문제 때문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애제자를 잃고 상심이 크신 상태에서 친구까지 자살하자 몸도 불편하셨던 차에 죽음을 결심한 듯하다." 
일본 문학의 정수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 받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사진 중앙포토]

일본 문학의 정수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 받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사진 중앙포토]

 
책에서 명인은 단순히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둑에 쏟아부은 '장인'으로 묘사된다. 명인에게 바둑은 평생 추구해도 닿을 수 없는 예술이자 도의 경지다. 조 9단은 "나 역시 바둑을 도와 예술로 배웠다. 지금도 나는 바둑을 잘 두기 위해선 단순히 공부만 해서는 안 되고, 정신력이나 체력과 기력 등 모든 것이 합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 바둑계에 대해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묻자 "시대에 따라 바둑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요즘에는 너무 바둑을 승부로만 본다. 바둑이 스포츠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는 과거의 바둑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치열한 승부에 대한 그리움은 없는지 궁금했다. 조 9단은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정상에 있을 때의 실력이라면 언제든지 도전해보겠지만, 지금은 단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프로기사에게 두 점에도 승부가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인제 와서 나에게 승부는 지는 게 뻔한 싸움이다. 이벤트 대국은 둘 수 있을지 몰라도 승부사로서의 삶은 끝난 지 오래"라고 덧붙였다.
조훈현 9단. 가장 영광된 순간을 응씨배 우승했을 당시로 꼽았다. [사진 중앙포토].

조훈현 9단. 가장 영광된 순간을 응씨배 우승했을 당시로 꼽았다. [사진 중앙포토].

 
조 9단의 바둑 인생에서 가장 영광된 순간은 제1회 응씨배를 우승했을 때다. 가장 좌절했던 순간은 제자 이창호에게 패해 무관으로 내려왔을 때다. 승부사로서 마지막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어떤 감정이 드는지 궁금했다. 그는 "당시는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오랫동안 잘 버텼던 거 같다. 그만하면 충분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조 9단은 49세 10개월에 제7회 삼성화재배에서 마지막 세계대회 타이틀을 탔다. 이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최고령 타이틀 획득 기록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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