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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한국서 물 부족 못 느낀 이유…석유 180배 되는 양 수입으로

가뭄으로 말라붙은 충남 보령댐. 2017년 5월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가뭄으로 말라붙은 충남 보령댐. 2017년 5월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22일은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이었습니다.
 
유엔은 올해 물의 날 주제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Leaving no one behind)'로 정했습니다. 
인종·지위·종교 등에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안전한 물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물의 날 행사가 열린 대구 엑스코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물의 날 행사가 열린 대구 엑스코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
2019년 유엔 보고서 14쪽에 실린 내용.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자료 유엔]

2019년 유엔 보고서 14쪽에 실린 내용.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자료 유엔]

이날을 맞아 유엔은 '2019년 세계 물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 14페이지에 실린 지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국가별 물 스트레스 수준(Level of Physical Water Stress)’이란 제목이었습니다.
심리적 압박이 아닌, 물리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물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지도에서 한국은 물 스트레스 지수가 25~70%로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됐습니다.
물 스트레스 지수가 70% 이상인 국가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나라들이었습니다.
 
문득 “한국은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이 떠올랐습니다.
논란의 출발은 한국 국민의 연간 1인당 물 사용 가능량이 1000~1700㎥로 물 부족 국가에 해당한다는 데, 그게 유엔이 정한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물 부족 국가 분류는 ‘국제 인구 행동(PAI, 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이란 연구소가 1993년 각국의 물 상황에 따라 진행한 것입니다.
 
PAI 연구소는 연간 물 사용 가능량이 1000㎥ 미만은 물 기근 국가(Water Scarcity), 1000~1700㎥는 물 부족 국가(Water Stress), 1700㎥ 이상은 물 풍요 국가(No Stress)로 분류했습니다.
 
사용 가능한 물은 전체 수자원량(강수량)에서 증발산 같은 손실을 제외한 것을 말하는데, 한국은 2005년 기준으로 1453㎥였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라는 것입니다.
 
유엔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
2015년 3월 극심한 봄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소양댐 상류. [중앙포토]

2015년 3월 극심한 봄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소양댐 상류. [중앙포토]

그런데 이것이 논쟁으로 번진 것은 댐 건설 때문이었고, PAI라는 단체가 유엔과 관련이 있느냐는 것이 논쟁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곧잘 “한국은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 부족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게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습니다.
환경단체는 “유엔에서 그렇게 정한 적이 없는데 정부가 댐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유엔과 상관없는 단체를 유엔과 연결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PAI는 유엔과는 무관한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일 뿐이란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 무렵 “유엔이 지정한”이란 표현도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논쟁은 10년 전 이명박(MB)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MB 정부는 가뭄 해결을 4대강 사업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고, 그때 “한국은 물 부족 국가”라고 주장했습니다. 
4대강 사업 홍보 책자

4대강 사업 홍보 책자

4대강 홍보 책자

4대강 홍보 책자

당시 홍보 책자를 보면 “물 빈곤지수(Water Poverty Index, WPI)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20위이고, 1인당 연간 사용 가능 담수량은 153개국 중 129위”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WPI는 1인당 수자원 양뿐만 아니라 수자원 접근율, 사회경제적 요소, 물 이용량, 환경 등을 고려해서 측정합니다.
한국은 WPI 순위에서 147개국 중 43위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서는 하위권일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나쁜 편이 아닙니다.
 
1인당 수자원 양은 부족하지만, 수자원접근율이나 사회경제적 요소에서 앞서기 때문이죠.
 
4대강 사업을 반대한 환경단체는 “한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닌데, 4대강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호도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물 부족 국가 논쟁이 다시 벌어진 것입니다. 
 
“한국 물 스트레스 지수는 57.6%”  
2017년 5월 가뭄으로 댐 수문이 드러난 충남 보령댐. [중앙포토]

2017년 5월 가뭄으로 댐 수문이 드러난 충남 보령댐. [중앙포토]

그런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2019년 유엔 보고서는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일까요?
 
이 보고서 14쪽의 지도의 출처를 찾아봤습니다.
 
지도의 출처는 지난해 나온 유엔의 다른 보고서 ‘지속가능발전 목표 6 – 2018 물과 위생에 관한 종합 보고서(Sustainable Development Goal 6- Synthesis Report on Water and Sanitation 2018)’의 72쪽 지도였습니다.
두 지도는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2018년 유엔 보고서 지도의 출처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이 지도의 출처는 201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 ‘물 스트레스 수준(Level of Water Stress)’이었습니다.
 
FAO 보고서는 다시 FAO가 운영하는 ‘수자원통계(AQUASTAT)’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수자원통계(AQUASTAT)’ 홈페이지를 뒤진 끝에 관련 자료, 즉 국가별 물 스트레스 지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 스트레스(%) = 100 * (담수 수자원 취수량)/(전체 수자원 – 환경 유지 용수) 입니다.
 
물 스트레스 지수는 쉽게 말해 전체 담수 수자원 중에서 어느 정도 끌어 쓰느냐 하는 비율(%)에다 환경 유지용수 부분을 고려한 것입니다. 
한국은 2005년 기준으로 담수 수자원 중에서 41.7%를 끌어다 쓰는 것으로 분석됐고, 물 스트레스 지수는 57.6%로 산출됐습니다.
 
전체 수자원 중에서 환경유지 용수로 흘려보내야 하는 부분을 제외한 결과, 분모가 작아지면서 물 스트레스 지수는 커진 것입니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 탓
인도 콜카타 지역 빈민촌에서 수돗물을 공급받기 위해 주민들이 물통을 가져다 놓은 모습. [EPA=연합뉴스]

인도 콜카타 지역 빈민촌에서 수돗물을 공급받기 위해 주민들이 물통을 가져다 놓은 모습. [EPA=연합뉴스]

우리나라가 물 스트레스 국가로 지정된 이유는 국토면적이 좁고 인구 밀도가 높으며 강우량이 여름에 집중돼 이용 가능한 수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연간 강수량이 세계 평균인 813㎜보다 많은 1300㎜(1986~2015년 평균)이지만,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 1인당 연간 총강수량은 2546㎥로 세계 평균 1만5044㎥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국토의 70% 정도가 급경사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강수량의 대부분이 여름철에 집중되면서 많은 수자원이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실제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1인당 1500㎥를 밑도는 것입니다.
 
수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물을 끌어 쓰는 비율이 높아졌고, 그래서 물 스트레스 국가가 된 것입니다.
 
결국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한 것은 맞습니다.
유엔이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한 것입니다.
 
하지만 ‘물 스트레스 국가’라는 개념이 ‘물 부족 국가’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어서 유엔이 한국을 물 부족 국가로 분류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개념이고, 분류한 주체도 유엔과 PAI로 다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인 것도 분명하고, 물 부족 국가인 것도 사실입니다.
 
물 수입 때문에 부족함 못 느껴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생수통을 가득 싣고 가고 있다. 22일은 물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물을 절약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세계 물의 날이다. [EPA=연합뉴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생수통을 가득 싣고 가고 있다. 22일은 물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물을 절약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세계 물의 날이다. [EPA=연합뉴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이 물 스트레스 국가이고, 물 부족 국가인데도 평상시 물 부족을 못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앞에서 보았듯이 수자원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취수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부족함을 잘 못 느끼는 것입니다.
다만 물을 많이 끌어 쓰다 보니, 강과 하천 생태계에는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뭄이 들면 정부는 환경유지 용수부터 공급을 줄입니다.
그리고 가뭄이 더 심해지면 농업용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순서로 공급을 줄입니다.
가뭄이 들면 하천이 마르고, 논부터 말라붙게 됩니다.
 
웬만한 가뭄에도 수돗물은 콸콸 잘 나오기 때문에 도시인들은 가뭄이 들어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주 심한 가뭄이 들어 도시 가로수가 말라죽는 경우가 아니면 말입니다.
 
세 번째는 물을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생수처럼 물을 직접 수입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먹는 식량과 식품을 통해서 물을 수입합니다.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물 발자국은 생활용수 사용량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농산물·공산품 등의 생산에 들어가는 물까지 포함한 개념입니다.
예컨대 우유 1L를 생산하는 데는 물이 1000L가 필요하고, 쇠고기 1㎏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물은 1만5500L나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호주 쇠고기 1t을 수입했다고 하면, 국내에서 그만큼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물, 즉 1만5500㎥를 절약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그만큼의 물을 호주에서 수입했다는 얘기도 됩니다.
바로 ‘가상수(假想水·Virtual Water)’의 교역이라는 개념입니다.
 
식량·상품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많은 수자원이 투입되는데, 상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외부에서 수입하면 그만큼의 물을 수입하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중국이나 스리랑카·일본·네덜란드 등에 이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상수 수입국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8월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전북 임실군 운암면 옥정호의 물이 말라가며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뉴스1]

지난해 8월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전북 임실군 운암면 옥정호의 물이 말라가며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뉴스1]

좀 오래된 분석 결과이지만, 지난 2007년 기준으로 한국은 450억㎥의 물을 가상수 형태로 수입했습니다.
이 중 316억㎥는 곡물로, 89억㎥는 축산물 형태로 들여왔습니다.
450억㎥는 국내 댐과 저수지 저수 용량 130억㎥의 3배가 넘습니다.
 
물론 우리의 농산물이나 다른 공산품을 수출할 때도 가상수가 들어있습니다.
이런저런 것을 다 고려해도 우리는 매년 300억㎥의 물을 수입하는 꼴입니다.
소양호 저수량 29억㎥의 10배가 넘는 것입니다.
 
연간 국내 석유 수입량이 10억 배럴, 1억5900만㎥이니까 부피로만 따지면 석유의 180배에 해당하는 물을 수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가상수 때문에 물이 부족한 현실을 못 보고 있는 셈입니다.
가상수 수입은 다른 나라 환경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물 부족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의 물 부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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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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