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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문 닫은 북, 한국 자극해 미 압박 ‘성동격서’ 전략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이기동 부원장은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에 대해 ’미국에 대한 불만을 한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출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이기동 부원장은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에 대해 ’미국에 대한 불만을 한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출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빅딜을 통한 일괄타결과 단계적·점진적 해결로 갈라져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22일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일방 철수를 선언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에 대해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압력을 가하고 나온 셈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경고한 대로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이 예상된다. 3주 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기동(53)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을 만나 하노이 이후의 북·미 대치 국면을 짚어봤다.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를 통보한 북한의 의도가 뭐라고 보나.
“남북대화의 채널이라는 연락사무소의 의미나 성격에 비추어 남측과 대화의 문을 닫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엔 남북 연락사무소를 닫지만, 다음엔 미국과의 대화도 단절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트럼프,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전술
 
한국을 자극해 미국을 압박하는 의도는 없나.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인데, 그런 의도도 있어 보인다.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의 해상 불법 환적을 감시하기 위해 정찰기와 해군함정을 배치하고, 대북 추가제재 법안을 공개하고, 김정은의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운송한 중국 회사를 제재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그에 대한 불만을 한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출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본다.”
 
다른 의도는 없을까.
“한·미를 이간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최선희 부상이 한국은 ‘중재자’ 아니라 ‘플레이어(player)’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여전히 한국은 미국 편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이 적극 나서서 미국을 설득하라는 뜻인가.
“그렇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미국을 움직이라는 메시지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의 다음 조치가 중요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감시초소(GP) 시범철수 등 남북 간 군사적 합의 조치를 되돌리는 수준까지 가면 남북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
 
연락사무소 철수는 남북 합의의 파기 아닌가.
“완전 파기는 아니라는 여지를 남기려고 남측 잔류는 허용한 것이다.”
 
이 상황서 대북 특사 파견이 가능할까.
“어렵다고 본다. 우리가 제안해도 북한이 안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예상했나.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1월 말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의 스탠퍼드대 연설을 듣고 최소한 ‘스몰딜(small deal)’ 정도는 합의가 될 거로 봤다. 구조적으로도 국내정치와 경제에 각각 발목이 잡힌 트럼프와 김정은이 ‘오월동주(吳越同舟)’ 격으로 한배에 탄 형국이기 때문에 판이 깨질 일은 없을 거로 봤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프레임에 갇혀 상황을 낙관한 잘못도 있었던 것 같다.”
 
결렬로 끝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뭐라고 보나.
“첫날 만찬 회동 때부터 김정은은 경제제재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걸 보면서 미국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버티면 더 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번 판이 깨지더라도 다음 판에서는 더 큰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트럼프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전술을 구사했다고 본다.”
 
 
김정은, 최후 통첩성 메시지 나올수도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잠시 산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잠시 산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과 트럼프는 각각 어떤 카드를 갖고 하노이에 갔다고 보나.
“김정은은 초기 조치로 두 가지 옵션을 갖고 갔던 거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폐쇄(셧다운)’와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 카드, 그리고 영변 핵시설 ‘폐기’와 부분적 경제제재 ‘해제’ 카드다. 트럼프는 빅딜(big deal), 스몰딜, 노딜 등 세 가지 옵션을 들고 갔지만, ‘빅딜>노딜>스몰딜’ 순으로 우선순위를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빅딜 옵션이, 미국에는 스몰딜 옵션이 사실상 빠져 있던 셈이다. 상대의 선택지에 없는 것을 서로 요구하다 보니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최선희 부상이 대미 협상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재개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노이에서 받은 공을 다시 미국에 넘기면서 협상 재개를 압박하는 통첩성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통첩성 메시지가 한두 번 더 이어질 수 있다. 그래도 미국이 안 움직이면 김정은이 직접 또는 국무위원회를 통해 행동계획을 밝히는 최후통첩성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경우 어떤 파장이 예상되나.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실험의 동시중단이라는 이른바 ‘쌍중단’은 북·미가 넘어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다. 트럼프가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은 쌍중단이 김정은과의 개인적 신뢰 관계의 마지막 보루라고 봤기 때문이다. 한쪽이 그걸 깰 경우 다른 한쪽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2017년 상황으로 회귀하면서 사실상의 파국 상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향후 상황 전개를 예상한다면?
“북·미 모두 협상의 창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쪽이 먼저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시간은 북한보다 미국 편이다. 북한이 미국에 먼저 다가선다면 미국도 협상을 거부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으려면 미국도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 단기간에 협상이 진전을 이루기는 힘들 것이다. 협상 재개와 중단이 반복되는 지난한 ‘단속(斷續)’ 과정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스몰딜을 여러 번 하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일괄타결하는 빅딜이 사실 좋은 것 아닌가.
“물론이다. 할 수만 있다면 빅딜이 최선이다. 가장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거래비용도 가장 덜 든다. 하지만 신뢰 관계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문제다.”
 
왜 그런가.
“빅딜의 핵심은 북한이 핵을 통한 안보를 포기하고, 대신 미국이 북한에 안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안보를 버리는 쪽이 더 불안하고, 상대를 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제재 해제,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통 큰 합의를 하고,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과 타임플랜(시간표)을 짜는 것이 미국이 말하는 빅딜이다. 동시에 미국은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물질, 핵시설 등 폐기 대상을 횡적으로 늘어놓고 순차적으로 없애는 게 아니라 종적으로 길게 세워놓고 동시에 ‘병렬적으로(in parallel)’ 제거하는 방식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야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체제 안전 보장은 비핵화와 동시에 실현되기 어렵다. 평화협정 체결에는 상당한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빅딜은 안전을 확보하기 전에 핵 억지력부터 내려놓으라는 ‘강도 같은(gangster like)’ 요구라고 북한이 반발하는 이유다. 요컨대 빅딜의 합의문만 믿고 핵부터 포기하기에는 미국을 아직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변 핵 단지 폐기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아가며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미 판 안깨 협상 여지는 남아 있어
 
‘살라미 전술’로 협상을 잘게 쪼개 시간을 끌면서 궁극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술책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우려를 안 할 수는 없지만, 김정은이 그런 꼼수를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섰다고 보진 않는다. 지난 1년간  9차례의 정상회담, 핵 보유와 경제발전이 병행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는 내부 담론의 과감한 통제, 핵보유국을 명시한 헌법 개정 가능성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토록 힘겹게 확보한 핵 무력을 북한이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 일부라도 숨기지 않을까.
“마음만 먹으면 북한이 핵물질을 숨기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숨기면 찾아낼 방법이 없다. 설령 전량 폐기한다 하더라도 핵 기술자들의 노하우와 경험은 그대로 남는다. 완전한 비핵화의 기술적 한계이자 딜레마다. 핵 과학자들이 ‘기술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북핵 문제의 현실적 해법은 뭔가.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절충하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 해법과 미국이 말하는 일괄타결 방식을 묶어 단계를 2단계 정도로 확 줄여 포괄적 로드맵을 만들고, 1단계에서 북한 핵 위협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완전한 일괄타결은 아니지만, 초기 단계에서 높은 수준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고, 북한도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상응 조치를 최대한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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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