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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억 그림 작가…관찰과 묘사는 나의 힘, 다르게 보라

‘호텔 우물의 경관 III’(1984~85), 석판화 에디션, 123.2 x 97.8 cm. Lithograph, Edition of 80, 1 © David Hockney / Tyler Graphics Ltd.,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서울시립미술관]

‘호텔 우물의 경관 III’(1984~85), 석판화 에디션, 123.2 x 97.8 cm. Lithograph, Edition of 80, 1 © David Hockney / Tyler Graphics Ltd.,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서울시립미술관]

“그는 삶을 관찰하고, 목도한 것을 거리낌없이 작품에 표현한다.”
 
주디스 네스빗 영국 테이트 미술관 프로그램 디렉터는 21일 내한 간담회에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82)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화·아크릴·판화·드로잉에 사진과 태블릿PC까지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전방위 회화 작가다. 그의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은 지난해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031만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되며 생존 작가 최고가 작품으로 등극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시작된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데이비드 호크니’(3월 22일~8월 4일)는 그의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둘러보며 음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과 7개 기관 및 개인 소장품 등 총 133점을 볼 수 있다.
 
수영장의 넘실대는 물결에 꽂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중앙포토]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중앙포토]

브래드퍼드 예술학교와 런던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미적 감각을 뽐냈던 호크니에게는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성적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195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는 금기였다. 그런 그에게 60년대 미국 LA는 유토피아였다. 우중충한 영국 날씨와는 전혀 다른,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자유로운 공기를 즐기며 그는 새로운 의욕으로 불타 올랐다. 물의 폐쇄적인 움직임을 그려내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이번 전시에는 ‘더 큰 첨벙’(1967)이 나왔다. 고즈넉한 단층 저택 앞에 마련된 수영장에는 누군가 막 다이빙을 한 듯 흰색 물방울이 솟구치고 있다.  
 
“호크니는 캘리포니아의 햇빛을 표현하는 데는 광택이 풍부하고 얇게 발리는 아크릴이 유화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크릴은 수정을 할수록 표면이 두텁고 탁해지는 특징이 있었죠. 그래서 수정을 가급적 하지 않기 위해 이때부터 사진을 찍은 뒤 그것을 보고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물의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작은 붓을 이용해 섬세하게 표현했지요. 이 작품을 보면 사람의 모습은 없지만 누군가의 존재감이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담긴 것도 호크니 작품의 특징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이승아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호크니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초상화를 그리면서다. 특히 가깝게 지내던 주변인을 모델 삼아 두 사람의 표정과 포즈를 연극적으로 처리한 ‘2인 초상화’ 시리즈는 인물 간의 관계·공간의 깊이·빛의 구현이란 측면에서 감성의 정점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7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 x 304.8 cm.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2019 [서울시립미술관]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7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 x 304.8 cm.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2019 [서울시립미술관]

이번에 나온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71)는 절친이자 60~70년대 런던 패션계를 풍미한 디자이너 부부를 그린 작품이다. 호크니는 근대 미술의 다양한 기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풀어냈는데, 이 작품의 벽면을 보면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이 얼마나 오묘하게 변모했는지 느껴보는 재미가 있다.
 
호크니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파블로 피카소다. 73년 그가 사망한 이후 호크니는 ‘푸른 기타’ 시리즈 등을 통해 존경심을 표현했다. 전시장은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연상시키는 푸른 색으로 꾸며진 가운데, 피카소와 마주보고 테이블에 앉은 누드의 호크니를 비롯한 다양한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다.
 
80년대 이후 작품 스타일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바로 시점에 대한 것이다. 전통 원근법을 뛰어넘어 다양한 시점을 담아낸 입체파의 영향이다. 중국의 두루마리 족자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연극 무대도 제작하면서, 그는 다양한 시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헬렌 리틀 테이트 측 협력 큐레이터는 “3차원 입체를 2차원 평면으로 구현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관심”이라고 말했다.
 
‘움직이는 초점’이 만든 것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 50개 캔버스에 유채, 457.2 x 1220 cm ©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서울시립미술관]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 50개 캔버스에 유채, 457.2 x 1220 cm ©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서울시립미술관]

90년대 들어서는 멀티 캔버스 시리즈를 시작한다. 광활한 풍광을 분할해 여러 개의 캔버스로 나눠 그리는 방식이다. ‘더 큰 그랜드 캐년’(1999)은 높이 2m 폭 7m에 달하는 대작인데, 60개의 캔버스로 이뤄져 있다. 60개의 시점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스케치와 사진 작업을 먼저 하고 하나씩 그려 통일된 작품으로 완성했다.  
 
가장 큰 작품은 고향 요크셔로 돌아가 제작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이다. 가로 12m, 세로 4.6m로 50개의 캔버스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일견 스산해 보이는 겨울 나무가 촘촘한 가지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은 무한의 존재다. 인간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호크니의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시기별로 대표작들이 잘 구성돼 있지만 주요 축을 이루는 포토콜라주 작품이 없는 것은 아쉽다. 주최측은 “개인 소장품이 많고 폴라로이드 작품은 변형 위험이 많아 대여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대신 85년 파리 보그지에 실린 포토콜라주 작품들이 3층 라운지에서 아쉬움을 달래준다. 각각 1시간 남짓 상영되는 관련 영상 3편도 놓치지 마시길 권한다.
 
뇌과학자 정재승(4월 10일 오후 7시)과 시인 박준(5월 7일 오후 7시)의 강연, 각종 미술 수업도 마련돼 있다. 성인 1만 5000원. 월요일 휴관.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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