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호 논설위원
부실한 인사 검증·정책 실험 일관
사회적 약자들 슬픔과 고통만 커져
이들이 성공신화를 일궈내면서 한국에서 교수는 유능한 엘리트 집단으로 떠올랐다.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시절 미국 박사학위를 받고 온 사람들은 국보급 인재였다. 이들이 전수하는 제도와 관행은 금과옥조였고 바로 성과로 연결됐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행정부의 권력이 막강했던 시절이니 이들 교수 출신 관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아이디어는 반짝였고 정책 수단도 많았던 덕분이다. 이들의 성공 신화는 ‘요직에는 교수 등용’이라는 공식을 낳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수의 돌연변이인 ‘폴리페서(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교수)’가 이 땅에 등장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전두환 정부까지도 김만제 같은 서강학파 출신 교수가 발탁돼 실력을 발휘했다. 그때만 해도 교수의 전문지식과 관료의 행정력이 결합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고도화하고 경제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인재와 정보가 민간 기업에 넘치기 시작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국회의 권한이 커지고 행정부의 힘이 약화된 것도 변화였다. 이런 정치 구조에서 상아탑에 있던 교수가 복잡한 현실 문제를 다루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교수를 불러들인다. 이런 시류에 편승하는 교수는 폴리페서로 변신한다. 문재인 캠프에는 1500명이 몰려들었다. 철새 정치인처럼 권력을 좆아다니니 성과는 좋을 리 없다. 오죽했으면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교수 출신의 장하성 정책실장·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을 일컬어 ‘청와대 4인방’이라며 물러나라고 했을까.
이들은 반(反)시장·반기업 정책실험인 ‘소득주도 성장’으로 역대급 고용참사와 분배쇼크를 초래했다. 이들은 지난해 “연말이 되면 일자리가 좋아질 것”이라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소득 하위 40%의 800만 가구는 더 가난해졌고 청년 체감 실업률은 25%에 육박한다. 너무 슬픈 일이다.
이들은 여전히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책임은커녕 오히려 회전문 인사를 통해 승승장구하며 소득주도 성장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나는 무지개를 좇으며 살고 싶은 이상주의자”라던 장하성은 주중 한국대사로 낙점됐다. 자질이 극히 의심스러운 청문회 후보자들을 인사 검증에서 줄줄이 무사 통과시킨 조국 민정수석 역시 건재하다. 폴리페서들은 정책실험을 하다가 청와대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 그들이 떠안긴 고통과 슬픔은 달랠 길이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