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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에어버스에 1위 빼앗긴 2013년 악몽 되풀이?

당시 잇단 사고로 수주 물량 줄어… 세계 40여 개국에서 B737-맥스 8 ‘보이콧’

이스타항공은 보유 중인 B737-맥스 8 항공기 2대의 운항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8일 미국 시애틀 보잉 딜리버리 센터에 주기된 B737-맥스 8. / 사진:이스타항공

 
승객 전원 사망이라는 두 차례 사고가 발생한 미국 보잉사의 신형기 ‘737 맥스8’을 둘러싸고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이하 현지시간) 승객과 승무원 등 157명을 태우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떠나 케냐 수도 나이로비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보잉 여객기가 이륙 6분 만에 추락하면서 탑승자가 모두 숨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숨진 라이언에어 사고 여객기도 같은 기종이다. 두 사고는 모두 항공기가 이륙 직후 급상승과 급강하를 반복하다 추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고 원인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세계 각국이나 항공사가 속속 운항을 중단시키면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보잉 737 맥스 기종의 운항을 중단하거나 영공 통과를 금지한 국가는 40개국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이 지난 3월 11일 운항 중단을 먼저 발표했다. 이후 유럽연합(EU) 항공당국인 유럽항공안전청(EASA)이 보잉 737 맥스8과 맥스9 기종의 회원국 상공 비행을 금지하면서 운항을 중단한 나라가 크게 늘었다. 항공사 하나 이상이 보잉 737 맥스8 기종 운항을 중단한 국가도 다수다.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브라질·캐나다·에티오피아·멕시코·몽골·모로코·러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자국 항공사뿐만 아니라 국내 창이공항으로 운항하는 외국 항공사에도 같은 조치를 내리고 이 기종의 영공 진입까지 차단했다.
 
비용 절감 효과 내세워 인기몰이
세계에서 해당 기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도 결국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3일 오후 사망 사고가 발생한 737 맥스8 기종에 대해 운항 중단을 지시했다. 동종 모델인 737 맥스9 기종의 운항도 함께 중단 조치했다. 캐나다도 같은 날 737 맥스8과 맥스9 기종의 이착륙과 캐나다 영공통과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세계 각국에서 ‘737 맥스 보이콧’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는 와중에도 미국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 때문에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졌고, 세계적인 ‘보잉 공포’가 증폭되자 뒤늦게 운항 중단 대열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737 맥스8 기종 2대를 도입해 운항하던 이스타항공이 3월 13일부터 운항을 잠정 중지하기로 했다. 이튿날에는 대한항공과 티웨이항공 등 올해 이 기종을 도입할 계획인 항공사들이 안전 확보 전까지 운항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올해 국내에는 대한항공 6대, 이스타항공 4대, 티웨이항공 4대 등 보잉 737 맥스8 기종 14대가 들어올 예정이다. 올해 이후에도 737 맥스 8 도입 계획이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50대(확정 40대, 옵션 10대) 구매계약을 했다. 2022년부터 도입할 방침이다. 대한항공도 2015년 50대(확정 30대, 옵션 20대) 구매계약을 맺었다. 티웨이항공도 2021년까지 총 10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에어인천은 도입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잉 737 맥스8은 보잉의 베스트셀러 737 시리즈의 차세대 항공기다. 기존 737 시리즈의 개량형으로 저비용항공사(LCC) 수요에 대응해 내놓은 중·단거리용 기종이다. 2017년 처음 도입한 이후 전 세계에서 371대가 운항하고 있으며, 항공사들로부터 인기가 좋아 이미 5000대 이상의 주문이 밀려 있다. 737 맥스 시리즈 덕분에 보잉사는 경쟁사인 유럽 에어버스를 누르고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인기의 비결은 경제성이다. 보잉 737 맥스8은 비용 절감에 특화된 기종이다. 보잉에 따르면 이 기종의 기존 대비 운항거리가 1000km 더 길고 연료효율성이 14% 높다. 태울 수 있는 승객 수는 210명으로 어지간한 중대형기 수준이다. 연료비는 아끼고, 더 많은 승객을 더 멀리 태울 수 있다.
 
또 항공사들이 기존에 보유한 737 기종과 조종사·정비·부품 호환성이 높아 비용을 감축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가령 민간항공사 조종사가 운항에 투입될 때는 해당 노선 운영 기체에 대한 교육 후 자격증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A350 노선에서는 이 기종의 조종 자격증이 필요한 식이다. 구형 기종을 완전히 새로운 기체로 변경하면 이에 따른 훈련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보잉은 새로운 기종을 제작하는 대신 이미 자격을 가진 조종사 숫자가 많은 737 모델을 개량하는 전략을 짠 것이다. 실제로 보잉은 B737 맥스 판매 과정에서 기존 737 자격증으로 그대로 운영할 수 있고 추가적인 훈련이 필요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B737 맥스8 한 대가 연간 400만 달러(약 44억원)의 비용을 절감해준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부산~싱가포르 신규 노선 차질 예상
이에 일각에서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구형 737 시리즈 하드웨어에 억지로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점이 안전성 논란의 본질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조종사들이 최근 몇달 간 비행 중 보잉 737 맥스 8 기종의 제어 문제를 경험했다고 최소 5차례 이상 보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가운데 2건은 조종특성방향체계(MCAS) 관련 기체 급강하 사례였다. 이번 에티오피아 사고에서도 지난해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사고 때처럼 보잉이 이 기종에 새로 적용한 ‘조종특성상향시스템(MCAS)’의 오작동이 주요 원인이 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사고 여객기 조종사는 이륙 직후 관제탑에 비행 통제에 문제가 있어 회항하기를 원한다는 보고를 했다고 한다. 보잉사는 737 맥스 기종 전반에 대해 조종 제어 소프트웨어를 대폭 수정해 몇 주 내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연이은 사고와 안전에 대한 우려로 해당 기종을 도입하기로 한 국내 항공사들의 장밋빛 기대도 꺾일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국내에선 B737 맥스8 도입으로 단거리 노선 위주로 운항했던 LCC가 중거리까지 사업을 확장해서 대형항공사(FSC)와 견줄 만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또 국내 중·단거리 노선이 포화상태에 이른 점을 감안해 중거리 노선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대형기 운용에는 비용 부담이 큰 만큼 보잉 737-800의 개량형인 ‘737 맥스’ 도입을 통한 중거리 노선 취항을 계획한 것이다.
 
실제로 국토부는 지난 2월 25일 항공교통심의위원회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부산~창이(싱가포르) 노선을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에 배분했다. FSC가 독점했던 인천~싱가포르 노선 이후 16년 만에 생기는 싱가포르행 정기편을 운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산-싱가포르 노선의 운수권을 배분 받은 항공사들은 이 노선에 보잉 737 맥스8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싱가포르 정부가 가장 강력한 운항 중단 조치를 취하고 있는 데다, 이번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대체 항공기 투입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단거리용 항공기로 대체해 부산~싱가포르 노선을 운영할 경우 좌석 판매율이 100%에 육박하더라도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노선 수익성 악화를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B737 맥스8 도입을 앞둔 항공사들로서는 무작정 계약을 무를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기체 결함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항공 등처럼 도입 시점이 임박한 항공기는 위약금의 규모가 훨씬 커진다. 항공사들은 국토부의 명확한 방침이 나오기 전까진 자체적인 결정을 내릴 근거가 없어, 일단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고의 조사 원인이 밝혀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라이언에어의 보잉기 추락 사고의 최종 결론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도입한 항공기를 기약 없이 격납고에 보관해둬야 할 상황에 몰렸다.
 
그렇다고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항공기를 노선에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항공기 안전에 대한 승객들의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걱정을 더 키우는 것은 사고 원인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 분위기다. 에티오피아항공 사고 직후에도 운항 지속 방침을 내세우자 트럼프 대통령과 보잉 간 유착 관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방위산업체인 보잉은 트럼프 대통령과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기체 결함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제 식구 감싸기’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승객들이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 계약을 파기하지도, 기체를 계획대로 노선에 투입하지도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3년에도 기체 결함으로 체면 구겨
보잉이 기체 결함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1월 16일에는 일본 야마구치 우베시에서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던 ANA항공 소속 보잉 787기가 배터리 결함으로 연기가 발생해 비상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일본 국토교통성과 미국 연방항공국(FAA)도 운항을 중단 조치를 내렸다. 당시 안전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전 세계 항공사에 공급된 보잉 787 드림라이너 50대가 운항을 중단했다. 이후 보잉사는 결함 해소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배터리를 재설계한 후에야 미 연방항공국(FAA)으로부터 운항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운항 재개 후에도 카타르를 포함 미국·일본·영국 등지에서 6대가 기체 결함으로 회항하거나 비행이 취소됐고, 영국과 인도에서 각각 한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결국 2013년 11월 보잉은 다른 중대 결함이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국내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추락 사고로 잘 알려진 보잉777기도 비슷한 시기 엔진 결함이 확인된 바 있다. 2013년 2월 러시아 아에로플로트가 운행하던 777기에서 기어박스 내 기어가 분리되면서 운항 도중 엔진이 멈춘 적이 있고, 중국 에어차이나 소속 777기도 5월 초 똑같은 사고를 당했다. 이후 엔진 제작사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성명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 사이 제조한 자사 777기 엔진의 기어박스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다”고 시인했다. 2013년 잇단 악재의 영향 속에 보잉은 2013년 항공기 수주 1위 자리를 에어버스에 넘겨주기도 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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