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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름다운 젊은이를 바라보면 우울해질까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30)
낙산사 해수관음상. [중앙포토]

낙산사 해수관음상. [중앙포토]

 
지난 주말, 양양의 낙산사에 다녀왔다. 거긴 서울보다 꽃이 빨리 폈다.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은 푸른 바다와 보색을 이루어 보기에 즐겁고 매화꽃은 향이 짙어 황홀했다. 한 주 동안 또 생존과업을 수행하느라 얼마나 지쳤던가. 그 지친 마음을 봄 풍경은 적잖이 위로해주었고, 나는 가지마다 움을 틔우는 나무를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연못 안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자라에게서도 비슷한 봄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음악을 들었다. '봄', '봄날', '시작됐나, 봄', '봄바람' 등 가요차트에도 봄 기색이 완연했다. 이런 가요계의 봄 타령이야 해마다 있었던 것이겠지만, 아마도 장범준 이전을 구약, 이후를 신약으로 봐야 할 것이다. 메가 히트를 한 그의 노래 하나 이후로는 3월에 승부를 보기 위해 다들 필사적이 됐다는 느낌이다.
 
투지 충만한 가요계와 달리, 실상에서는 유독 봄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당연히 왜 그럴까 하고 연구를 한 사람들이 있는데, 유력한 설 하나는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한다. ‘세상은 온통 활기찬 데 나는 좋은 일이 없구나’ 하는 탄식에서 비롯된 우울이라는 얘기다. 시의 세계에도 봄마다 끙끙 앓았던 인물이 하나 있다. 마침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김소월이다.
 
몹쓸은 꿈을 깨여 도라눕을 때,
봄이와서 멧나물 도다나올 때,
아름답은 젊은이 압플 지날 때,
니저바렷던드시 저도 모르게,
얼결에 생각나는 「깁고 깁픈 언약」
-김소월, 「깁고 깁픈 언약」 전문
 
몹쓸 꿈을 꾸고 깼을 때, 아름다운 젊은 앞을 지나갈 때, 그럴 때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약속이 시인에게는 있었나 보다. 근데 하필이면 계절이 봄이다. 바깥은 온통 생명력이 충만하여 산에는 나물 돋아나는데 마음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그 모순이 시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대체 누구와 무슨 언약을 맺었던 것일까.
 
시인 김소월. [중앙포토]

시인 김소월. [중앙포토]

 
소월은 1902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의 손에 길러졌다. 오산학교 중학부 시절, 3살 연상의 여인 오순과 사랑에 빠졌으나 1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다른 여인과 결혼해야 했다. 이후 오순도 다른 이와 혼인했으나 하필이면 남편이 개차반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22세에 세상을 떠났다.
 
소월과 오순 사이에, 꽃피는 봄이면 유독 사무치는 깊고 깊은 언약이 하나쯤 있었다 해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 한편 다른 시에서도 소월은 계속 봄을 시감 삼는다. 왜, 그의 데뷔작 역시 「낭인의 봄」이라는 제목 아니던가.
 
산길가의 외론 주막,
에이그 쓸쓸한데,
먼저 든 짐장사의
곤(困)한 말 한 소리여.
지는 해 그림지니,
오늘은 어데까지,
어둔 뒤 아무데나,
가다가 묵을레라.
풀숲에 물김 뜨고,
달빛에 새 노래는,
고운 밤 夜伴에도
내 사람 생각이여.
-김소월, 「낭인의 봄」 부분
 
이번에도 배경은 봄인데 화자는 기운이 없다. 어째서 이러한가. 혹자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라고 하고, 혹자는 시인의 감성이란 게 원래 그리 생겨 먹은 것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든, 옛날 김정식(소월의 본명)이란 사람이 봄마다 태평하지 못한 가슴을 끌어안고 끙끙댔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음의 시는 그 끙끙댐이 한층 더 본격적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뜬 달. [뉴스1]

나뭇가지 사이로 뜬 달. [뉴스1]

 
홀로잠들기가 참말 외롭아요
맘에는 사뭇차도록 그립어와요
이리도무던이
아주 얼골조차 니칠듯해요.
발서 해가지고 어둡는대요.
이곳은 仁川에 濟物浦(제물포), 이름난곳,
부슬부슬 오는비에밤이더듸고
바닷바람이 칩기만합니다.
다만고요히 누어드르면
다만고요히 누어드르면
하이얏케 밀어드는 봄밀물이
눈앞플 가루막구 흘늑길뿐인야요.
-김소월, 「밤」 전문
 
시가 온통 외롭고, 그립고, 춥고, 흐느낀다. 그 황폐한 마음이 김소월이란 사람일 것이다. 훗날 저승 가서 그를 만나는 일이 생긴다면 꼭 한 번 안아 주리라. 그를 가엾게 여긴 탓일지, 덕분에 좋은 텍스트 읽었다는 감사의 인사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렇게 하리라.
 
소월이 살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 나라는 우리 것이고 비록 우리가 시인의 감성을 지니지는 않았겠으나, 삶은 여전히 녹록지가 않다. 바깥에 꽃이 펴도 살림은 통 필 기색이 없고 기온은 오르지만 소득은 오르지 않고 나들이를 가자니 미세먼지가 걱정이고… 게다가 한층 더 우울한 건, 앞으로 그런 것들이 딱히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 박탈감 짙어지는 이 봄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여러모로 궁리해봤지만 할 수 있는 건 역시 조용한 파이팅 정도가 아닐까 싶다. 입맛이 쓴 일은 계속 생기겠지만, 그럴 땐 카페마다 열심히 팔고 있는 딸기 음료라도 하나 사서, 바깥을 걸으며,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며, 봄 노래를 들으며,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다짐하는 일, 그런 마음을 수첩 어딘가에 조용히 메모해 두는, 그런 일 말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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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