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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구글의 한글 서체 만든 이 사람, "디지털에 맞는 서체는 따로 있다"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 같은 해외 기업이 한국에 진출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요? 자신의 서비스를 한글로 번역할 뿐 아니라 가독성이 좋은 한국어 서체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친숙하게 느낄 자신만의 폰트를 찾고, 각종 기기와 OS가 이 서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애플과 구글이 한글 서체 제작 업체로 선택한 곳이 같은 회사라는 사실요. 바로 여러분 귀에도 익은 ‘산돌’입니다. 1984년 설립된 산돌은 한국 최초의 '폰트' 회사입니다. 

 
지식플랫폼 폴인(fol:in)가 발행한 스토리북 <브랜드위클리> 열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산돌입니다. 1996년에 산돌에 입사해 10인 규모의 작은 회사일 때부터 산돌의 성장을 지켜봐 온 권경석 이사가 소셜 브랜드 살롱 비마이비(Be my B)에 참석해 산돌의 한글에 대한 철학을 들려줬습니다. 

 
폰트 회사 산돌의 디자인 컨설턴트인 권경석 이사 [사진 산돌]

폰트 회사 산돌의 디자인 컨설턴트인 권경석 이사 [사진 산돌]

 
수석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디자인 컨설턴트를 맡은 권 이사는 현대카드, 삼성, LG 등 국내 굵직한 기업의 브랜드 전용 한글 서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네이버 나눔고딕체, 애플 디바이스의 한글 서체를 개발하고 기획했습니다. 서체 디자인이 큰 존재감이 없던 시절부터 꾸준히 한글 폰트의 본질을 고민해온 권 이사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한글 이야기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디자이너라면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다른 점이 뭔가?” 하는 거죠. 
 
저도 그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어요. 산돌만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 고민의 첫걸음을 어떻게 떼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글 글꼴 1세대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최정호 선생님의 명조체를 모방해봤어요.  
 
최정호 선생의 서체(위)와 모방하여 만든 디지털 서체(아래) [자료 산돌]

최정호 선생의 서체(위)와 모방하여 만든 디지털 서체(아래) [자료 산돌]

 
위에 보이시겠지만, 두 가지 디자인의 글자 모양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디지털에서 써보면 사용성이 떨어집니다. 모양은 똑같은데 사용성이 떨어진다니 이상하죠? 최정호 선생의 서체는 종이 위에 인쇄하기 위해 고안된 서체인데, 이를 디지털에 사용하니 아날로그와는 사용성이 달라진 겁니다. 처음 설계 단계부터 디지털에 맞게 공간 설계를 해야 하는데, 서체를 모방해서 그대로 디지털에서 쓰면 사용성이 떨어지는 거죠.
 
도대체 디지털 한글 폰트는 왜 이렇게 사용성이 떨어질까, 한글 폰트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고민하다 제가 내린 답은 4가지입니다.
 
1. 한글 창제 원리와 맞지 않는 사용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한글 폰트가 한글 창제 원리와 다르게 쓰인다는 겁니다. 훈민정음이라는 말을 풀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예요. 한글의 타깃이 '백성'임을 이름에서부터 밝히고 있죠. 또 서문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편하게 쓰고자 함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요즘 이야기로 하면 유저 경험을 설계한 거예요. (웃음) 이렇게 접근하면 한글은 정말 멋진 디자인물입니다.  
 
더 재밌는 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자'는 한글의 콘셉트입니다. 이 부분을 주목해주세요. 세상의 모든 '말'이 아니라 '소리'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세종이 기생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 노랫소리를 어떻게 한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고 해요. 시냇물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멋지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세종도 그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한글 창제 과정을 담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만들면 뭐하나, 백성들이 써야지."라는 대사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한자가 세상의 중심이었잖아요. 한자를 배워야 출세할 수 있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누가 한글을 쓰겠습니까.
 
이때 세종이 생각해낸 게 ‘한글의 당위성’입니다. 사람들이 한글을 쓸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만드는 거예요. 한자는 나의 조상, 조상의 조상이 쓴 언어입니다. 한자를 쓰는 이유랄 게 딱히 없고, 할아버지가 썼으니 나도 쓰는 거예요. 유전적 당위성을 가지고 쓰는 거죠. 그런데 그 유전적 당위성을 뛰어넘는 상위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을 만든 이치’예요.  
 
세상이 만들어진 이치를 디자인에 담으면 사람들이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우주의 이치를 한글에 넣습니다. 천∙지∙인 사상, 사람의 발성 기관의 모양, 음양이론 등입니다. 예를 들어, 흔히 음양의 기운을 받아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하잖아요. 초기 한글을 보면 획이 아니라 점을 쓰는데요, 이점이 태양을 뜻합니다. 해가 오른쪽에서 떠오르니 ‘ㅏ’를 만듭니다. 해가 떠오르는 모양과 비슷하죠. 그래서 밝은 기운이 듭니다. '노랗다', '파랗다'는 느낌을 줘요.
세상의 이치가 담긴 한글의 창제 과정. [자료 산돌]

세상의 이치가 담긴 한글의 창제 과정. [자료 산돌]

 
해가 중천에 뜬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ㅗ’와 비슷합니다. 밑받침은 땅이고, 그 위에 해가 떠 있죠. '솟다', '높다'라는 기운을 줍니다. 그다음엔 해가 왼쪽으로 떨어지는 모습, 즉 해가 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ㅓ'가 됩니다. 해가 떨어지니 어둡다, 침침하다는 느낌을 주죠. 파랗다와 퍼렇다를 비교하면 느낌이 확 올 겁니다. 퍼렇다는 좀 더 침침하고, 파랗다는 밝은 느낌이에요. 이렇게 말이 주는 느낌을 디자인에 담은 것이 한글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글이 우리가 글을 쓰는 방식, 요즘 말로 타이포그래피 환경을 모르고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실제 한글은 세로쓰기가 원칙입니다. 세로로, 오른쪽부터 쓰죠. 세로로 쓰다 보면 저절로 라인이 생깁니다. 한글의 오른쪽 끝이 예쁘게 맞아떨어져요. 보는 데 불편함이 없어요. 자세히 보면 띄어쓰기도 필요 없습니다. 물음표 같은 특수 기호가 없어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요. 한글의 모양부터 쓰는 방법까지, 전부 다 개발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어요.
한글의 기본 원칙인 세로 쓰기. [자료 산돌]

한글의 기본 원칙인 세로 쓰기. [자료 산돌]

 
다시 돌아와서 정리하면 이런 겁니다. 세종은 뚜렷한 의도와 원칙을 가지고 한글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서양의 가로쓰기를 받아들여서 쓰고 있죠. 세로쓰기로 고안된 문자를 가로쓰기로 쓰니 라인이 망가집니다. 자연히 오리지널 문자보다 안 예쁠 수밖에 없습니다.
 
2. 한자 위주의 인쇄 문화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인쇄술 역사인데요, 인쇄 문화 자체는 일본에서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인쇄 문화는 기본적으로 한자 문화예요. 한글은 받침이 있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굉장히 변화무쌍한 서체입니다. 가로로 쓰기도 하고, 세로로 쓰기도 하죠. 그런데 한문은 어떤가요. 글자마다 간격도 비슷하고, 네모 같은 틀에 맞춰져 있어요. 문제는 이렇게 틀지어진 한문에 맞춰서 쓰다 보니 한글 자간이 뒤죽박죽 섞입니다. 어떨 때는 글자 간격이 넓고, 또 어떨 땐 글자 간격이 좁아요.
한글과 한자는 기본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한자에 맞춰 한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자료 산돌]

한글과 한자는 기본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한자에 맞춰 한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자료 산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는 서체를 만들 때 ‘맘’과 ‘몸’을 가장 먼저 만듭니다. ‘ㅁ’이 한글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면서 동시에 크기를 좌우하는 자음이거든요. 서체의 골격이 된달까요? 반대로 영문을 만들 때는 ‘H'를 제일 먼저 만들어요. 딱 잡아주는 거죠. 나머지는 그 안에서 변형되고요. 그래서 ‘맘’이 가장 기본이 되는데, ‘몸’자는 세로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예요. 맘과 몸의 형태를 잡고 나면 나머지 글자들은 웬만큼 다 커버할 수 있어요. ‘ㅁ’ 자리에 ‘ㅇ’을 넣고, ‘ㅅ’을 넣으면 글자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거죠.
한글의 가장 기본 형태인 'ㅁ'과 'ㅏ', 'ㅗ'로 만들어진 '맘'과 '몸'을 제일 먼저 만든다. [자료 산돌]

한글의 가장 기본 형태인 'ㅁ'과 'ㅏ', 'ㅗ'로 만들어진 '맘'과 '몸'을 제일 먼저 만든다. [자료 산돌]

  
3. 문장 부호와의 부조화
우리가 쓰는 서체는 로마자 위주로 구성된 시스템입니다. 타자를 하다 보면 문장 부호들이 나오잖아요. 작은따옴표(’)도 있고, 큰따옴표(“)도 있고요. 이런 부호 자체들은 처음부터 영문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한글과는 잘 맞지 않아요. 그런데 한글과 안 어울린다고 마음대로 바꿔버리면 영문이랑 안 맞겠죠?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에요.
 
한글과 맞지 않는 부호(위)와 한글에 맞춰 제작된 부호(아래). [자료 산돌]

한글과 맞지 않는 부호(위)와 한글에 맞춰 제작된 부호(아래). [자료 산돌]

 
그나마 다행인 건, 다양한 부호를 우리 식으로 변형해서 잘 쓰고 있다는 점이겠죠. 흔히 우리는 눈웃음으로 쓰는 ‘^^’도 사실은 문장 부호고, 마이너스로 쓰는 ‘-‘도  사실은 영어 단어를 쓸 때 이용하는 하이퍼고요. 한글은 완성된 음절이기 때문에 단어가 떨어질 일이 없어요. 겸사겸사 마이너스로 쓰죠. ‘>’ 이런 부호는 또 어떤가요. 괄호로 쓰지만 사실 부등호거든요.  
 
4. 다양성 부족
한글의 단점이 하나 있다면, 사용자 위주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에 드는 서체를 쓰려고 해도 자간, 굵기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가 없어요. 볼드체, 라이트체 정도로 나뉘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꾸 글자 간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옆으로 늘리고. 이미 디자인된 문자를 이리저리 바꾸니 모양이 점점 안 예뻐지죠.
 
문제가 있다면 해결방안도 있겠죠. 이런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산돌은 그동안 노하우를 쌓아 기술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 노하우를 하나씩 설명해드릴게요.
 
 
※ 지금까지 읽은 ‘산돌’ 이야기는 전체 분량의 30%입니다. 산돌의 더 많은 노하우와 고민, 인사이트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이 브랜드 소셜 살롱 비마이비(Be my B)와 함께 만드는 스토리북 <브랜드 위클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브랜드 위클리> 연재 목차
0. 린브랜드를 찾아서      
1. 죠스푸드(1) 나는 어떻게 ‘경험 디렉터’가 되었나        
2. 죠스푸드(2) 스토리 ‘텔링’이 아니라 ‘두잉’이다      
3. 핑크퐁(1) 유튜브 120억 뷰, 핑크퐁 콘텐츠의 성공 전략      
4. 핑크퐁(2) 핑크퐁은 어떻게 겨울왕국을 이겼나        
5. 사실주의 베이컨(1) 아아, 당신이 알던 그 베이컨은 갔습니다        
6. 사실주의 베이컨(2) 캬바레 사장을 꿈꾸는 베이컨집 주인의 남다른 취향      
7. 최인아(1) 지금의 최인아를 만든 결정적 순간 네 가지      
8. 최인아(2) 29년차 카피라이터가 만든 책방은 무엇이 다른가      
9. 오월의 종 (1) 이 집 빵맛이 변하지 않는 이유    
10. 오월의 종 (2) 어느날 갑자기 내 빵이 완판되기 시작했다  
11. 태극당(1) : 세월의 빵집, 리브랜딩을 시작하다  
12. 태극당(2) :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13. 명인등심 : 촌스럽지만 통하는 꾸준함의 힘  
14. 모범갈빗살 : 세컨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5. 제주맥주(1) : 수제 맥주의 시작점을 꿈꾸다  
16. 제주맥주(2) :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은 왜 팝업스토어와 다른가  
17. 여행에미치다(1) : 여행가고 싶은 마음을 찾아서  
18. 여행에 미치다(2) : 여행으로 먹고산다는 것.    
19. 산돌(1) : 한글은 본래 세로로 쓰기 위한 문자였다
20. 산돌(2) : 좋은 서체란 무엇인가
21. 뱅크샐러드(1) : 자산관리 앱이 '세계관'을 만드는 이유는?
22. 뱅크샐러드(2) : 고객에게 '감정'이 어떤지 묻는 팀
23. 에필로그 : 다시, 린브랜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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