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신분증에 피부색·이마 넓이까지 기록·…한눈에 보는 ‘신분증 변천사’

1947년 보령군 미산면, 북제주군 귀일면에서 발급된 등록표. 1947년 2월 15일부터 거주민 등록제에 의거 15세 이상의 남녀에게 발급한 신분증명서다. 전면에는 남조선의 합법적 국민임을 증명하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지역의 면장의 발급자 서명과 날인이 있고 뒷면에는 발급 일시, 번호, 성명, 주소, 연령, 체중, 신장, 신체특징, 직업, 고용주, 서명과 아래쪽에 우무인(右拇印·오른쪽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는 난이 있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1947년 보령군 미산면, 북제주군 귀일면에서 발급된 등록표. 1947년 2월 15일부터 거주민 등록제에 의거 15세 이상의 남녀에게 발급한 신분증명서다. 전면에는 남조선의 합법적 국민임을 증명하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지역의 면장의 발급자 서명과 날인이 있고 뒷면에는 발급 일시, 번호, 성명, 주소, 연령, 체중, 신장, 신체특징, 직업, 고용주, 서명과 아래쪽에 우무인(右拇印·오른쪽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는 난이 있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신분증의 변천사를 알아볼 수 있는 ‘패(牌)와 증(證)전’이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6층 ㈜코베이옥션 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를 여는 한국애서가클럽(회장 안병인)은 조선시대로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대한민국까지의 각종 신분증(호패류, 근·현대 신분증 등)을 종류·내용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해미읍성 보민출입패. 해미읍성에 출입 자격을 지닌 일반 평민에게 지급되었던 패로 앞뒤에 같은 내용이 음각돼있다.[사진 한국애서가클럽]

해미읍성 보민출입패. 해미읍성에 출입 자격을 지닌 일반 평민에게 지급되었던 패로 앞뒤에 같은 내용이 음각돼있다.[사진 한국애서가클럽]

기사생 참판 송인명 아패(1728년). 송인명은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1731년에 이조판서, 1736년에 우의정, 1740년에 좌의정, 이후 영의정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아호패가 아닌 낙타뼈나 바다코끼리 이빨로 만든 패로 추정되며 측면에 ‘관(官)’ 거주지인 ‘상촌면(馬村面) 원당(元堂)’이라는 글자가 음각 돼있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기사생 참판 송인명 아패(1728년). 송인명은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1731년에 이조판서, 1736년에 우의정, 1740년에 좌의정, 이후 영의정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아호패가 아닌 낙타뼈나 바다코끼리 이빨로 만든 패로 추정되며 측면에 ‘관(官)’ 거주지인 ‘상촌면(馬村面) 원당(元堂)’이라는 글자가 음각 돼있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한국애서가클럽은 “이번 기획전은 회원들의 수집한 호패(戶牌·號牌)류 700여점과 근·현대 신분증류 1000여점을 통해 고·근대의 신분증사에 대한 연구의 기초자료를 마련한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며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신분증을 망라한 종합적인 전시는 ‘패와 증전’이 처음”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의 호패는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을 표시하는 패다. 호구를 명백히 하여 백성의 수를 파악하고 직업과 계급을 분명히 하는 등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왕실과 관직은 물론 일반 백성, 천민 등에 이르기까지 16세 이상의 모든 남자가 소지했으며 재료와 기재내용은 신분에 따라 구분됐다.
1852년 임자식년시 갑과에 장원을 하고 1868년 종2품 예조참판에 임명되었던 김기현의 아패.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1852년 임자식년시 갑과에 장원을 하고 1868년 종2품 예조참판에 임명되었던 김기현의 아패.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조선시대의 신분증인 호패는 태종 13년(1413)에 처음 실시한 후 폐지와 시행을 반복했다. 그러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될 때까지 존속했다. 이는 호구의 파악, 치안유지 및 유민의 방지라는 호패 본연의 기능이 국가 정책상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소장품으로는 읍성 출입자격을 지닌 일반 평민에게 지급되었던 패인 ‘해미읍성 보민출입패(海美城門 普民出入牌)’와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1731년에 이조판서, 1736년에 우의정, 1740년에 좌의정, 그 후로 영의정에 올랐던 ‘송인명의 아패(牙牌)’ 등이 있다. 1852년에 장원급제해서 1868년 종 2품 예조참판에 임명되었던 ‘김기현의 아패’도 볼만하다.
 
1889년 조선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미국인 피어스(Pierce, 피아사(玻阿士), 32세)에게 발급해준 호조. 이는 개항 이후 외국인들에게 발급해주던 일종의 여행증명서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1889년 조선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미국인 피어스(Pierce, 피아사(玻阿士), 32세)에게 발급해준 호조. 이는 개항 이후 외국인들에게 발급해주던 일종의 여행증명서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대한 황국협회(皇國協會) 배지. 황국협회 회원임을 증명하는 신표. ’대한황국협회“라는 글자와 함께 ’충군애국(忠君愛國)“이란 글자를 함께 새겨 놓았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대한 황국협회(皇國協會) 배지. 황국협회 회원임을 증명하는 신표. ’대한황국협회“라는 글자와 함께 ’충군애국(忠君愛國)“이란 글자를 함께 새겨 놓았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대한제국 시기에는 눈여겨볼 소장품으로는 개항 이후 외국인들에게 발급해주던 일종의 여행증명서인 ‘호조(護照)’가 있으며, 황국협회 회원임을 증명하는 신표였던 ‘대한 황국협회(皇國協會) 배지’가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이 완전히 상실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호적령’에 의거 일본식 호적제도가 시행됐고,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도 상당기간 시행되다 1960년 공포된 호적법과 1962년 민법개정으로 공증문서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호적제도로 변화됐다.
1947년 9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횡성군지부위원장이 발급한 신분증.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1947년 9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횡성군지부위원장이 발급한 신분증.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미군정기 대표 소장품으로는 1947년 2월 15일부터 거주민 등록제에 의거 15세 이상의 남녀에게 발급한 신분증명서인 ‘등록표(인민등록표)’와 1947년 9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횡성군지부위원장이 발급한 신분증인 ‘국민회(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회원증’이 있다. 
 
특히 등록표 전면에는 ‘남조선의 합법적 국민임을 증명하다’는 내용 등이 있고, 뒷면에는 발급 일시와 번호, 성명, 주소, 연령, 체중, 신장, 신체특징 등이 있었고, 신체특징에는 피부색이나 이마의 넓이를 비롯하여 신체적 장애 등이 있을 정도로 자세했다.  
1951년 5월 예천경찰서장이 발행한 신분증. 한국동란 시기 북한 괴뢰기관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악질 행위가 없었고 부회뇌동에 의한 단순 가담자로 양민으로 전향, 심사를 통해 양민임을 확인한 증명서.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1951년 5월 예천경찰서장이 발행한 신분증. 한국동란 시기 북한 괴뢰기관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악질 행위가 없었고 부회뇌동에 의한 단순 가담자로 양민으로 전향, 심사를 통해 양민임을 확인한 증명서.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눈여겨 볼 50년대 소장품 중에는 1951년 5월 예천경찰서장이 발행한 신분증인 ‘양민 심사증’이 있다. 이는 6·25 시기 북한 괴뢰기관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악질 행위가 없었고 부회 뇌동에 의한 단순 가담자로 양민으로 전향해 심사를 통해 양민임을 확인한 증명서다. 
 
이 시기엔 한강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증명서 ‘한강도강증’도 있었다. 도강증은 1951년 3월 16일 서울을 재수복 한 후 민간인의 서울출입을 통제하면서 발급됐다. 이밖에도 서양화가에게 발급됐던 문화인 증명서인 ‘문화인증’과 와무부장관이 발급한 ‘외국인거주허가증’도 전시된다. 전시문의는 02)738-1268.
 
1953년 10월 한국민간원조사령부에서 발행한 한강다리를 건널 수 있는 증명서. 도강증은 1951년 3월 16일 서울을 재수복 한 후 민간인의 서울출입을 통제하면서 발급됐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1953년 10월 한국민간원조사령부에서 발행한 한강다리를 건널 수 있는 증명서. 도강증은 1951년 3월 16일 서울을 재수복 한 후 민간인의 서울출입을 통제하면서 발급됐다. [사진 한국애서가클럽]

‘한국애서가클럽’은
지난 1990년 창립되어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애호가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모임이다. 서수집가·학자·독서가·출판업자 등 일상생활에서 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 회원이다. 이 클럽은 회원들간의 독서, 장서 수집정보 교환과 함께 일반인들이 기록문화를 가까이 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문화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