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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되찾는 대신 묵직한 감동...'눈이 부시게'가 남긴 것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혜자(김혜자)의 나레이션으로 끝을 맺었다.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혜자(김혜자)의 나레이션으로 끝을 맺었다. [사진 JTBC]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25세 나이에 갑자기 70대처럼 늙어버린 혜자는 젊음을 되찾지 못했다. 대신 묵직한 감동을 남겼다. 배우 김혜자는 실명 그대로 주인공 혜자 역할을 맡아 눈부신 연기를 보여줬다. 드라마의 마지막 나레이션도 그의 몫이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연 배우 김혜자와 혜자의 가족으로 등장하는 안내상.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연 배우 김혜자와 혜자의 가족으로 등장하는 안내상. [사진 JTBC]

 19일 막내린 JTBC '눈이 부시게'는 청춘의 상처와 노년의 고통을 고루 어루만지는 섬세함, 이를 관통하며 생을 긍정하는 깊은 울림으로 오래 기억될 드라마다. "최근 보기 드문 수작"이자 "여운을 남기며 생각을 곱씹게 하는 빼어난 작품"(드라마평론가 윤석진 교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첫회 3.2%로 시작한 시청률은 마지막회 9.7%(이상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까지 올랐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되찾으려 하지만 
 이 12부작 드라마의 시작은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라는 장치와 함께 타입슬립 판타지, 혹은 청춘 로맨스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25세 혜자(한지민)와 또래들이 겪는 지금 시대 청춘의 좌절, 늙어버린 혜자(김혜자)가 처음 실감하는 노화의 힘겨움과 지금 시대 노인의 처지를 예리하게, 종종 웃음을 더해 그려내는 전개는 그 이상이었다. 
드라마 초반 아나운서 지망생인 25세 혜자와 친구들. [사진 JTBC]

드라마 초반 아나운서 지망생인 25세 혜자와 친구들. [사진 JTBC]

 놀라운 반전은 10회에 등장했다. 스스로 청춘이라 여겨온 혜자가 실은 치매 노인이라는 것.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혜자는 나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갑자기 늙어버린 혜자와도 여전히 절친이다. [사진 JTBC]

친구들은 갑자기 늙어버린 혜자와도 여전히 절친이다. [사진 JTBC]

 방송 전 촬영을 모두 마친 이 사전제작 드라마에서 치매는 극적 효과를 노린 깜짝 장치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전개와 맞물려 주제와 구조에 모두 깊이를 더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매가 주위를 괴롭게 하는 고통스런 질병으로, 치매 노인이 주변부 인물로 그려졌다면 '눈이 부시게'는 주역으로 등장시켜 그분들의 입장과 시선에서 이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며 "치매를 타임슬립 설정으로 바꾼 아이디어 자체가 반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기억이 사라지고 과거 기억이 남는 치매 증상을 젊어지는 것이라고,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다룬 시선이 놀랍다"고 했다.  
현실의 혜자를 찾아온 친구들. 가수 윤복희와 배우 손숙이 깜짝 등장했다. [사진 JTBC]

현실의 혜자를 찾아온 친구들. 가수 윤복희와 배우 손숙이 깜짝 등장했다. [사진 JTBC]

 기억과 시간은 혜자만 아니라 여느 치매 환자에게도 중요한 대목이다. 인제대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는 "치매 환자는 초기에는 며칠이나 몇 주 단위로 시간 순서를,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났는 지 선후관계를 혼동하게 되고, 발병하고 몇 년이 지나 증상이 진행된 후에는 현재와 과거를 착각하게 된다"며 "예를 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집이 아니라며 몇십 년 전 살던 옛날 집으로 가려하거나, 정년퇴직한 지 오래된 노인이 출근하거 가야한다고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치매 노인의 시점에서 전개된 이야기
혜자가 꿈 속에서 다시 젊어져 준하(남주혁)와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 [사진 JTBC]

혜자가 꿈 속에서 다시 젊어져 준하(남주혁)와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 [사진 JTBC]

꿈이 아니라 과거의 현실에서 각별한 관계였던 혜자와 준하. [사진 JTBC]

꿈이 아니라 과거의 현실에서 각별한 관계였던 혜자와 준하. [사진 JTBC]

 그동안 치매를 등장시킨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눈이 부시게’는 치매 환자를 주인공으로 그 시선에서 이야기를 펼친 새로움과 극적 완성도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서사의 주체로, 말 할 권리를 가진 인물로 그려낸 점에서 큰 걸음을 내딛은 드라마"라고 호평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츠하이머에 대해 '나는 아니겠지'라는 두려움에서 대상화하려는 욕구가 있는데 이 드라마는 노인이나 노화를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그 내면으로 들어가 공감할 수 있게 그려냈다"고 말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가 등장한다. 늙어버린 헤자는 이를 되찾으면 다시 젊은 혜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가 등장한다. 늙어버린 헤자는 이를 되찾으면 다시 젊은 혜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사진 JTBC]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는 "드라마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병이 진행되면 환자들은 과거의 기억, 자기의 감정이 가미된 기억 시점과 그 기억을 떠올린 현재 상황의 단서들이 뒤섞여 현재와 과거를 착각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환자의 1인칭 시점을 가미해 잘 그려냈다"고 말했다. 
'눈이 부시게'의 바닷가 장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혜자의 내면을 판타지처럼 그려냈다. [사진 JTBC]

'눈이 부시게'의 바닷가 장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혜자의 내면을 판타지처럼 그려냈다. [사진 JTBC]

 김 교수는 "치매를 앓고 있는 분의 행동에서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그 분에게는 의미가 있는 단서로 작동해서 저럴 수 있구나, 완전한 환상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점을 부각하기에 좋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12부작 사전 제작 드라마 영상미도 호평 
 연출자 김석윤 PD와 이남규·김수진 작가는 2004년 KBS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 2011년 김혜자 주연의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2015년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노동문제를 다룬 JTBC 드라마 '송곳'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극 중에서 혜자는 다른 노인들과 뭉쳐 다른 노인들을 위기에서 구한다. 이들 '노벤져스'의 활약에서 각자의 약점은 장점으로 발휘된다. [사진 JTBC]

극 중에서 혜자는 다른 노인들과 뭉쳐 다른 노인들을 위기에서 구한다. 이들 '노벤져스'의 활약에서 각자의 약점은 장점으로 발휘된다. [사진 JTBC]

 이번 작품은 매회 뭉클함과 웃음을 고루 맛보게 하는 구성, 유려한 영상미도 두드러졌다. 공희정 평론가는 이에 더해 극 중 노인들로 대거 등장한 중견이상 배우들을 주목했다. 그는 "마지막 3회 분량은 요즘 TV에서 자주 볼 순 없어도 평생 연기를 해온 분들의 연기, 삶이 묻어나는 연기가 전해준 메시지가 깊었다"며 "중간중간 찌르는 듯 등장하는 유머 역시 이 드라마를 맛깔나게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사진 JTBC]

 드라마평론가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그전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기능적인 요소로 봤던 알츠하이머를 환자의 시점에서 풀어내며, 모두가 자기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굉장히 섬세게 그려냈다"고 했다. 특히 "정통 극작법에서 반전은 눈속임이 아니라, 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상태로 넘어가면서 깨달음이 얻어지고 삶에 통찰력이 얻어지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반전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드라마"라고 했다. 그는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앞서 시간을 돌린다는 판타지를 너무 강조한게 아닌가 싶었지만, 12회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잘 마무리했다. 여러모로 흠잡을 데가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칠 맛과 깊은 맛 모두 보여준 연기 
 김혜자와 2인 1역으로 호흡을 맞춰 젊은 혜자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한지민은 물론이고, 혜자를 설레게 한 동시에 안타까움에 빠뜨린 역할을 맡은 남주혁 역시 이 드라마로 다시 봤다는 칭찬이 쏟아진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는 20대와 70대의 감성을 오가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는 20대와 70대의 감성을 오가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사진 JTBC]

 무엇보다 배우 김혜자는 그 하나만으로 이 드라마를 볼 충분한 이유가 됐다. 70대 몸에 깃든 20대 감성을 표현해야 하는 이 전례없는 역할을 그는 감칠 맛과 깊은 맛이 모두 배어나는 연기로 소화했다. 그가 오래 전 단골로 출연했던 광고에서 한 말이자, 이 드라마에서도 거듭 응용한 말 그대로다. "그래 이 맛이야."
 이후남·나원정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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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