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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14년형 내린 결혼사기, '어이없는 실수'로 다시 재판

A씨(여)는 요즘 한숨이 잦아졌다. 끝난 줄 알았던 재판이 곧 다시 시작된다. 그녀는 결혼 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2017년 1월, 예전에 알고 지내던 B씨(31)와 우연히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B씨는 오랜만에 만난 A씨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며 청혼했다. 
'부동산 분양 사업을 한다'는 B씨의 부모는 재력을 과시하며 "신혼집도 이미 사 놨다"고 A씨를 반겼다. 양가의 허락을 받은 이들은 그해 5월 결혼하기로 했다.
결혼 준비가 시작되자 B씨의 어머니는 "너희가 어리니 한동안 같이 살면서 생활하자. 결혼자금 등은 내가 맡아서 관리하다가 불려서 분가할 때 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예비 시어머니를 믿고 통장과 신용카드 등을 건넸다. 
하지만 결혼식을 치른 뒤 얼마 뒤 B씨 가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A씨가 맡긴 결혼자금은 물론 A씨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도주했다. 확인 결과 이들이 살던 고급 아파트도 A씨 명의로 빌린 월셋집이었다. 
깨진 결혼 [중앙포토]

깨진 결혼 [중앙포토]

 
B씨 가족은 2017년 말 검찰에 붙잡혔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2011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자산가 행세를 하며 20~30대 여성 5명에게 접근해 결혼을 빌미로 17억97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한 피해 여성은 이들에게 속아 함께 도주하고 그 과정에서 폭행 등 학대까지 당했다. 그런데도 가해자를 두둔하는 '스톡홀름 증후군'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B씨와 어머니, 계부 등 3명을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은 지난해 9월 "혼인을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손해와 막대한 정신적 피해를 줬다"며 B씨의 어머니에게 징역 14년을, B씨와 계부에겐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오는 22일 수원지법에서 처음부터 다시 열린다. '국민참여재판 안내서'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 안내서가 뭐길래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지난 1월 B씨 가족의 결혼 사기 사건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1심부터 재판을 다시 받게 된 것이다. 
현행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은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를 서면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그 절차나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서를 피고인에게 송달하도록 하고 있다. 또 사건이 병합되면 그때마다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묻고 또 안내서를 보내야 한다. 
B씨 등은 결혼 사기 말고도 남성들에게 "재테크를 해주겠다"며 금품을 가로채고 다른 사람의 신분증이나 문서를 위조해 대출 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총 7건의 사건이 얽혀 병합됐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이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국민참여재판 안내문을 보내지 않았다. 피고인 3명에게 총 6건에 대한 안내문이 전달되지 않았다. 
수원법원종합청사 [사진 수원지법]

수원법원종합청사 [사진 수원지법]

 
이들은 결혼 사기 사건 1심에선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국민참여재판 의사확인 절차를 적법하게 거쳤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워낙 여러 사건이 병합돼 국민참여재판 안내문 등이 피고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안내서 전달 안 된 사건, 대법원도 파기환송
비슷한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8월엔 대법원 2부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44)씨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국민참여재판 안내서가 전달되지 않았는데도 1·2심 재판부가 잇따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는 이유였다.
2017년 9월에도 마약류 관리법 위반과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남성에게 1심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시행 의사를 묻지 않고 선고해 항소심 재판부가 서울중앙지법으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접수된 국민참여재판 건수는 모두 5701건. 법조계는 이중 매년 1~2건이 국민참여재판 안내서 미송부로 파기 환송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내서 미송달로 사건이 파기 환송된다고 해도 모두 국민참여재판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항소심 재판 등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요구하던 피고인들도 막상 재판이 다시 열리면 대부분 국민참여재판 의사를 철회한다. B씨 가족도 새로 시작되는 재판을 앞두고 국민참여재판 철회서를 제출했다. 익명을 원한 수원 법조계 관계자는 "선고 결과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판을 다시 한다고 해도 결과가 뒤집히진 않는다"라며 "피고인들도 이를 알면서 시간을 끌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5701건) 중 실제 참여재판으로 이어진 것은 40.3%인 2267건뿐이다.    
 
"국민참여재판, 피고인 권리에 편중"  
다시 열리는 재판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다. 겨우 일상으로 복귀했는데 또다시 법정에서 아픈 상처를 헤집어야 한다. 원정 재판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A씨는 "아직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충격 등으로 온몸이 덜덜 떨린다"며 "1심에서 박씨 등에게 중형이 선고된 이후 '끝났다'는 생각에 올해부터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재판을 다시 한다고 하니 황당하고 억울하다. 만약 감형이라도 받으면 어쩌냐"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참여재판이 '피고인의 권리'에 치중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참여재판 자체가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실시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절차'를 중시하면서 '피해자의 권리'는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참여재판 등 형사재판은 피해자가 소외될 수 밖의 없는 구조라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며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도 중요하지만, 고통받은 피해자를 배려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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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