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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민주당 대변인이 잊은 듯한 '운동의 추억'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1985년 5월 23일, 대학생 73명이 서울 미국 문화원을 급습해 점거했다.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과하라.’ 도심에 반미 구호가 울려 퍼졌다. 전두환 정부는 좌경(左傾)·용공(容共) 세력의 테러로 규정했다. 한국 언론은 정부 주장을 전달하는 수준으로 보도했다. 학생들이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행간’에 암호처럼 담겼다. 언론을 통제하는 정부의 ‘보도지침’이 있던 시절이다. 학생들은 요구 사항을 적어 문화원 창에 붙였는데, ‘내외신 기자회견을 강력히 제안한다’는 문구도 있었다. 그냥 기자회견이 아니고 ‘내외신’ 회견이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외신은 원군이었다. 군부 독재, 광주 학살, 폭력적 진압 등 국내 언론에서는 보기 힘든, 정권의 화를 돋우는 용어들이 외신에 생생히 실렸다. 한국 신문에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사진이 게재된 날, 서방 신문에는 경찰이 학생들을 때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학생운동 조직은 그런 것을 용케도 찾아내 유인물에 실어 교내와 거리에 뿌렸다. 외신 기자는 가두시위에서 보호막이 되기도 했다. 헬멧과 완장에 ‘PRESS’ ‘AP’ ‘REUTER’ 등의 표시가 있는 기자가 보는 데선 백골단(체포 전담 경찰, 영화 ‘1987’에서 강동원과 김태리를 쫓던 이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주춤거렸다. 87년 6월 전두환 정권이 시위 진압에 군을 투입하려 한다고 보도해 전 세계가 주목하도록 한 것도 외신이었다. 한국 언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엄청난 탄압을 무릅쓴 보도(중앙일보 첫 보도, 동아일보 추적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시선 3/21

시선 3/21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 됐다’는 제목의 블룸버그 기사를 반년 만에 꺼내 문제 삼은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그는 85년 서강대 총학생회장으로 서울·연세·고려·성균관대 총학생회장과 미 문화원 점거를 기획했다. 문화원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그 일을 비롯해 여러 집회·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대변인은 ‘그 기자는 국내 언론사에서 근무하다 블룸버그 통신 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문제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논평했다. 인격 모독, 언론 자유 침해, 권력 보호에 동원된 엉터리 애국주의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있다. 80년대 운동 세력이 목숨 걸고 항거했던 것들이다. 게다가 사실 왜곡도 있다. 해당 기자는 블룸버그로 가기 전에 세계 최대 통신사인 AP에서도 수년간 기사를 썼다.

 
며칠 전 한국에서 일하는 한 외국 언론사 지국장을 만났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이 민주당에 논평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낸 뒤였다. 그는 외신 기자들을 가장 경악하게 한 것은 ‘매국’이라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반역 또는 매국이라는 손가락질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안다고 했다. 그는 실명 인용을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외신 소속 기자들이 느끼는 불편함 또는 두려움이 전해져 왔다. 과거 독재 정권은 언론의 비판에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는 매국 행위’라는 죄명을 달았다. 괴물을 상대하다 스스로 괴물이 된 것인가. 민주당 대변인에게 묻는다.

 
이 대변인은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부영 전 의원의 첫 선거 출마 때 비서 역할을 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이 전 의원은 이 대변인 후견인 역할을 했다. 이부영, 그가 누구인가. 동아일보 동료 기자들과 ‘동아투위’를 만들어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다 해직과 투옥을 겪은, 언론 자유의 상징이다. 수감 생활 중에도 교도소 간부를 설득하고 취재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기여하는 모습이 영화 ‘1987’에 자세히 묘사된,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현재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으로 있는데,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한다’가 그곳의 모토다.

 
이 대변인이 기자가 되고자 했을 때 읽었을지도 모르는, 언론 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존 밀턴)에 이렇게 쓰여있다.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주십시오.’ 더는 언론을, 기자를, 자유의 역사를 모독하지 않기 바란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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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