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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대입 비리, 한국과 점점 닮아가는 미국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3월의 워싱턴 거리와 공원을 거닐면서 서리 낀 땅에서 싹트는 봄꽃들, 특히 아직 추운 바람에 바르르 떨고 있는 금빛 개나리를 보고 감탄하던 중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 충청남도에서 봄이 오는 대자연의 기운에 흠뻑 취해 저의 벗인 한국 사람들과 함께 꽃놀이를 하며 기뻐했던 추억입니다.
 
요즘 미국에서 사는 것이 한국에서의 삶처럼 느껴집니다. 단지 향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국인들과 무엇이 문제였는지 논의해 왔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사이의 특별하고 불가사의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부족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미국과 한국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얘기하자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하지만 제가 최근 한국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 데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 대학 입시 비리에 대한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해 미국인들을 경악하게 만든 것 때문입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자녀를 엘리트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바친 혐의로 유명 연예인과 사업가를 포함한 수십 명의 부유층 부모들을 기소했습니다. 자녀의 입학을 위해 대리 응시, 자료 조작 등의 방법이 동원되고 운동부 코치와 입학사정관을 매수했습니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이런 소식에 별로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오로지 실력 위주였던 입시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또 벌어져 가는 신분·부·특권의 격차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오가고 있습니다.
 
십 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처음 방문하고 남긴 말 중 가장 많이 인용된 것은 무역이나 안보가 아닌 교육에 관한 발언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에 찬사를 보냈을 때 한국인들이 얼마나 강하게 반응했는지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평소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교육이 얼마나 망가졌으며 교육 열풍이 교육 병폐로 변질됐는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국인들에게 혼이 났습니다. 결국 저는 오바마 대통령과 다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저처럼 한국의 교육열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문제점과 정서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비율이 높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에 있는 전통 엘리트 학교에만 보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미국에는 훌륭한 대학, 커뮤니티칼리지(미국의 공립 2년제 대학), 직업 훈련 학교들이 있습니다. 또한 모범적인 소기업 등 다양한 직업 세계를 존중하는 미국 문화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 대학 입시의 성과주의가 한국보다 느슨한 면도 있습니다. 미국에는 ‘레거시(legacy) 입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부모가 졸업한 학교에 지원하는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입니다. 미국 대학들은 인종의 다양성 같이 자체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입학 전형을 세울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입학사정관들이 입시 과정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만 초점을 두는 한국의 교육 체제에선 생소한 개념입니다. 한국에서 이화여대의 입학 특혜에 대한 시위가 전국적 촛불혁명으로 번졌던 일이 떠오릅니다.
 
미국 입시 스캔들의 파장이 촛불 시위로 까지 번지진 않겠지만 부와 유명세를 누리는 부모들이 자녀를 엘리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저지른 비윤리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로 체포되는 사태와 이를 용납한 일부 대학 관계자들의 부패로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신분상승이 가능한 기회의 땅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에 큰 흠집이 났습니다. 이는 불평등과 기회에 대한 분노를 키울 것입니다.
 
최근 몇십 년 동안 한국과 다른 선진국처럼 미국도 양극화가 심각해졌습니다. 바로 이런 입시 비리 같은 스캔들로 인해 부유층, 특권층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하면 겪어야 하는 각종 장벽 문제가 정치적 갈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자들은 이런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이전에는 급진적이라고 했을만한 과감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아마존·구글·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IT 거물들의 독점을 완화하는 정책들이 여기 해당합니다. 재벌에 대한 논쟁은 한국에서도 친숙하고 치열합니다. 새로운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 성장한 혁신적 기업들이 성공하면서 독점적 행동, 규제의 포획, 사생활 침해 등의 새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미국에서도 거대 기업에 대한 논쟁이 빠르게 불붙고 있습니다.
 
한·미 두 나라는 평등, 기회, 신분 상승 등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 중 다수는 우리의 제도와 정치가 지나칠 정도로 소수 엘리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크게 도전받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절실히 필요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와,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필요해진 시대입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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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