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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픽셀화, 묵직한 수묵화…비교 감상 극과 극

두 작가는 호기심을 멈춘 적이 없다. 궁금해서 일을 벌이고, 재미있어서 계속했다. 그리고 새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계속 실험을 해 왔다. 그런데, 두 작가가 우리 앞에 펼쳐놓은 세계는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한 사람은 디지털로 추상화를 닮은 화려한 색채의 세계를 열었고, 또 다른 사람은 굵은 먹선으로 흑과 백의 긴장이 팽팽한 화면을 광목천 위에 풀어놓았다. 나이가 들어도 25세의 젊은이와 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들을 ‘수퍼에이저(Superager)’라고 부른다면, 이들이 바로 수퍼에이저가 아닐까. 현재 서울 삼청동에서 나란히 전시를 열고 있는 사진작가 황규태(81)와 수묵화가 김호득(69) 작가 얘기다.
 
두 작가의 개인전이 같은 시기에, 몇 걸음 멀지 않은 장소에서 나란히 열리고 있는 건 순전히 우연이다. 그런데 뜻밖에 함께 만난 두 현장이 흥미진진하다. 누구보다 앞서고 날 선 감각으로, 사진과 수묵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황규태 작가의 ‘픽셀(pixel), 2018, 222x150㎝’.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황규태 작가의 ‘픽셀(pixel), 2018, 222x150㎝’.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 황규태, “호기심은 나의 힘”=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황규태 작가의 개인전 ‘픽셀(pixel)’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가까이 일군 ‘픽셀(pixel)’ 30여점을 소개한다. ‘픽셀’은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화소’를 가리키는 말. 그의 작품들은 컴퓨터에 저장된 이미지를 계속 확대해 얻은 것이다. 자신을 “궁금증 환자”라고 소개하는 황 작가는 “궁금증 때문에 루페(사진 작업용 확대경)를 들여다보다가 여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1997년 TV 모니터를 루페로 우연히 들여다봤다. 픽셀이 보이는데, 그걸 촬영해 확대했더니 상상하지 못한 색과 무늬가 보이더라. 내 눈앞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하지만 그는 “나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선택했을 뿐”이라며 “내 작업에서 원본이 무엇이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발견과 선택만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삼청동에서 나란히 전시를 열고 있는 ‘픽셀’ 연작 앞의 사진작가 황규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삼청동에서 나란히 전시를 열고 있는 ‘픽셀’ 연작 앞의 사진작가 황규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38년 충남 예산 출신인 작가는 평생 ‘실험의 최전방’에 있었다. 동국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부터 카메라를 잡았고, 60년대에 이미 필름을 태우거나,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이중 노출 등을 시도한 것. 80년대부터 디지털 이미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디지털 몽타주, 콜라주, 합성 등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은 ‘pixel bit의 제전’(2018). 가로 6.5m, 세로 2.8m에 이르는 웅장한 대작으로, 겹치고 겹쳐진 정사각형 패턴이 다채로운 색을 뿜어내고 있다.
 
‘pixel 외계에서 온 편지’(2018)는 검은 바탕에 무지갯빛 무늬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기호처럼 보이는 무늬들이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가슴이 뛰었고, 밤새워 일해도 재미있었다.” 그의 설명이다.
 
문혜진 미술평론가는 “황 작가의 신작들은 기하학적 패턴의 반복한 변주에 시각적 리듬이 가미돼 있다”며 “우연적 선택과 의도적 변형이 섞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절반은 사진적이고, 절반은 회화적”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계비평가는 ‘픽셀’ 연작에 “엄격하고 추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황규태와 다양한 조형과 언어를 가지고 유희하는 황규태가 보인다”며 "절대적인 조형은 절대적인 유희와 통한다. 그의 작업은 여러 면을 가진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김호득 작가의 ‘폭포(Waterfall), 2018, 광목에 먹, 168x117㎝’. [학고재 갤러리]

김호득 작가의 ‘폭포(Waterfall), 2018, 광목에 먹, 168x117㎝’. [학고재 갤러리]

◆ 김호득, "몸이 붓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호득 개인전에선 광목에 그린 수묵화와 특수 한지 위에 한 붓으로 그린 드로잉, 대형 설치작품 등 총 20점의 근작을 공개한다.
 
"나는 공기를 그리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붓과 먹, 그리고 광목천과 한지 등으로 바람, 물 등의 흐름을 표현하는 데 매달려왔다. 작가는 "2015년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뒤 경기도 여주 산골로 들어가 작업해왔다”며 "그림을 그릴수록 자꾸 덜고 또 덜게 되더라”고 설명했다. 여백에 더 많은 힘을 쏟게 된다는 얘기다.
 
대형 설치 작품 ‘문득-공간을 그리다’(2019, 혼합재료) 앞의 수묵화가 김호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형 설치 작품 ‘문득-공간을 그리다’(2019, 혼합재료) 앞의 수묵화가 김호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큰 붓으로 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먹이 튀는 순간의 힘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붓과 내 몸이 춤을 추듯이 하나가 되어 움직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전에도 "그림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림이고 그림이 곧 나”라고 즐겨 말해왔다.
 
김 작가의 실험 정신은 물과 빛, 한지로 완성한 설치 작품 ‘문득-공간을 그리다’(2019)에서 더욱 돋보인다. 천장에서부터 줄지어 매달려 있는 스물한 장의 한지와 그 아래 먹물 수조의 수면이 잔잔하게 움직이는 작품이다. 수면과 벽에 드리워진 섬세한 농담(濃淡)의 빛과 그림자가 한 편의 입체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일본의 평론가 치바 시게오는 "김호득의 공간은 생동한다. 그의 화면에서 영상과 화면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형상과 여백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작가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묵법과 필법을 내 조형의 무기로 삼았다”면서 "지필묵(紙筆墨·종이와 붓과 먹)만으로도 아직 할 게 많다. 나는 앞으로도 그저 그림으로 대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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