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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新대권무림] 누군들 변방인 아니었으랴…꿈꾸는 자, 그가 주인이다

지역 맹주편 ② 경기의 바람, 재명처사 
경기의 바람, 재명처사

경기의 바람, 재명처사

<무림서열록> 경기도백 재명처사: 35위
 
자수성가형. 소년공(工) 출신으로 경상도산. 아비를 따라 경기 성남으로 와 폐지를 줍고 시계 공장에서 일함. 돈이 없어 중등·고등 무술을 배우지 못함. 대신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 무술을 익힘. 가난과 싸우며 비정 강호의 쓴맛을 알았다고 함. 소년공 시절 팔을 다쳐 군역 면제. 무공 내력: 없음. 기성 무림에 반발. 판관의 길을 거부하고 인권 변호사를 택함. 익힌 무공이 편협하며 거칠고 실험적. 좌도 방문 소리를 들었으나, 실전엔 터무니없이 강함. 나이 마흔여섯에 성남 무림의 패자가 된 후 한 번도 패하지 않음. 그의 무공을 추종하는 자가 많아지면서, 좌파 신무공의 창시자로 불림. 대표 무공: 청춘남녀현금살포공, 기본소득공, 국토보유세공. 무림 사상 완성한 자가 없다는 전설의 신공임. 무리해 익히다간 주화입마를 입을 수 있음. 공식 무림 서열에선 제외됐지만, 강호 공인 무림 서열은 제35위. 근황: 무림지존좌를 넘보다 불경죄로 무림 검찰의 핍박을 받고 있음.
 
무력 19년 삼월 초이레. 성남 무림 법정 3호실. 초봄치곤 쌀쌀했다. 예의 검은색 피풍의를 걸친 재명처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습관적인 엷은 미소. 그는 무심한 듯, 무표정했다. 재판정까지는 불과 일곱 걸음쯤. 문득 떠오른 단상 하나. ‘조식은 일곱 걸음 만에 시 한 수를 지었다지?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났거늘, 서로 들들 볶기가 어찌 이리 급할까(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칠보시의 마지막 구절이 아마 이랬던가? 거 참, 어찌 이리 내 처지를 빼닮았단 말인가.’
 
재판은 미시(未時) 정각(오후 2시)이었지만 그는 일각(一刻) 전에 도착했다. 세 명의 변호사와 함께였다. 평소와 달리 80석 남짓 법정엔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미시에 시작된 재판은 술시가 돼서야 끝났다. 재명처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진짜 모르나?” “그런 내용 맞나?” 검찰 쪽 증인에겐 직접 심문도 했다.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이가 검찰 편에 서다니. “이건 음모야. 명박 대공이나 그네공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어떻게 무인끼리 비무에 가족을 끌어들인다는 말인가.” 그는 온몸으로 “이런 음모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재명처사, 그는 지금 칠흑의 어둠에 갇혀있다. 일주일에 두 번, 재판정에 선다. 도정(道政)은 잊고 세상과의 접촉면도 극소화했다. 무림 언론과는 아예 단절했다. ‘죄 아닌 죄’가 그를 친친 둘러싸고 있다. 지존 불경죄.
 
‘무공을 익힌 걸 요즘 후회한다. 나뿐 아니라 내 아내, 내 가족까지 암수(暗手)에 시달린다. 내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다. 절망과 좌절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이럴 때 마음을 다져야 한다. 이 거미줄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할 때다. 휴일도 잊었다. 변호사들과는 숨소리까지 맞췄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현 무림지존이 누군가. 남들은 자상해 보이는 외모에 속지만 나는 안다. 그 집요함과 순진한 미소 뒤에 숨은 뱀 같은 잔인함을. 그는 나를 검찰수사공으로 공격했다. 검찰공이 뭔가. 무림지존만 쓸 수 있다는 필살기, 적을 말살하는 데는 극강의 위력을 보이지만, 훗날 꼭 주인을 물어뜯는다는 저주의 마공 아니던가. 전임 명박대공과 그네공주가 검찰공을 쓸 때 그는 얼마나 비난했던가. 자신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 많이 쓰고 있지 않은가. 검찰공은 내 무공으론 맞설 수 없다. 최대한 막되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한신의 굴종으로 견뎌야 한다.
 
다행히 시간은 내 편이다. 3년만 버티면 된다. 살아만 있으면 복수할 수 있다. 공정한 비무요, 일대일 싸움이기만 하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 내겐 성남 무림에서부터 갈고닦은 극강의 성명 절기가 셋이나 있지 않은가.’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무공 셋을 떠올렸다.
 
하나, 청춘남녀현금살포공. 무림은 청춘의 것이다. 성남 무림의 19~24세 청년 모두에게 연 100만냥 어치의 물표를 나눠줬다. 무림 최초의 보편적 청년복지 무공이었다. 좌파 절대 고수들마저 “이런 무공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의심했으나, 결과는 대성공. 지금은 전 무림이 베끼고 있다. 3년 전 석 달마다 25만냥을 받았다는 정예진(27) 사회복지사는 “세금이 나를 위해서도 쓰이는구나 처음 느꼈다” 며 “나도 세금 많이 내고 싶게 만든 정책”이라고 했다. 물표(성남시장 상품권)로 나눠주면 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성남 무림 복지에만 온전히 쓰인다. 이걸 지역화폐 초식이라 부른다. 현금살포공은 지역화폐 초식으로 펼칠 때 위력이 더 극강해진다.
 
지난해엔 새 초식도 개발했다. 생애최초청년국민연금 초식이다. 국민연금 월 최저보험료 9만냥을 18세 청년 모두에게 나눠준다. 약 1만6000여명에 146억냥이 필요하다. 애초 올해 시작했어야 했지만, 전 무림이 ‘퍼주기 초식’에 중독될 것이라며 반대가 많았다. 중앙 무림도 제동을 걸었다. 박능후 복지부장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재명처사는 그러나 포기하거나 물러설 생각이 없다. 현금살포공은 그의 두 번째 성명절기, 기본소득공에 꼭 필요하다.
 
둘, 기본소득공.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재명처사의 무공교두다. 그는 4년 전 재명처사에게 비급 한 권을 건넸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다니엘 라벤토스) 였다. 처음엔 "좌도 방문의 무공 아니냐”며 꺼리던 재명처사지만 비급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이 원장은 "기본소득공은 빈자(貧者)를 위한 무공이다. 모두 국민에게 다달이 몇십만냥씩 주는 것이다. 다른 어떤 무공도 밑바닥 20%의 삶을 끌어올리지 못하지만 기본소득공은 다르다”며 "독하디독한 무공이지만, 꼭 익혀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즈음 스위스가 기본소득공을 놓고 국민투표를 했다. 부결됐지만 파장은 컸다. 중원 무림에 기본소득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재명처사는 이 무공을 2년 전 무림지존 비무에 선보였다. "청소년·노인·장애인부터 월 100만씩 나눠주면 된다. 1년에 15조면 충분하다”며 강호를 설득했지만, 기대만큼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엄청난 황금도 문제지만 더 큰 난관이 있다. 노동이다. 기본소득공은 ‘노동 없는 무림’이 목표다. 이는 ‘무공 없는 무림’과 같다. 영국의 경제대가 케인스는 90여년 전 ‘하루 3시간,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는 시대’를 예언했다. 대략 2030년이 그가 예언한 시기다. 강호 우파고수들은 “기본소득공은 무림인을 한없이 게으르게 한다. 무공 연마도 필요 없어진다”며 반발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남는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쓸 것인가.”
 
셋, 국토보유세공.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는 데는 이만한 무공이 없다. 연 20조 어치의 황금은 쉽게 걷힌다. 부자들을 벌주고 공정 무공, 평등 무림을 만들 수 있다. 아직은 이론으로만 가능해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 재명처사는 “중원 무림의 최대 과제인 부동산 투기 억제와 자산·소득 불평등을 없애는 데 최고의 무공”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상계(商界)와 재벌, 강남 부호들의 반발은 물론 무림의 절대 규칙, 헌법도 넘어서야 한다.
 
재명처사는 다음 지존좌를 차지할 수 있을까. 그는 “오늘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내일을 말하랴”고 했다. 벌써 지존좌 얘기를 꺼내는 건 “섣부르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지만, 특유의 결기와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림인은 투기(鬪氣)로 말한다. 이미 그의 투기는 꺾이고 있었다. 하기야 모든 것이 안갯속이다. 그의 무공은 더이상 참신하지 않다. 우파 무림까지 따라 한다. 강호 서울의 원공(猿公) 원순은 무작위로 1000명의 청년을 골라 50만냥씩 뿌리는 현금살포공까지 내놨다. 비슷한 무공으론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새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무대도 옮겨야 한다. 한반도평화, 적폐청산은 현 무림지존이 독식했다. 다른 전장에서 싸워야 한다. 더 단단해진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더 커진 불평등·불공정, 더 벌어진 미국·중국·일본 무림과의 관계가 새로운 전장이 될 것이다. 차기 지존좌는 이 전장을 지배할 자가 쥐게 될 것이다. 변방 경기 무림에 잔뜩 웅크린 채 재명처사가 보고 있는 곳도 바로 그곳일 것이다. “모두가 한때는 변방이었다. 예수도, 부처도, 아웃사이더였고 비주류였다. 나는 변방이 중심이 될 수 있는 무림을 소망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다음은 서울의 대도, 박원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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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