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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피라미드 정상서 길잃은 아이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앙일보 탐사보도 '교실이데아 2019'와 관련해 "이제는 '교육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을 때 거기에 아무 것도 없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앙일보 탐사보도 '교실이데아 2019'와 관련해 "이제는 '교육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을 때 거기에 아무 것도 없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교육 사다리’가 붕괴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한 연세대 신입생은 “대학을 졸업해도 희망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탐사보도팀이 2019학년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 200명을 설문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난 답변이다.

 

이 같은 부정 입장(‘그저 그렇다’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은 전체 41.5%에 달했다. “대졸 인력이 넘치기 때문에” “대학 입학은 과정일 뿐, 과정이 좋다고 해서 좋은 직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와 함께다. 또 응답자의 72명은 “대학에서도 과외를 받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대학에서조차 사교육에 의존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피 튀기는 경쟁을 뚫고 ‘피라미드 꼭대기’에 섰지만, 여전히 길을 헤매는 ‘2019년 교실’ 속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부 외길을 걸어 좀 더 일찍 SKY에 입학한 이들도 “기대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SKY 3학년 이모(21)씨는 “대학에 가면 진짜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사람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못돼서 계속 스스로 채찍질한다”고 말했다. SKY 2학년 한모(21)씨도 “치열한 입시 경쟁을 거쳐 대학에 왔지만, 그 과정은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었다”고 자조했다.

 

이렇듯 학교는 학생들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주는 공간이 아닌 입시경쟁의 장(場)에 머문 지 오래다. 공부가 아닌 ‘제3의 길’을 걷는 학생들은 낙오자 취급을 당하곤 한다. 일선 교실에서 모범생은 ‘본받을 만한 학생’(사전적 의미)이 아니라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높은, 성적 상승에 대한 열정이 강한 학생’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런 기준은 전인교육을 표방하는 혁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사·전문가들은 “수시와 정시가 누구에게 유리한지, 무엇이 공정한지 따질 때가 아니라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입시 성적으로만 줄 세우는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입학전형·교육제도를 들이민들 결국 제자리걸음이란 얘기다. 사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체감하고 있었다.

 

“막상 대학에 와 보니 ‘진짜 대학이 다가 아니구나’ 싶었어요.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너무 잘하고 있고, 전문대를 다니는 친구들도 자신의 영역에서는 충분히 능력 있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되돌아보게 됐어요.”(SKY 3학년 이씨) 
“사실 조리고(한국조리과학고)에 다니는 제 친구가 부러워요. 저는 입시를 통해 대학에 가고, 대학을 거쳐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는 하고 싶은 걸 이미 정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지름길을 가고 있는 거죠.”(서울 목동의 자사고 2학년 A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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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질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교육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을 때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까요? 무한경쟁·무한투자로 미래를 깎아 가면서까지 아이를 대학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대학에서 그저 취업 준비 등으로만 4년을 보낸다면?” ‘교실 이데아’를 목놓아 부르던 세대가 학부모가 된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은 한국 교육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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