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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비빼고 책만 산 전 대구시장, 60년 모은 7만권 기증한 사연

1981년 개관한 대구시 달서구의 두류도서관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거치며 특별한 코너를 만들었다. '범사 이상희 문고'다. 도서관 1층에 496㎡ 규모로 조성된 이 코너엔 요즘 쉽게 볼 수 없는 책이 가득하다. 한국에 3세트(1세트당 10권)밖에 없는 『루브르박물관일서』부터 1910년대 초반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서 발행한 국문소설 『춘향전』·『심청전』 등 이른바 '딱지 본' 100여권까지 총 7만2000권이다.
 
이상희(87) 대구 전 시장이 자신이 평생 모은 도서 7만권을 대구 두류 도서관에 기증했다. 사진은 10여년 전 이씨가 집 지하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사진 대구 두류도서관]

이상희(87) 대구 전 시장이 자신이 평생 모은 도서 7만권을 대구 두류 도서관에 기증했다. 사진은 10여년 전 이씨가 집 지하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사진 대구 두류도서관]

이 책을 기증한 사람은 이상희(87)씨다. 그는 82년부터 85년까지 대구시장을 지냈다. 경북 성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 책을 모았다. 
 
이씨는 "농사짓던 부모님은 이웃에 학비를 빌리고 가을 추수 때 갚아나가며 날 공부시켰다. 가난했기에 책에 대한 갈증이 늘 있어 책을 모으게 됐다"고 했다. 그는 친구에게 사정해 춘향전을 딱지 본으로 얻어 읽었는데 지금까지 100번도 넘게 봤을 정도다. 그는 "어릴때부터 문학서적을 좋아해 춘향전을 많이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61년 교사가 된 후부터 봉급에서 밥값만 빼고 책을 사서 모았다. 아파트에는 책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30년 전부터 단독 주택에 살면서 지하실과 2층을 모두 책으로 채워 넣었다.
이상희 대구 전시장이 대구 두류박물관에 기증한 루브르미술관일서. [사진 대구 두류박물관]

이상희 대구 전시장이 대구 두류박물관에 기증한 루브르미술관일서. [사진 대구 두류박물관]

 
이씨가 모은 책에는 그의 일생이 녹아있다. 61년 대구 중앙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같은 해 말 행정고시에 합격해 이듬해 공직에 입문했다. 69~71년 진주시장, 82~85년 대구직할시장, 85~86년 경상북도지사를 지낸 뒤 87~88년 내무부장관 까지 공직자의 길을 걷는 동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모았다. 1년에 1300권 정도 모은 셈이다. 
 
이씨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민속자료 경매장부터 일본 도쿄의 고서점 거리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책을 구했다. 지방행정부터 환경·식물학·민속학·역사·관광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조선시대·일제강점기·해방 전후 시대 희귀본을 다량 보유했다. 조선시대 고서인 『충무공 전서』 등이 예다. 1795년 조선 정조 때 발간한 『충무공전서』 8권은 수집 기간만 10여 년이 소요돼 2008년에서야 전량을 샀다. 구입 시 1권당 300만원이었다. 1896년 발간된 『허난설헌 전집』과 1918년 조선연구회가 발간한 기생 600명의 사진이 담긴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도 있다. 

 
대구 두류도서관의 '범사 이상희 문고' 코너[사진 대구 두류도서관]

대구 두류도서관의 '범사 이상희 문고' 코너[사진 대구 두류도서관]

두류도서관은 지난해 1월 이씨에게 책을 받아 정밀소독,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수개월 간의 작업 끝에 지난 13일 ‘범사 이상희 문고’ 개설식을 열었다. 문고에 정리된 도서는 귀중서 등 일부 고서를 제외하고 모두 일반인이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씨는 "고서적과 귀중본을 평생 동안 밤낮으로 실로 꿰매고 정성을 다해 다듬었다"며 "이렇게 모은 책이 나와 같은 길을 걷는 공직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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